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3년 6월 옛소련의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Valentina Tereshkova)가 여성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1960년대 우주는 남성만의 전유구역이긴 했지만, 옛소련과 미국은 비밀리에 여성 우주비행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은밀한 내막을 살펴보자.
옛소련은 우주개발의 모든 분야에서 최초의 업적을 원했고 여성 우주비행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우주비행사는 당시 여성 전투기조종사가 많지 않아 우수한 낙하산 전문가 중에서 발탁됐다. 테레시코바는 3명의 낙하산 전문가와 1명의 조종사 출신 여성과 함께 선발됐다. 당시 24세였던 테레시코바도 실력을 갖춘 낙하산 동호회 회원이었다. 이들은 1962년부터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됐는데, 테레시코바를 제외한 여성 훈련생의 경우 1980년 후반에야 정체가 밝혀졌을 정도다.
당시 옛소련의 우주개발 책임자 세르게이 코롤레프는 1961년 4월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된 가가린 다음으로 여성을 우주에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산당 서기장 후루시초프는 여성을 마지막 보스토크 우주선인 6호의 승무원으로 낙점했다. 15개월 동안 가혹한 훈련을 받은 테레시코바는 1963년 6월 16일 우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져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먼저 올라갔던 보스토크 5호와 접근하도록 자신의 우주선을 조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우주에서 보낸 3일은 당시 미국 남성들의 우주비행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정치선전의 목적으로 우주에 간 테레시코바는 미국의 콧대를 누르기에 충분한 성과를 거뒀던 것이다.
가혹한 밀실에서 오래 버티는 우먼파워
옛소련만 여성 우주비행사를 비밀리에 양성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 옛소련의 속셈을 눈치챈 미국 또한 비밀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1960년 2월 35세 이하의 나이, 4년제 대학 졸업, 건강한 체격에 2천시간의 비행경험이 있는 여성 13명이 뉴멕시코에 위치한 ‘러브레이스 클리닉’에 모였다. ‘머큐리13’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훈련생 13명의 공식명칭은 FLATs(First Lady Astronaut Trainees)였다. 3년간 이들은 우주비행에 적합한지 점검받기 위해 남성과 똑같은 수백가지 시험을 치렀다. 우주공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던 시절이라 극한의 조건과 환경으로 설정된 시험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빛과 소리는 물론 온도까지 조절된 밀폐실에서 오감이 박탈된 상태로 혼자 머무는 시험도 있었는데, 여성 훈련생 중에는 환각 현상 없이 10시간 35분이나 버티는 이도 있었다. 이 외의 각종 시험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중력가속도, 방사능, 외로움, 추위, 열, 고통, 소음 등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주개발 초기에 보잘 것 없는 로켓의 성능을 고려해볼 때 몸무게가 가볍고 체격도 작아 공간을 덜 차지하며 공기, 물, 음식의 소비량이 적은 여성은 우주로 보내기에 매우 적합한 ‘화물’이었다.
그런데 미항공우주국(NASA)이 선발기준에 ‘테스터 파일럿’(처음 개발된 항공기를 시험하기 위해 각종 극한 조건으로 비행하는 숙련조종사) 경력을 추가하면서 이들의 운명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엔 여성 테스터 파일럿이 없었던 시기이므로 결국 어떤 여성도 우주로 갈 수 없었다. NASA의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런 이유로 여성 우주비행사 계획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1980년대 미국은 이전과 전혀 다른 개념의 우주선인 우주왕복선을 개발했고 이에 맞는 신개념의 우주비행사가 필요했다. 우주비행사가 꼭 테스터 파일럿 출신일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1980년대 초 우주왕복선의 우주비행사를 공개 모집하자 8천여명 지원자가 몰렸고 결국 35명이 선발됐는데, 이들 중 6명이 여성이었다. 비밀리에 선발됐던 20여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미국이 여성 우주비행사를 선발하자 옛소련도 이에 질세라 다시 여성 우주비행사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1982년 8월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여성으로는 두번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내친 김에 옛소련은 1985년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해 3인승 소유즈우주선의 승무원을 모두 여성으로만 구성한 아마조네스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주선이 도착할 우주정거장 샬류트 7호에 문제가 생겨 취소되고 말았다.
한편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는 테레시코바가 우주로 떠난지 20년하고 이틀 후인 1983년 6월 18일에야 탄생했다. 샐리 라이드라는 이름의 이 우주비행사는 테레시코바와 달리 단순한 승무원이었다. 우주선을 조정하는 진정한 여성 우주비행사가 탄생하는데는 다시 그로부터 12년이 필요했다. 1995년 2월 우주왕복선에 파일럿으로 탑승한 에일린 콜린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다시 4년 후 콜린스는 마침내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 선장이 됐다.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던 우주선의 조종간이 테레시코바 이후 36년만에 여성에게로 넘어갔던 것이다.
21세기에는 세계 각국의 우주비행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수개월간 함께 생활할 것이다. 여기에 요구되는 최고 덕목은 바로 팀워크다. 1973년 NASA가 우주비행에 대한 적합성을 시험하는 기간에 여성훈련생들은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해결할 뜨개질 친목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팀워크와 대인관계에서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개척의 시대를 지나 우주이용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 지상뿐 아니라 우주에서도 우먼파워의 시대는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