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면서 슬슬 바다가 그리워지는 여름의 초입이다. 물결이 넘실거리다가 해안에 밀려오면 파도가 되고 도중에 바위라도 만난다면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광경이란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우주에서도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지난 4월 24일 허블우주망원경의 발사 13주년을 기념해 미항공우주국(NASA)이 일반에 공개한 사진을 보자. 격노하는 바다를 연상시킨다. 마치 검붉은 파도가 흩어지며 생겨나기라도 한 것처럼 물거품을 닮은 모양이 여기저기 나타나 있다. 사진에 보이는 지역은 궁수자리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곳을 가로지르려면 빛의 속도로 달려도 3년이나 걸릴 정도로 방대하다. 여기에 이처럼 거대한 바다가 일렁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한 바다를 품은 궁수자리의 주인공은 케이론이다. 케이론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의 스승이기도 했으니 그에게 거대한 바다에 얽힌 사연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케이론은 상반신이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족에 속했지만, 같은 족속의 난폭한 무법자들과 달랐다. 아폴론과 디아나로부터 음악과 예언을 배우고 다른 스승들로부터는 의술, 사냥 등의 지식을 전수받아 신보다 총명했다. 케이론은 동굴에 살면서 자신의 재주를 다른 신과 영웅에게 가르쳤다.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무술을,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의학을, 카스토르에게는 말타는 법을 전했다. 전설에 따르면 케이론은 헤라클레스, 카스토르 등의 제자들이 타고 원정을 떠났던 배 아르고호를 안내하기 위해 하늘에 자신의 모습을 별자리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궁수자리라고 한다. 궁수자리에서 넘실대는 거대한 바다는 케이론의 제자들이 커다란 목선(木船) 아르고호를 탄 채 황금 양가죽을 찾아 나섰던 바다가 아닐까.
별 탄생의 기폭제는 자외선
궁수자리의 거대한 바다는 사실 우주공간에 몰려있던 다양한 가스가 연출한 작품이다. 이 가스의 바다는 궁수자리 방향으로 5천5백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오메가성운(또는 백조성운)의 일부에 해당한다.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모인 전체 모양이 어찌 보면 오메가(Ω) 같고 어찌 보면 백조를 닮은 이 성운은 별들이 탄생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케이론의 궁수자리가 아르고호의 원정팀에게 드러나지 않게 길잡이 역할을 했듯이 가스의 바다에도 숨겨진 조연이 있다. 이 조연은 가스의 바다에 두드러지는 해안의 파도 형태를 빚어냈을 뿐 아니라 조명을 비춰 밝게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에 찍히지 않았지만 왼쪽 위 방향으로 사진 바깥에 있는 젊고 무거운 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별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이 검붉고 차가운 가스구름의 표면을 깎아내고 가열해 해안의 파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따듯해진 가스구름 표면은 오렌지빛과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자외선의 강한 열과 압력으로 인해 가스구름 표면에서 일부 물질이 흘러나오고 훨씬 더 뜨거운 가스의 장막이 형성된다. 초록빛을 띤 이 가스 장막은 배경을 가리고 있다. 특히 파도의 가장자리에 가해지는 압력은 새로운 별을 탄생시키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다. 케이론의 제자들이 아르고호를 타고 원정을 떠났던 목적이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는 황금 양가죽을 가져오는 것이었듯이 가스의 바다가 일렁였던 이유는 새로운 별을 잉태시키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한편 가스의 바다는 형형색색의 빛깔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신비롭게 보인다. 다양한 빛깔은 성운에 존재하는 가스의 종류를 말해준다. 가스구름은 주로 수소로 이뤄지고, 산소와 황을 소량 포함한다. 수소는 초록빛으로, 산소는 파란빛으로, 황은 빨간빛으로 나타난다.
검붉은 파도를 품고 있는 궁수자리는 여름철 초저녁 남쪽하늘에 눈에 띈다. 케이론이 활을 당기는 모습을 하고 있는 궁수자리를 바라보면서, 황금 양가죽을 찾아 떠났던 케이론의 제자들과 새로운 별을 잉태시키는 가스의 바다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궁수자리는 은하수의 중심 방향에 있기 때문에 은하수를 함께 볼 수 있다면 더욱 운치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