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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범인을 잡는다

낮말 밤말 가리지 않는 법곤충학

한여름 밤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강간사건 이야기다. 남자친구와 멋진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제인(가명)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파트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에 의해 납치됐다. 그리고 아파트 근처 숲속에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새벽이슬에 젖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 앞에는 흐뜨러진 자신의 옷가지만 놓여 있었다.

키, 몸무게, 그리고 얼굴에 스키마스크를 썼다는 초보적인 단서만 가지고 경찰은 수사를 시작했다. 얼마 후 경찰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를 용의자로 선정했다.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것은 그의 집에서 스키마스크가 발견됐고, 어렴풋하나마 그 남자의 목소리가 강간범의 목소리와 같다는 제인의 증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충분한 단서가 되지 못했다. 그 남자는 지난 겨울 이후 스키마스키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완강히 버텼기 때문이다. 또 그의 변호사 역시 당시 제인이 범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었겠느냐는 상황논리를 전개하면서 제인의 증언을 희석시켜 버렸다.

그런데 사건은 이상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용의자의 스키마스크에서 찾아낸 도꼬마리 안에서 자라고 있던 바구미 유충이 목격자로 나선 것이다. 도꼬마리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1년 전에 숲속에 갔다 묻혀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구미 유충은 달랐다.

발견된 바구미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만 특별히 서식하는 종이었고, 중요한 것은 한해살이란 점이었다. 바구미 유충은 도꼬마리 안에서 번데기가 되며 늦여름에 나타난다. 또 유충은 겨울을 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따뜻한 아파트 안이라고 하더라도 겨울을 보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결국 한 곤충의 유충 때문에 용의자는 강간범으로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범인을 잡는데 곤충이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1849년 프랑스에서 한 미장공이 벽난로를 수리하다가 어린아이의 시체를 발견한 일이 있었다. 당시 시체에서는 몇가지 곤충이 발견됐는데, 쉬파리는 1848년에 애벌레를 시체에 낳았고, 진드기는 1849년에 알을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1848년에 거주했던 집주인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1935년 9월 20일 나른한 오후시간을 보내던 스코틀랜드 경찰은 에딘버러 근처에 있는 강에서 손발이 잘린 두명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았다. 시체를 인수한 경찰은 조각난 시체를 다시 짜맞춰 두 사람의 신원이 룩슨 박사의 부인과 아이들의 유모란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시체에서 발견된 검정파리의 유충이 3령인 것으로부터 시체가 버려진 날이 12-14일 전이라고 추정하고 룩슨 박사를 체포했다. 룩슨 박사는 2주일 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킬러 파리


곤충 목격자들

과학수사에서 곤충들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은 곤충을 이용해 살인, 강간, 구타, 밀수 등 다양한 범죄를 추적하는 학문으로, 지구 상에서 곤충이 가장 많다는 점에서 착안된 것이다. 실제로 법곤충학은 범죄현장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곤충은 절지동물문에 속한다. 76만5천종에 이르는 절지동물문에는 곤충류를 비롯해 거미류, 새우나 게와 같은 갑각류, 지네류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것은 곤충류로 70만종에 이른다. 그래서 곤충들은 지구 상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곤충은 식물(살아있든 죽었든), 동물과 그 분비물, 인간의 생활 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어 범죄현장의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과학수사라고 하면 법의학만을 떠올린다. 법의학은 인간의 몸을 조사해 언제 사망했나, 왜 사망했는지를 알아보는 실제적인 학문이다. 그러나 과학수사기법이 발전하면서 법곤충학이 탄생했다. 물론 법의학에서도 검시할 때 곤충의 유충들을 살피지만 곤충의 중류와 생태를 일일이 조사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법곤충학이 곤충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 생태가 복잡해서 만들어진 학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법곤충학을 잘 연구하면 사망시기 등을 판정하는 법의학과 달리 범인을 직접 기소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범죄가 일어난 시점(시간)에 사건현장(장소)에 용의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인해 주기도 한다.
 

차를 몰고갈 때 갑자기 수많은 나방이 앞유리로 달려들어 사고가 날 수 있다.


사망시간을 기록

사람(척추동물)이 죽으면 몸에서 냄새가 난다. 이때 제일 먼저 찾아오는 놈이 검정파리나 쉬파리와 같은 쌍시류다. 이들은 보통 사망 후 2일 내에 시체에 알을 낳는다.

검정파리는 3령의 유충단계를 가지고 있다. 1령은 1.8일 후에 대략 5mm 정도, 2령은 2.5일 후에 10mm 정도, 3령은 4-5일 후에 17mm까지 자란다. 3령이 지나면 번데기를 만들기 전까지 몸다듬기를 하는데 보통 8-12일이 걸린다. 이때의 몸길이는 12mm 정도로 준다. 번데기 과정은 18-24일이 걸린다.

검정파리와 같은 곤충들의 생태를 알면 사망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곤충을 살필 때는 입과 몸체의 크기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유충 중에는 습기나 온도에 민감한 종들이 있어 실제 수사에서는 더욱 풍부한 곤충학 지식이 이용된다.

또 어떤 곤충 중에는 매우 부패한 시체에만 달라붙는 것들이 있다. 치즈벌레는 사망 후 3-6개월 후에 유충이 생긴다. 치즈벌레는 치즈나 베이컨에 붙는 독충으로 전세계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수사에 자주 이용된다. 치즈벌레 성충은 사망 후 곧바로 달라붙지만, 유충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생긴다.

만약 유충이 일찍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사망시기는 2개월이상이며, 그나마 매우 더운 여름에나 그렇게 걸린다. 무덤 속이라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1898년 포터라는 법곤충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3-10년 된 1백50개의 무덤에서 치즈벌레가 나온 곳은 불과 10곳이었다. 무덤의 깊이는 1-1.5m였다.

눈이 녹아 봄에 발견된 시체의 경우 사망시기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법곤충학자들은 사망시기를 용케 잘 찾아낸다. 만약 눈이 내리기 전인 11월에 사망했다면 시체에서 죽은 곤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상기록을 살펴 곤충의 사망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에 사망했다면 곤충의 유충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법곤충학을 이용해 해동과 더불어 발견된 시체의 사망시기를 추정한 예가 있다. 당시 시체의 입에서는 검정파리의 3령 유충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검정파리의 유충은 3-10월 사이에 발생한다. 즉 10월 말 이후에 유충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시 결론은 10월 중에 검정파리가 시체에 알을 낳은 것으로 내려졌다. 그렇다면 사망 역시 10월 중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검정파리는 사망직후 2-3일 내에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곤충이기 때문이다.

1964년 6월 27일 핀란드 헬싱키 한 모래채취장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모래채취장은 물로 채워져 있었고, 시체는 부분적으로 잠겨 있었다. 시체의 대부분은 심하게 부패했지만, 일부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부패돼 없어졌다.

이틀 후 검시가 이뤄졌는데, 한 손에서 집파리 유충과 번데기가 발견됐다. 그러나 번데기 중에서 나중에 파리로 변하는 것은 없었다. 또 검정파리와 물 속에서 사는 곤충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법곤충학자의 결론은 이랬다. 검정파리 유충이 보이지 않는 것은 검정파리가 사망 초기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다음 이를 좋아하는 집파리가 달려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신 검정파리는 부패한 시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체는 상당히 오랫동안 물속에 완전히 잠겨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의문사한 여자가 1963년 6월 중순에 살해됐고, 범인이 곧바로 모래채취장에 감춰놓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경찰이 추정한 사망시기는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은 왜 손에서만 집파리의 알이 발견됐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에서 집파리의 유충이 발견된 것은 손이 먼저 물 위로 떠올라 파리가 그곳에 알을 낳았다는 가설을 가능케 했다. 그렇다면 사망시간은 더 길어져야 하는 것일까, 짧아져야 하는 것일까.
 

곤충이 주로 서식하고 있는 장소를 추적해 마약을 재배하는 곳을 찾아낸 예도 있다.


대마초 재배지역을 찾아라

때로는 곤충이 희생자가 사망한 장소, 용의자가 사망장소에 갔는지의 여부, 범행에 이용된 도구들이 사건현장에 있었는지의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러한 것들은 용의자를 기소하는데 꼭 필요한 증거다. 곤충은 종류에 따라 특정지역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엄청난 대마초가 항구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당시 대마초에서는 60종의 곤충 표본이 발견됐다. 콩바구미는 동남아시아에서 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없는 종이고, 어떤 벌은 인도 근처에서 발견되는 종이었다.

이런 식으로 곤충들이 주로 서식하는 장소들을 지도에 표시해 좁혀간 결과 대마초를 기르고 있는 장소가 태국과 안다만해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발견된 곤충들이 주로 무화과나무와 흰개미가 많은 지역과 습기가 많은 강 근처에 산다는 것도 중요한 정보가 됐다. 뉴질랜드 경찰은 이런 정보를 통해 대마초 공급지역을 찾아냈다.

곤충은 때로 마약과 같이 법적으로 금지된 약물을 제조하는 곳을 찾아내는 일에도 나선다. 곤충 몸에 비축된 약물을 조사하고 그 곤충의 서식지역을 조사해 어느 곳에서 불법 약물이 조제되고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지구상에는 70만종의 곤충이 있다. 그들은 범죄현장에서 목격한 사실을 전달해준다.


곤충이 어디에 모이나

수사를 할 때는 가장 궁금한 것은 희생자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점이다.

옥사제팜(정신안정제), 말라티온(황색살충액), 수은, 노르트립티린(정신안정제), 코카인, 헤로인 등 약물 때문에 사망한 경우, 법의학자들은 그러한 약물들을 혈액, 오줌, 위장, 머리카락, 손톱 등에서 채취한다.

그러나 위장이나 혈액에서 채취한 독이 미량이라서 확인을 못할 경우가 있다. 이때 입 근처에서 채취한 구더기를 조사해 희생자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아볼 수가 있다. 곤충의 유충은 약물에 따라 특이한 생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어떤 종류는 코카인을 많이 먹으면 성장이 가속화된다.

검정파리가 시체의 어느 부위에 모이는가를 살펴보면 사망원인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된다. 검정파리는 상처 부위에 많이 모인다. 만약 가슴과 팔 아래쪽에 검정파리가 모이면 칼을 맞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칼로 가슴이나 머리를 공격하면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팔을 들어 막기 때문이다.

곤충은 얼굴처럼 노출된 부위에 알을 낳는다. 만약 검정파리가 생식기 근처에 알을 낳았다면 죽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 곤충은 사건을 목격하는 단계를 넘어서 직접 살인을 하거나 교사(敎唆)한다. 말벌은 날카로운 침으로 독을 주입하는데, 사람에 따라 이 독에 민감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또 벌이 운전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뛰어들어 사고를 내게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방안 가득히 말벌을 넣어두고 아이를 그 안에 넣어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199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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