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는 여러가지 형태로 발현된다. 소리나 냄새도 기의 상태를 반영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기(氣)를 접하면서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과연 어떠한 기들이 있는 것일까. 몇가지 경우의 예를 짚어보도록 하자.
해변가에 놀러가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그안에서 자는 잠자리는 무척 불편하다. 화창한 날씨이면 그나마 땅이 바짝 말라있어 잠을 청할만하다. 비라도 올라치면 그날 저녁의 잠자리는 비참하다. 무언가 땅 밑에서 칙칙하고 차가운 기운이 배어나와서 나의 온몸에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 자체가 바로 기를 느낀 것이 된다. 바로 외부의 기가 나의 기를 침범한 것이다. 물론 방수텐트이기 때문에 실제로 물이 텐트 안으로 스며드는 일은 없지만, 이럴 때는 숙면을 못하고 잠자리를 설치기 일쑤이다. 이때 그 칙칙하고 차가운 기운은 우리의 몸에 침입하여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소 몸의 기의 상태가 습기가 많고 차가워져 있는 상태, 즉 한습지기(寒濕之氣, 인체내의 기가 차갑고 습기찬 상태)가 많이 있는 사람이라면 병이 발생한다. 설령 건강한 사람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 다음날의 몸상태가 좋을 리가 없는데, 이것은 바로 한습지기의 영향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날씨가 맑은 경우에는 잘 지내다가도 궂은 날씨만 되면 지병이 악화되는 경우는 흔히 보는 일이다. 이것은 궂은 날씨가 인체의 한습지기를 더욱 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체외의 한습지기가 인체를 '투과하여' 체내의 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컨대 뽀송뽀송한 솜 한뭉치를 만들어서 마루에 놓았다고 하자. 비가 오거나 습기찬 날씨가 되면 습기가 차서 물컹거리는 상태가 된다. 한습지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바로 이와같은 것이다.
반대로 이런 경우의 사람도 있다. 맑은 날씨 높은 온도에서는 몹시 아파서 걱정하다가도 비만 오면 병이 잠시 쾌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의 기 상태는 어떠 할까. 그의 기는 몹시 메말라 있으며 더워져 있는 상태, 즉 조열(燥熱)한 상태가 된다. 이때는 외부의 한습지기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는 비오는 날이 즐거운 날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의 실내공기는 무척 건조한 편이어서 환절기에는 주의가 요망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코와 목구멍이 뻥 뚫려있는 느낌이 들고 콧물 가래가 생기기도 한다. 실내의 건조한 공기는 건조한 기운, 즉 조기(燥氣)로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피부 부위에서 순환되는 기, 그리고 콧속 목구멍 기관지점막에서 순환하는 기가 조기의 영향을 입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후자는 민감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비점막 편도선 기관지점막 등에 염증성 변화를 초래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인체의 어느 부위의 기는 특정한 종류의 기에 대해서 더욱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목소리와 기
인간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가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서 심리상태가 안정돼 있을 때와 불안할 때의 목소리는 한사람의 목소리라 하더라도 무척 다르다. 또 기쁠 때의 목소리와 슬플 때의 목소리가 차이가 난다.
자고로 목소리란 인체의 기가 총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단지 성대가 떨려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인체를 순환하고 있는 기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 목부위의 성대를 거쳐서 밖으로 분출되는 것이 목소리이다. 그리고 목소리의 기 상태는 전신의 기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발성연습을 할 때, 혹은 노래를 부르고자 할 때를 연상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즉 낮은 음을 내려면 아랫배에다 힘을 주어야만 하고, 반대로 음정이 높은 음을 발성할 때는 공명음이라고 하여 머리에서 울리는 방식으로 발성해야 한다. 즉 아랫배에서 울려주어야 아랫배에 많이 몰려있는 음기(陰氣)가 밖으로 새어나오면서 저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또 머리 부위에서 많이 울려주어야만 양기(陽氣)의 발현으로서 고음의 소리가 나게 된다.
기가 상체 부위로 많이 쏠리는 사람, 상체에 기가 많이 몰려 있어서 양기가 왕성한 사람은 고음이 나오거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 빠른 말솜씨, 능란한 어휘력, 힘 있는 목소리 등의 형태로 음성이 나오게 된다. 또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안정된 목소리, 낮은 음정, 느긋한 언어표현, 힘없는 목소리 등의 형태로 표현된다.
또 동물의 울음도 역시 그 동물의 기를 발현하는 것이므로 역시 이를 통해 그 동물의 기 상태를 알아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물의 울음을 들어볼 때 돼지 등은 음기가 많은 동물이고, 참새 꿩 닭 등은 양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돼지의 울음소리는 크기는 하지만 낮은 울음소리는 저음이며, 목소리는 크지만 멀리까지 퍼지지 못한다. 따라서 음기를 반영한다. 새는 맑은 소리에 고음이며, 소리는 작지만 멀리에서도 잘들린다. 바로 양기의 반영이다.
사람의 감정상태 역시 기(氣)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흥분하는 감정이 있을 때에는 얼굴이 벌개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로 기가 상체 부위로 많이 몰렸기 때문이며, 특히 얼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쁘거나 즐거운 일을 만나게 되면 기는 인체의 아랫쪽으로 많이 몰리게 된다.
왜냐하면 기가 상체로 몰리면 정신적으로 공격적이 되고 예민한 상태가 되는 것인데, 마음이 즐거울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기가 아랫부위로 몰린다는 것은 많은 양의 기가 배꼽부위 흑은 아랫배쪽으로 유입된다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자세도 안정되고 또 심리적으로도 느긋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살펴볼 때 인간의 기 상태는 그 사람의 체형, 성품, 심리상태, 행동양식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냄새로 나타나는 기
고상하고 아늑한 향기는 기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퀘퀘한 냄새 혹은 여러가지 악취는 반대로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보면 자신의 몸에서 아늑한 향기같은 것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은 등산을 통하여 자신의 기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최적의 상태로 만든 것이다. 팔다리를 적당하게 움직여 주는 것은 팔다리 기의 소통뿐만이 아니고, 체간과 팔다리 사이의 기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중세가 심해질 때 몸에서 특유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기의 순환에 장애가 발생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감기가 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심한 감기의 경우에는 목에서 거렁거렁 쇳소리가 나고 가래를 뱉으면 가래에서 냄새가 난다. 가래는 기가 뭉친 상태(鬱結)가 지속돼 나타나는 것이다.
가래의 냄새는 기관지나 목주위의 기가 잘 순환되지 않고 그자리에 똘똘 몽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참고로 기의 울결(鬱結)이 지속되면 그 부위의 세포의 변성(變性)으로 이어지고 변성된 세포가 많이 생길 경우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시켜 질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당뇨병 폐결핵 암등의 병에서도 특유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많은 의사들은 체험하고 있다. 기가 뭉쳐 있다는 것은 마치 넉넉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냄새가 없고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은 어김없이 악취를 풍기게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동식물의 기
포도에는 열매가 여러개로 나뉘어 열리고 사과나 배는 하나씩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양(陰陽)의 두가지 기운은 자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서 우리의 실생활에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옛부터 동양에서는 이 오묘한 지구의 삼라만상을 탄생시킨 것은 다름아니라 음양의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양기(陽氣)와 음기(陰氣)가, 혹은 적게 혹은 많이, 흩어지고 섞이고 흐르고 모이고 나뉘고 합해져서, 우주가 조형되고 생명이 탄생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는 자연의 음양의 이치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서술돼 있다. 또 풍수지리설이나 점성술 등도 자연에 숨겨져 있는 음양의 기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자연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에서 들에서 자연을 감상하면서 자연의 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한그루의 나무를 보고 한포기의 풀을 바라보면서 그 생물의 기를 파악 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우리의 조상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한가지 사물에 대해 올바르고 정확한 이해를 하는 것)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야 말로 격물치지가 아니겠는가.
음양의 기운이 생물의 모양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기를 많이 지니고 있는 식물은 형태학적으로 뿌리가 길고 땅속을 깊이 파고 든다. 또 이파리도 외부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있다. 양기를 가진 식물은 대황(大黃 한방약제로서 음체질에 이용하는 약)처럼 잎의 끝이 날카롭게 발달 되었거나 양파처럼 길게 뻗어 있다. 또 사과 배 고추 참외 등과 같이 열매가 하나씩 열린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양기의 치솟고 뻗는 힘 때문이다. 뿌리의 생장과정에, 뿌리가 자랄 때에 양기가 작용하므로 그와 같은 모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 열매가 하나씩 열리는 이유는, 쉽게 말해 양기는 '홀로서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기를 많이 지니고 있는 식물은 배추 등과 같이 뿌리가 짧고 잎이 둥그스레 하고 포도 등과 같이 열매가 모여서 열린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음기의 수축하고 안으로 모이려는 힘 때문이다. 식물의 생태와 생장과정에 기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기의 치솟고 뻗는 힘은 동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기린 사슴 소 등과 같이 뿔이 길게 나거나, 다람쥐 토끼 쥐 등과 같이 꼬리가 길게 나와 있는 것은 모두 양기를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닭 꿩 독수리 등 새의 날개도 역시 발생학적으로 체내의 양기가 솟아 나와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일이 검증해 보지는 못했지만 조류는 모두 체내에 양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토끼 사슴 그리고 조류에서도 보듯이 양기를 많이 지니고 있는 동물은 보고(視) 듣는(聽) 능력이 발달돼 있다. 조그만 소리가 들려도 달아나고, 특히 조류는 멀리 볼 수 있고 또 세밀하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돼지의 꼬리가 짧은 것은 양기가 부족하고 안으로 움추리는 음기를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역시 같은 이유로 소라 새우 멍게 해삼 우렁 조개 등의 동물들은 감각기관이 발달되어 있지 못하고 퇴화돼 있다. 이들은 그 전체적인 형태도 음기의 영향을 받아서 안을 향하여 쪼그라들고 우그러든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음기 동물들은 대체로 냄새 맡고(嗅) 맛보는(味) 능력이 발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