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 암환자가 국립암센터에서 새로 시작한 치료법을 시술받고 있다. 그는 종전의 방사선 치료보다 효과가 크고 부작용이 적다는 이 치료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환자가 받고 있는 시술은 ‘양성자 치료법’(proton therapy)이라고 한다. 국립암센터는 양성자 빔을 이용한 치료를 시행하기 위해 2003년부터 2년여에 걸쳐 양성자 가속기 치료시설을 완공했다.
양성자 치료란 과연 무엇일까. 또 암치료에 가속기가 동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사선 치료의 일종
양성자 치료는 암치료의 대표적인 방법인 방사선 치료에 속한다. 기존의 방사선 치료와 다른 점은 환자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쏘아주는 빔이 양성자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고에너지의 X선과 전자 빔을 주로 이용했다. 양성자가 이들보다 암치료에 탁월한 까닭은 가장 정확하게 암세포를 공격하면서 주변의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적게 주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는 X선이나 전자빔이 체내의 암세포에 에너지를 전달해줌으로써 암세포를 파괴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방사선이 체내 암세포에 들어가면서 중간에 만나거나 통과한 이후의 정상세포에게도 일부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정상세포도 방사선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양성자 빔은 체내에서 멈추기 직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내놓는다는 특징이 있다. 즉 체내에 있는 암세포지역에서 양성자 빔은 마지막 멈추기 직전에 많은 에너지를 내놓는 피크가 생긴다. 이 피크는 X선이나 전자와는 다른 양성자 빔의 독특한 특징이다. 양성자와 같이 전기를 띠는 입자 빔은 물질에 입사했을 때 단위길이 당 잃는 빔의 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추기 직전에 에너지 손실이 가장 크다. 이를 ‘브래그 피크’라고 한다. 전자는 입자성보다 파동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이같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브래그 피크가 생기는 위치는 양성자 빔의 에너지와 물질에 따라 다르다. 양성자 빔을 물에 쏘아줄 경우 2백50MeV에서 약 38cm이고, 70MeV에서는 4cm 정도이다. 실제로 암치료에서는 그 크기에 따라 양성자의 에너지를 조절함으로써 여러 에너지의 브래그 피크를 합쳐 암세포들에게는 치사량에 해당하는 방사선량을 가능한 균일하게 조사한다.
또한 양성자 빔은 브래그 피크 이후에 선량이 거의 없다. 즉 브래그 피크 위치 다음의 체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암세포가 척수와 같은 중요 장기와 가까이 위치한 경우에 양성자 빔의 장점이 뚜렷해진다. 척수 부위에 조사되는 선량이 거의 없으므로 치료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눈 뒤쪽에 발생하는 안구 암과 같이 수술로 눈을 제거하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할 때에도 양성자 빔을 이용하면 치료가 가능하거나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이디어는 사이클로트론 발명 연구그룹에서
이와 같이 양성자가 종전의 방사선보다 정상세포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유아암에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말기 암 환자나 노년기에 발생한 경우와 비교해서 정상세포에 조사되는 방사선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유아암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성장과정에 있는 유아의 장기가 방사능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양성자 빔은 기존의 방사선 치료법에 비해 탁월한 국지적 조사능력을 가짐으로써 이전 방사선 치료법이 갖지 못하는 장점을 가진다. 양성자 치료는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유수의 제약회사나 의학 및 생물학 연구소에서 노력해 성공한 것과 비교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처음으로 암치료에 양성자가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냈을까. 핵물리학자 로버트 윌슨 박사는 1946년 ‘빠른 양성자의 의학적 이용’(Radiological Use of Fast Proton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당시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어네스트 로렌스 박사의 연구그룹에서 대학원생이었고, 이후에 세계 최대의 양성자 가속기를 운영하고 있는 미 시카고 소재 페르미 국립연구소의 초대소장을 지냈다.
양성자 치료가 핵물리학자인 윌슨 박사로부터 나온 점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승인 로렌스 박사가 사이클로트론의 생의학적인 이용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1930년대 후반에 사이클로트론 빔으로 생산한 중성자를 이용해 의사인 로버트 스톤 박사와 함께 이미 생체실험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대체로 가속기 건설자는 이것의 학문적 사용 이외에 응용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자신이 설계하고 만든 가속기가 다양하게 사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윌슨의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실현된 것은 1954년의 일이다. 버클리 연구소의 토비아스 박사와 로렌스 박사의 동생이고 의사인 존 로렌스 박사와 함께 이곳의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처음으로 암환자를 치료했다.
첫 환자들은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다. 후기 유방암 환자들에 대해서 암세포의 전이를 줄이기 위해 뇌하수체를 수술로 제거하는 대신 양성자 빔을 조사해서 수술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당시에 뇌하수체를 수술로 제거해 호르몬 생산을 억제했을 때 암의 전이가 억제되는 것은 알려져 있었고 뇌하수체가 국지화된 샘(gland)이므로 양성자 빔을 실험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그 뒤에는 버클리 그룹의 영향을 받은 스웨덴의 웁살라대에서 1957년부터 치료가 시작됐다.
이후 윌슨 박사의 제안에 따라 핵물리 연구소의 양성자 가속기들 일부가 수십년 간 치료 겸용으로 사용됐다. 대표적인 예는 하버드 사이클로트론 연구소의 1백60MeV 싱크로사이클로트론 가속기이다. 이 가속기는 1961년에서 2002년까지 하버드 의대병원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 새로운 양성자 시설이 완성돼 연구소를 폐쇄할 때까지 약 8천5백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주로 눈과 뇌를 포함한 머리부위의 종양을 치료했다.
1991년부터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치료
병원에 가속기 시설이 설치돼 본격적으로 치료에 사용된 것은 1991년이다. 미국 로마린다 의대가 처음으로 양성자용 회전조사대(gantry)를 설치함으로써 본격적인 양성자 치료시대를 개막했다. 회전조사대는 빔을 어느 각도에서도 조사할 수 있는 장치로, 종양부위를 중심으로 여러 각도에서 조사함으로써 입사되는 부분에 있는 정상세포에 주어지는 선량은 최소화하면서 중심에 있는 종양에 주는 선량은 최대화한다.
현재는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병원 내의 양성자 시설에서 여러 장기의 종양에 대한 치료가 활발히 진행중이고 새로 계획중이거나 건설중인 시설만 10군데 이상이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 미국 버클리 연구소에서 양성자 치료기를 연구해온 주동일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원(KIST)과 협력해 설치를 시도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2001년 국립암센터의 개원과 함께 정부에서도 양성자 치료가 암치료에 중요한 장비임을 인정하고 국가예산을 할당해 국립암센터 내 설치를 결정했다.
현재 국립암센터에서는 건물공사가 진행중으로 내년 중반 즈음부터는 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을 비롯해 덩치가 큰 회전조사대 등의 장비들부터 설치될 예정이다. 완료 예정 시기는 2005년이다. 이때는 고정빔 치료기 한대와 두대의 회전조사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후일 환자 수요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 회전조사 치료실이 한곳 더 마련돼 있기도 하다. 실제 빔에 의한 치료는 2-3분 이내면 충분하지만 각 치료실에서 환자의 이동과 고정 등에 환자 당 20-40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많은 수의 환자를 치료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일 한대의 회전조사대가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미리 확보한 것이다.
빔 라인 끝 쪽에는 실험실이 마련돼 있어 핵 과학자, 방사선 생물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 가속기 한대로 최대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는 것이다. 사이클로트론의 경우 2백30MeV에서 최대 전류가 1μA(${10}^{-6}$A) 정도로 치료용 싱크로트론의 10nA(${10}^{-9}$A)에 비해 상당히 높아, 좀더 다양한 연구에 쓸 수 있다.
설치되는 치료기는 세계적인 사이클로트론 생산업체인 벨기에의 IBA사가 제작한다. 미국 하버드 의대 병원의 양성자 치료센터(Northeast Proton Therapy Center, NPTC)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유사하다. NPTC는 2001년 후반부터 치료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눈 치료 등에 고정 빔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현재는 회전조사대를 사용해 기존의 방사선으로 어려웠던, 암 부위가 방사선에 민감한 중요 장기로 에워 싸인 환자들의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유사한 IBA사의 장비가 미국 플로리다대 암센터, 중국 북경시 및 산동성의 지난시 근교 등 세곳에 설치중으로 몇년 후면 양성자 치료가 좀더 보편화될 전망이다.
호흡과 심장 박동이 최대 걸림돌
아마도 양성자 치료가 왜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는지가 궁금할 수 있다. 가속기를 포함하는 장비가격의 지속적인 인하, 상대적인 의료비용의 상승, 그리고 암환자의 증가추세가 주요 이유다. 물론 그간의 치료효과가 좋았던 덕분도 있다. 치료시대의 초반인 1950-60년대에는 양성자 시설들이 대부분 물리실험에 집중적으로 사용됐었고, 잘못된 치료에 의한 부작용이 생겨 입자를 이용한 암치료에 대한 인식도가 높지 못했다.
앞으로도 양성자 치료가 좀더 정확하게 암치료에 이용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방사선 치료의 최대 약점은 환자의 호흡이나 심장 박동에 의한 장기의 움직임 때문에 종양 부위에 원하는 선량 분포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양성자 빔의 경우 브래그 피크 이후에 선량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해서 수mm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에도 목표한 종양부위에 훨씬 적은 선량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양성자 치료는 목 위쪽이나 엉덩이 이하의 비교적 움직임이 적은 부분에 주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호흡에 따른 빔 주사법 등을 개발해, 움직이는 폐와 간 같은 곳의 종양 치료에도 활발한 편이다. 움직이는 종양부위를 빔이 추적, 치료하는 방법 등도 현재 개발중이다.
이와 함께 인체 내의 복잡한 물질 구성은 양성자 빔을 이용한 치료 계획에 정확히 고려돼야 한다. 이를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측정된 전자 밀도 분포를 이용하는데, 얻어진 CT 수치는 X선의 투과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에 양성자 빔의 에너지 손실에 대한 변환이 필요하다.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 전, 일정한 빔량을 물이나 물과 비슷한 밀도를 가진 플라스틱 모형을 통해 실험해 적절한 값을 얻어낸다. 이런 과정은 전산화돼 있고 인위적인 실수가 없도록 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다.
기존 방법과 병행 치료될 전망
하지만 양성자 치료가 본격화된다고 해서 기존의 다른 방사선 치료법이 동원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방사선 치료는 작은 선형 가속기를 이용해 6-30MeV 정도의 전자 빔을 발생시켜 금속판에 입사했을 때 생성되는 광자나 전자 빔을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대형 병원에는 이미 널리 보급돼 있다.
실제 치료에는 어느 한가지 방법보다 이들 두세가지 방법을 조합해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양성자 빔을 이용한 치료의 경우도 먼저 기존의 X선이나 전자의 방사선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들이 퍼져 있는 넓은 지역을 조사한 다음 양성자 빔으로 암세포가 밀집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주는 방법 등을 쓰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미국의 로마 린다 병원에서 전립선 암 등에 사용해 효과를 보고 있다.
가속기 기술과 빔 조작 기술의 발전은 암환자 치료에 상당히 공헌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 기술의 완성도가 커지고 보급률 또한 높아져 국민의료 및 여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