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미국의 탐사선 던(Dawn)은 소행성 베스타 곁을 떠났다. 2007년 발사된 지 4년 만에 베스타에 도착해 1년여 동안 관측을 마친 뒤였다. 그동안 던은 태양계 초기 행성이 될 뻔하다 만 베스타의 운명을 확인하고 새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던은 베스타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1807년에 발견된 베스타는 평균 반지름이 약 260km로, 소행성대★ 에서 세레스에 이어 크기로는 세 번째, 질량으로는 두 번째로 크다. 발견 이후 베스타는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됐고, 1970년대 표면 색깔과 같은 특성이 HED운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HED(하워다이트, 유크라이트, 디오제나이트)는 매우 흔한 현무암질 운석으로 지구에서 발견되는 운석의 약 6%가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운석은 분화된 작은 천체의 지각 내지는 맨틀에서 떨어져나왔을 수 있다.
소행성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이 몰려있는 영역.
그런데 베스타와 HED운석의 연관성은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지구에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어서 당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베스타에 천체가 충돌한 흔적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궤도에 올라가자 천문학자들은 베스타를 관측해 남극 지역에서 거대한 ‘레아실비아’ 충돌 분지를 발견했다. 이 충돌로 HED운석이 떨어져나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궤도로 미루어 보아 베스타에서 나온 게 분명한 소행성 파편의 무리, 즉 베스타 소행성족이 이어 발견됐다. 이들은 근일점이 2.15AU(천문단위, 1AU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인 베스타부터 태양에서 2.5AU 떨어져 있는, 목성과의 3:1 공명궤도 위치까지 연속으로 늘어서 있다. 목성 중력의 영향으로 불안정한 이 공명궤도에서는 물체가 금방 이탈해 궤도가 텅 비게 되는, 즉 간극(커크우드 간극)이 생긴다. 이 공명궤도에서 튕겨 나온 베스타 파편이 지구 근처까지 올 수 있기 때문에 마침내 논란이 끝났다.
행성이 될 뻔한 소행성
지구에 떨어진 HED 운석이 베스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확실해지자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달보다 수억 년이나 더 오래된 HED 운석의 나이로 판단할 때, 베스타는 소행성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충돌에서 살아남아 원래 모습을 간직한 지구형 원시행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07년 미국이 발사한 탐사선 던은 1년 정도 베스타 주위를 돌면서 관측했다. 그 결과 베스타가 지구형 원시행성이라는 가설을 확인했다. 달이나 다른 지구형 행성을 탐사할 때 구성 성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것과 달리 베스타 탐사는 HED 운석 덕분에 구성 물질에 대해 이미 상당히 알고 있는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던 탐사선의 카메라는 베스타 표면에 지구형 행성처럼 오래 전 현무암질 용암이 흘렀던 흔적을 보여줬다. 중력장 관측으로 내부에 지름이 약 100km에 달하는 거대한 철 핵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거대한 규모의 계곡 및 능선, 절벽, 구릉, 엄청난 높이의 산과 같은 표면의 지형 역시 내부가 지구형 행성처럼 ‘분화’돼 있음을 시사했다. 분화는 행성의 내부가 가열돼 녹았을 때 물질의 밀도에 따라 여러 층으로 나뉘는 현상이다. 가벼운 물질은 표면 가까이 이동하고 철이나 니켈과 같은 무거운 물질은 행성의 중심으로 가라앉는다.
초기의 베스타는 완전히 녹은 핵 주위에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녹은 규산염의 층이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규산염 마그마의 바다가 굳으면서 지각 아랫부분에는 마그네슘과 철이 주성분인 디오제나이트가, 지각 위쪽에는 지구의 현무암과 비슷한 유크라이트가 주로 자리 잡았다. 그 뒤 소행성이나 운석 같은 외부 천체가 꾸준히 충돌하면서 유크라이트와 디오제나이트가 물리적으로 섞인 하워다이트가 수백 m 두께로 표면의 흙을 이뤘을 것이다.
방사성 물질에서 열을 얻다
베스타는 분화에 필요한 열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베스타가 태어난 것은 태양계 원시성운에서 고체 물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수백만 년이 안 된 시점이다. 이 당시 태양계 근방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로 방사성 알루미늄(26Al)과 철(60Fe)이 태양계로 들어왔다. 베스타가 성장할 때 끌어들인 그런 방사성 물질이 자연붕괴하면서 나오는 열로 내부가 녹았을 가능성이 있다.
내부가 녹으면 마그마가 표면으로 올라오면서 화산 활동을 일으켜 거대한 화산을 만든다. 그러나 아직 베스타에서 화산 지형은 찾지 못했다. 베스타가 급격히 식으면서 짧은 기간 동안만 화산이 생겼고, 이후 외부 천체가 충돌하면서 화산지형이 대부분 침식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충돌 구덩이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어두운 물질은 지하에 묻혀 있다가 튀어나온 화산 활동 관련 물질일 수도 있다.
또한, 충격으로 충돌 지점 주위에 동심원 모양으로 땅이 갈라지면서 평행하게 늘어선 거대한 계곡들이 생겼다. 가장 큰 계곡의 길이는 적도 둘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380km나 된다. 이 충돌의 결과로 북반구과 남반구의 지형이 달라졌다. 북반구는 나이가 많은 지형의 특성을 보여주는 반면, 충돌 분지가 있는 남반구는 상대적으로 젊고 지하 물질이 드러나 표면의 구성 성분도 다르다.
베스타의 지각 두께를 평균 약 20km라고 가정하면, 대부분 지역의 표면 성분은 주로 유크라이트가 풍부한 하워다이트다. 반면, 19km 깊이까지 파헤쳐진 레아실비아 충돌 분지에서만 유일하게 표면에 디오제나이트가 풍부했다. 이처럼 베스타의 지형은 소행성의 특성, 즉 충돌에 의한 지형 변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달이나 지구형 행성의 특성도 보여주기 때문에 일종의 과도기적 천체라고 할 수 있다. 행성이 되려는 꿈을 못다 이룬 천체인 셈이다. 베스타의 반전 드라마
미지 세계의 탐험이 항상 그렇듯이 뜻밖의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 베스타에는 크기가 대략 수 km인 구멍들이 떼 지어 몰려있는 지형이 있다. 이 구멍은 테두리가 없다는 점에서 충돌 구덩이와 다르다. 이들은 표면 암석이 외부 천체와 충돌해 가열되면서 내부의 휘발성 물질이 급격히 기화돼 빠져나갈 때 생긴다. 베스타를 빼고는 대기가 없는 천체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베스타의 표면에는 휘발성 물질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이 휘발성 물질의 성분은 대부분 수산기(OH)거나 얼음(H2O)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베스타의 가장 오래된 지형에서 탐지된 상당한 양의 수소 역시 물이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던은 얼음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적도 인근 지역에서 수소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탐지했다. 베스타는 달과 달리 얼음을 보존할 수 있는 영구적인 응달 지역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물 함량이 높은 탄소질 콘드라이트 운석이나 혜성이 물의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 태양풍에 섞인 수소도 고려할 수 있지만, 베스타 일부 지역에만 수소 함량이 높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높은 함량은 어느 한때 일어난 충돌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충돌이 쌓여 온 결과다.
소행성과 같은 지구형 행성의 ‘표면 나이’는 충돌 구덩이의 수로 알 수 있다. 더 오래 전에 형성된 표면일수록 충돌 구덩이 수가 더 많다. 그러나 레아실비아 분지를 만든 것과 같은 거대한 충돌은 표면을 ‘재포장’한다. 즉 이전에 생긴 충돌 구덩이들을 뭉개고 새로운 물질로 덮어버리므로 표면 나이가 다시 젊어진다. 수소 함량은 이전에 계속해서 쌓인 물질의 양에 비례하므로 결국 표면 나이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베스타에서 발견된 수소는 태양계에 물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뿐만 아니라 물과 함께 들어온 풍부한 탄소가 초기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운석이나 혜성의 배달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다음 목표는 세레스
지구에서 발견된 운석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초기 태양계의 소행성대에는 내부가 일부 혹은 완전히 녹아서 분화가 일어난 거대 소행성들이 100개 이상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나중에 다른 소행성과 충돌해 대부분 파괴됐다. 규산염이 풍부하면서도 분화된 소행성으로는 오늘날 베스타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지구형 행성은 질량이 클수록 중력이 물리적 성질(모양)을 결정한다. 이를 정역학적 평형이라고 하며 작은 소행성이 찌그러진 모양인 반면 큰 행성은 둥근 이유이다. 또한, 분화된 내부 구조 역시 정역학적 평형의 결과이므로 연속적인 충돌에도 부서지지 않고 충격을 흡수해서 베스타가 살아남은 데 기여했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내는 것 또한 던의 목표였다.
베스타의 역사를 통해 지구형 행성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내부만 들여다보면 행성이나 다를 바 없는 베스타를 소행성에서 최소한 왜 행성으로라도 승격시켜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천문연맹(IAU)이 베스타의 외모가 다소 찌그러졌지만 정역학적 평형에 의해 결정됐다고 확신해야겠지만 말이다. ‘새벽’이라는 의미의 던은 올해 베스타를 떠나 다음 목표로 간다. 2015년에 도착할 예정인 목표는 세레스.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소행성 역시 암석핵과 얼음 맨틀, 그리고 어쩌면 액체로 된 물의 바다까지 갖춘 원시행성으로서 우리에게 태양계의 ‘새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1807년에 발견된 베스타는 평균 반지름이 약 260km로, 소행성대★ 에서 세레스에 이어 크기로는 세 번째, 질량으로는 두 번째로 크다. 발견 이후 베스타는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됐고, 1970년대 표면 색깔과 같은 특성이 HED운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HED(하워다이트, 유크라이트, 디오제나이트)는 매우 흔한 현무암질 운석으로 지구에서 발견되는 운석의 약 6%가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운석은 분화된 작은 천체의 지각 내지는 맨틀에서 떨어져나왔을 수 있다.
소행성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이 몰려있는 영역.
그런데 베스타와 HED운석의 연관성은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지구에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어서 당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베스타에 천체가 충돌한 흔적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궤도에 올라가자 천문학자들은 베스타를 관측해 남극 지역에서 거대한 ‘레아실비아’ 충돌 분지를 발견했다. 이 충돌로 HED운석이 떨어져나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궤도로 미루어 보아 베스타에서 나온 게 분명한 소행성 파편의 무리, 즉 베스타 소행성족이 이어 발견됐다. 이들은 근일점이 2.15AU(천문단위, 1AU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인 베스타부터 태양에서 2.5AU 떨어져 있는, 목성과의 3:1 공명궤도 위치까지 연속으로 늘어서 있다. 목성 중력의 영향으로 불안정한 이 공명궤도에서는 물체가 금방 이탈해 궤도가 텅 비게 되는, 즉 간극(커크우드 간극)이 생긴다. 이 공명궤도에서 튕겨 나온 베스타 파편이 지구 근처까지 올 수 있기 때문에 마침내 논란이 끝났다.
행성이 될 뻔한 소행성
지구에 떨어진 HED 운석이 베스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확실해지자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달보다 수억 년이나 더 오래된 HED 운석의 나이로 판단할 때, 베스타는 소행성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충돌에서 살아남아 원래 모습을 간직한 지구형 원시행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07년 미국이 발사한 탐사선 던은 1년 정도 베스타 주위를 돌면서 관측했다. 그 결과 베스타가 지구형 원시행성이라는 가설을 확인했다. 달이나 다른 지구형 행성을 탐사할 때 구성 성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것과 달리 베스타 탐사는 HED 운석 덕분에 구성 물질에 대해 이미 상당히 알고 있는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던 탐사선의 카메라는 베스타 표면에 지구형 행성처럼 오래 전 현무암질 용암이 흘렀던 흔적을 보여줬다. 중력장 관측으로 내부에 지름이 약 100km에 달하는 거대한 철 핵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거대한 규모의 계곡 및 능선, 절벽, 구릉, 엄청난 높이의 산과 같은 표면의 지형 역시 내부가 지구형 행성처럼 ‘분화’돼 있음을 시사했다. 분화는 행성의 내부가 가열돼 녹았을 때 물질의 밀도에 따라 여러 층으로 나뉘는 현상이다. 가벼운 물질은 표면 가까이 이동하고 철이나 니켈과 같은 무거운 물질은 행성의 중심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약 46억 년 전 원시 태양성운에서 행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소행성대에서는 행성이 크게 자라기 어려웠다. 목성의 강한 중력이 소행성대 주변의 물질을 계속 휘저어 뭉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베스타도 이 때문에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정식 행성처럼 내부 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초기의 베스타는 완전히 녹은 핵 주위에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녹은 규산염의 층이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규산염 마그마의 바다가 굳으면서 지각 아랫부분에는 마그네슘과 철이 주성분인 디오제나이트가, 지각 위쪽에는 지구의 현무암과 비슷한 유크라이트가 주로 자리 잡았다. 그 뒤 소행성이나 운석 같은 외부 천체가 꾸준히 충돌하면서 유크라이트와 디오제나이트가 물리적으로 섞인 하워다이트가 수백 m 두께로 표면의 흙을 이뤘을 것이다.
방사성 물질에서 열을 얻다
베스타는 분화에 필요한 열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베스타가 태어난 것은 태양계 원시성운에서 고체 물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수백만 년이 안 된 시점이다. 이 당시 태양계 근방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로 방사성 알루미늄(26Al)과 철(60Fe)이 태양계로 들어왔다. 베스타가 성장할 때 끌어들인 그런 방사성 물질이 자연붕괴하면서 나오는 열로 내부가 녹았을 가능성이 있다.
내부가 녹으면 마그마가 표면으로 올라오면서 화산 활동을 일으켜 거대한 화산을 만든다. 그러나 아직 베스타에서 화산 지형은 찾지 못했다. 베스타가 급격히 식으면서 짧은 기간 동안만 화산이 생겼고, 이후 외부 천체가 충돌하면서 화산지형이 대부분 침식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충돌 구덩이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어두운 물질은 지하에 묻혀 있다가 튀어나온 화산 활동 관련 물질일 수도 있다.
탐사선이 베스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특징은 남극에 있는 레아실비아 충돌 분지다. 허블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했지만 로마 신화에 나오는 베스타 신전 여사제의 이름을 딴 명칭은 던 탐사선이 붙인 것이다. 지름이 500km인 이 분지를 만든 충돌은 약 10억 년 전에 일어났다. 이 충돌로 떨어져 나간 물질은 베스타 소행성족을 이뤘고, 토성의 위성인 하이페리온처럼 충돌의 반동으로 분지 중심에 높이가 22km인 거대한 산이 솟구쳤다. 이는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화성의 올림푸스 산(27km)에 필적한다.
또한, 충격으로 충돌 지점 주위에 동심원 모양으로 땅이 갈라지면서 평행하게 늘어선 거대한 계곡들이 생겼다. 가장 큰 계곡의 길이는 적도 둘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380km나 된다. 이 충돌의 결과로 북반구과 남반구의 지형이 달라졌다. 북반구는 나이가 많은 지형의 특성을 보여주는 반면, 충돌 분지가 있는 남반구는 상대적으로 젊고 지하 물질이 드러나 표면의 구성 성분도 다르다.
베스타의 지각 두께를 평균 약 20km라고 가정하면, 대부분 지역의 표면 성분은 주로 유크라이트가 풍부한 하워다이트다. 반면, 19km 깊이까지 파헤쳐진 레아실비아 충돌 분지에서만 유일하게 표면에 디오제나이트가 풍부했다. 이처럼 베스타의 지형은 소행성의 특성, 즉 충돌에 의한 지형 변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달이나 지구형 행성의 특성도 보여주기 때문에 일종의 과도기적 천체라고 할 수 있다. 행성이 되려는 꿈을 못다 이룬 천체인 셈이다.
미지 세계의 탐험이 항상 그렇듯이 뜻밖의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 베스타에는 크기가 대략 수 km인 구멍들이 떼 지어 몰려있는 지형이 있다. 이 구멍은 테두리가 없다는 점에서 충돌 구덩이와 다르다. 이들은 표면 암석이 외부 천체와 충돌해 가열되면서 내부의 휘발성 물질이 급격히 기화돼 빠져나갈 때 생긴다. 베스타를 빼고는 대기가 없는 천체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베스타의 표면에는 휘발성 물질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이 휘발성 물질의 성분은 대부분 수산기(OH)거나 얼음(H2O)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베스타의 가장 오래된 지형에서 탐지된 상당한 양의 수소 역시 물이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던은 얼음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적도 인근 지역에서 수소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탐지했다. 베스타는 달과 달리 얼음을 보존할 수 있는 영구적인 응달 지역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물 함량이 높은 탄소질 콘드라이트 운석이나 혜성이 물의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 태양풍에 섞인 수소도 고려할 수 있지만, 베스타 일부 지역에만 수소 함량이 높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높은 함량은 어느 한때 일어난 충돌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충돌이 쌓여 온 결과다.
다음 목표는 세레스
지구에서 발견된 운석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초기 태양계의 소행성대에는 내부가 일부 혹은 완전히 녹아서 분화가 일어난 거대 소행성들이 100개 이상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나중에 다른 소행성과 충돌해 대부분 파괴됐다. 규산염이 풍부하면서도 분화된 소행성으로는 오늘날 베스타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지구형 행성은 질량이 클수록 중력이 물리적 성질(모양)을 결정한다. 이를 정역학적 평형이라고 하며 작은 소행성이 찌그러진 모양인 반면 큰 행성은 둥근 이유이다. 또한, 분화된 내부 구조 역시 정역학적 평형의 결과이므로 연속적인 충돌에도 부서지지 않고 충격을 흡수해서 베스타가 살아남은 데 기여했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내는 것 또한 던의 목표였다.
베스타의 역사를 통해 지구형 행성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내부만 들여다보면 행성이나 다를 바 없는 베스타를 소행성에서 최소한 왜 행성으로라도 승격시켜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천문연맹(IAU)이 베스타의 외모가 다소 찌그러졌지만 정역학적 평형에 의해 결정됐다고 확신해야겠지만 말이다. ‘새벽’이라는 의미의 던은 올해 베스타를 떠나 다음 목표로 간다. 2015년에 도착할 예정인 목표는 세레스.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소행성 역시 암석핵과 얼음 맨틀, 그리고 어쩌면 액체로 된 물의 바다까지 갖춘 원시행성으로서 우리에게 태양계의 ‘새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