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터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독재자, 테러 지원자를 축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람들은 또하나의 목적이 석유자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연 석유가 어린이들의 목숨과 맞바꿀 가치가 있을까요. 경제적 목적을 가진 오늘날의 전쟁에 비해 고대 전쟁에는 순수한 면이 있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니까요.
기원전 800년 경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던 해에 수십일 동안 벌어진 신과 영웅들의 행적을 기록한 장편서사시입니다. 우리에게는 컴퓨터바이러스로도 잘 알려진 트로이목마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10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은 바로 아내를 찾기 위한 남편의 순정에서 시작됐습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 납치해간 아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군대를 일으킨 것이죠. 석유보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 더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학자들에게도 호메로스는 인기가 많습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의문점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 의문을 과학자들이 해결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른바 ‘호메로스 의혹’은 1795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볼프라는 학자가 처음 제기했습니다. 볼프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이곳저곳에서 시들을 모아 만든 것이며 호메로스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지만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마침내 지난달 멕시코국립자치대의 리카르도 만실라(수학)와 에드워드 부시(언어학) 교수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호메로스의 또다른 작품인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만실라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일리아스는 한사람이 쓴 것이지만 오디세이아는 여러 작가들의 집단창작물이란 것입니다.
연구팀은 두 작품의 운율 구조를 짧은 음절은 0, 긴 음절은 1, 그리고 음절 사이의 여운은 2로 표시해서 정보의 엔트로피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무질서도를 가리키는 물리학 개념인 엔트로피는 컴퓨터 공학에서 정보의 다양성, 즉 그 정보가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지 않고 새로운 내용이 많은지를 판단할 때 이용됩니다. 정보의 엔트로피는 압축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압축 프로그램은 어떤 문서에서 반복되는 부분을 하나로 줄이는 방식입니다. 나중에 압축을 풀 때는 프로그램이 만든 배치도를 따라 다시 같은 부분을 여러 곳에 복원합니다. 압축이 쉽게 되면 다양성이 부족하고 엔트로피가 낮은 것입니다.
연구 결과 일리아스는 엔트로피가 낮고, 오디세이아는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 또는 다른 누군가가 혼자서 썼기 때문에 동일한 운율구조를 가지지만 오디세이아는 여러 사람의 작품을 모은 것이어서 운율구조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같은 방법으로 ‘셰익스피어 미스터리’도 풀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창작물로 알려진 작품들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는 주장이 심심찮게 대두돼 왔습니다. 실제 작가로 주장된 사람 가운데 귀납론의 창시자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프란시스 베이컨과 제17대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 비어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 외 엘리자베스 여왕의 숨겨진 사생아가 때로는 베이컨, 때로는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난해 초 이탈리아 라 사피엔차대의 다리오 베네데토, 에마누엘레 카그리오티 교수(수학)와 비토리오 로레토(물리학) 교수 연구팀은 gzip이라는 컴퓨터 압축프로그램으로 90종의 문학작품을 압축한 다음 정보의 엔트로피를 분석했습니다. 물리학 저명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 작품에 같은 저자의 작품을 덧붙여 압축하면 작품 하나만 압축할 때와 비교해 엔트로피의 변화가 크지 않지만, 다른 저자의 작품을 덧붙이면 엔트로피가 커졌습니다. 저자뿐 아니라 언어가 달라질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이용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원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작품들을 분석해보면 동일 저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20글자만으로도 같은 언어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며 저자 확인은 93%의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요즘 가요계에서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그렇다면 해당 가요들을 한번 압축해보면 의혹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두다‘사랑’이란 단어 하나로 압축된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