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4일 3억5천4백만-3억4천4백만년 전쯤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화석 하나가 세계적인 잡지인 ‘네이처’에 발표돼 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페데르페스 피네예(Pederpes finneyae)로 명명된 이 동물 화석은 흉악한 악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학자들은 화석의 주인공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만큼 모험심 강한 최초의 네발달린 개척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속에서 생활하던 동물들에게 전혀 새로운 환경인 육지에서의 생활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물의 부력이 존재하지 않는 육지에서는 강한 중력을 이겨내고 걸어다닐 수 있는 튼튼하고도 강한 다리의 진화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동물의 새로운 모험은 육상척추동물 진화의 시발점이 됐으리라. 이 동물의 모험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의 출현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진화에 관한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모든 생물의 출현과 멸종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인 목표가 인간의 출현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려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다분히 철학적이고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 과학적 테제와 관련되는 물음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몸에도 바다에서 육지로 나온 악어처럼 물에서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인어였을까.
자궁 내 태아도 딸꾹질해
프랑스 파리의 파리대부속병원에 재직중인 크리스티앙 스트라우스 박사는 ‘바이오에세이즈’(BioEssays)라는 유수 과학저널의 최근호에 ‘딸꾹질의 기원에 관한 계통학적 가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캐나다의 캘거리의대 호흡연구단에 있던 시절에 얻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이 논문은 다시 2월 초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소개되면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딸꾹질은 갑작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후두(성문, 좌우 성대 사이의 빈자리와 성대)에서 ‘힉’하는 소리를 동반하는 현상이다. 딸꾹질은 인체에서 매우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생리학적인 의미나 관련 신경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바 없다. 우리는 왜 딸꾹질을 하는가. 딸꾹질은 숨을 들이마실 때 사용되는 근육들의 급격한 수축에 의해 발생한다. 놀랍게도 딸꾹질은 자궁에 있는 두달 된 태아에게서도 관찰된다. 어른에게서 나타나는 딸꾹질이 원시적인 형태를 갖는 반사작용의 한 잔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딸꾹질을 하는 목적에 관해서는 불분명하다. 한 가설에 의하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정상적인 호흡을 하기 위해 필요한 호흡관련 근육들을 만들거나 강화시키는 것과 관련 있다고 하고, 또다른 가설에 따르면 양수가 태아의 허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 메커니즘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설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딸꾹질이 양수가 허파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기침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기를 내뿜을 때 관여하는 근육들의 수축작용에 의해 후두의 밀폐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딸꾹질의 경우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근육의 수축작용과 관련해 후두의 밀폐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관여하는 근육의 수축과 후두의 밀폐가 조합된 것은 독특한 양상이다. 이런 조합 패턴은 폐어, 양서류 등과 같이 아가미를 갖고 있는 원시적인 공기호흡 동물군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의 경우 성체가 되면 허파 호흡과 피부 호흡을 하지만 올챙이 때에는 아가미 호흡만을 한다. 아가미 호흡을 할 때는 입을 압착시켜 물을 아가미로 밀어 넣은 후 물에 있는 산소를 취하는데, 이때 허파 안으로 물이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두가 닫힌다. 스트라우스 박사는 이런 현상이 인간의 딸꾹질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근거로 보면 딸꾹질의 기원이 아가미 호흡을 하는 폐어나 양서류에까지 올라가며 그때의 잔재가 없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아가미 호흡 기능을 제어했던 인류 조상의 뇌 회로가 몇억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듭된 진화의 역사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딸꾹질을 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또한 젖을 빨 때 젖이 허파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후두가 일시적으로 막히는 현상이 딸꾹질할 때와 비슷한데, 이는 아가미 호흡과 관련된 뇌의 신경회로가 아가미 호흡이 더이상 이뤄지지 않는 인체에서 아기의 젖 빠는 행위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새롭게 적응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인류가 한때 물속에서 살았을까
인체 내에 인간의 진화 흔적을 보여주는 잔재는 딸꾹질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꼬리뼈, 맹장, 사랑니 등을 포함해 다양한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이 좋은 예다. 흔적기관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해부학적 구조상 꼬리뼈가 매우 중요하다거나, 맹장이 면역기능과 관련 있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어 각각이 인체 내에서 어느 정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흔적기관이 원래 담당했던 본연의 기능을 지금에 와서 거의 또는 전혀 수행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흔적기관을 이해할 때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 신체의 일부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진화 과정에서 원래 갖고 있던 고유의 기능을 더이상 그 이전만큼 활발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전혀 이전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새롭게 변화·적응해 인체 내의 다른 기능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기관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딸꾹질처럼 아가미 호흡과는 관계 없지만 젖을 빠는 것과 관련돼 적응한 것이 한가지 예일 수 있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논쟁중인 인류 진화가설 가운데 해양생물학자 앨리스터 하디의 수생유인원설은 인체에서 다양한 진화의 흔적을 관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인간이 진화 과정의 어느 일정 시간 동안 물에서 생활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바탕으로 하디는 우리 몸에 존재하는 다양한 진화의 흔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몸을 덮는 긴 털이 없고 대신 두터운 피하지방층이 있는데, 이는 주로 고래와 같은 수생 포유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몸에 나있는 털이 머리에서 발끝 방향으로 성장하는 이유도 물속에서 유영할 때 물의 흐름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유인원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영 능력이 뛰어나고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는 능력도 영장류 가운데 최고다. 코의 구조도 물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닫혀 물의 유입을 막는 구조이며, 다른 수중 포유동물처럼 잠수 반사(diving reflex) 기능, 즉 머리가 찬물에 잠기면 곧바로 심장박동이 느려져 산소가 풍부한 혈액이 뇌와 허파에 공급됨으로써 질식이나 뇌 장애를 늦추는 기능을 가진다.
수중동물처럼 다량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세계 인구의 7%가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의 흔적을 갖는 것도 수중 생활의 역사를 보여준다.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물속에 넣으면 바로 수영이 가능한 것도 수중 생활의 증거로 여겨진다.
거의 모든 동물의 공통 유전자
진화론과 관련해 다윈 이후 가장 혁명적인 학설을 주창한 학자 중 한사람이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이다. 1866년 헤켈이 제창한 발생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 또는 진화재연설은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개체발생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방법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계통과 진화에 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 발생 초기의 태아를 비교하면 포유류뿐만 아니라 양서류, 어류 등 거의 모든 동물이 비슷하다. 또 인간의 딸꾹질 행위가 올챙이의 아가미 호흡 메커니즘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인간이 아가미 호흡을 하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제는 유전자 차원에서도 헤켈의 발생반복설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hox 유전자처럼 동물의 초기 발생을 조절하는 중요한 유전자들이 원시적인 형태의 무척추동물부터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까지 거의 모든 동물군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hox 유전자는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로서 대개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이 집단으로 클러스터(cluster)를 형성하며 동물의 DNA 내에 존재한다. 특히 플라나리아 같은 편형동물에서부터 인간까지를 아우르는 좌우대칭동물의 경우에는 hox 유전자 클러스터가 적어도 7개 이상의 유전자로 구성돼 있다. 반면 이전에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원시적인 동물군에서는 3-4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작은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단순한 형태였을 것이다. 아마도 후에 복제를 통해 유전자 양을 두배로 늘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수를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hox 유전자는 최근까지 조상을 공유했던 매우 가까운 동물군들일수록 더욱 유사한 클러스터 패턴을 나타낸다. hox 유전자의 존재와 발현 양상은 개체발생이 계통진화의 과정을 재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런 분자발생학적, 분자계통학적 성과는 발생학적인 증거를 통해 진화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으며 ‘evodevo’(evolution(진화)과 development(발생)의 조합어로 진화와 발생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함)라는 신조어를 낳는데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동물군들로부터 초기 발생단계와 관계되는 매우 유사한 발생조절유전자 클러스터들이 발견되는 것은 1백40여년 전 헤켈이 제창한 발생반복설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생반복설은 헤켈이 비정량적인 방법과 직관에 의해 얻은 오류투성이의 학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헤켈의 학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분자계통분류학(molecular systematics)의 발전과 더불어 오히려 그 입지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