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태어난다해도 물리학을 공부할 것이다. 설령 시인이 된다 하더라도 물리학을 배우고 나서다.”
장회익 교수는 물리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연구실이나 실험실에만 머무르는 물리학자는 아니다.
지난 1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함께 핵폐기장 추진 중단과 핵정책 전면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5월에는 경기도 일산구 중산마을에 위치한 고봉산이 개발로부터 훼손되는 일을 막기 위해 작은 산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적인 환경운동가인 셈이다.
장 교수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생명’이론이다. 이는 그가 생명에 관해 독자적으로 정립한 이론이다. 그의 영역은 동양철학까지 뻗어나간다. 지난해 7월 장 교수는 동양철학의 대표 격인 주역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해 학술회의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장 교수는 언론방송으로부터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월 서울대 교수직을 퇴직하고 3월 문을 연 녹색대학의 초대 총장을 맡아 경남 함양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 교수는 물리학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생명, 환경, 교육,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는 왜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물리학과 무관하게 단지 개인적 관심사가 그렇게 많기 때문일까. 장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다방면의 관심은 결국 물리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기자는 다음의 질문으로 장 교수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언제부터 물리학이 교수님의 삶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까?”
“아버지가 토목기사이셨죠. 그는 공부를 많이 하시진 않았지만 평소에 수학과 물리학 책을 많이 보셨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분야가 내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 비쳤던 겁니다.”
장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렴풋이 물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2 어느 날에는 아버지가 그에게 물리 문제를 하나 내주셨다. 그 문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자유낙하였다. 그는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의 친구 분이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는 물리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진로를 결정했다.
“교수님이 생명과 환경, 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어떤 세부분야를 전공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난 반도체 전문가예요. 양자역학에 기반한 반도체 이론을 전공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가 1960년대였는데, 그때는 컴퓨터가 무척 드물었죠.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으로 반도체의 성질을 알아내는 일이 나의 박사주제였어요. 그런데 이론을 선택한 이유가 아인슈타인과 비슷해요.”
장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남자라면 치러야 하는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군에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공군사관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물리학 교관을 하게 됐다. 그때 그는 혼자서 실험을 하다가 잠깐 사이의 부주의로 학교에서 제일 고가인 그럴듯한 전자실험장치를 고장내고 말았다. 실험장치가 매우 귀한 시절이라 이 경험으로 장 교수는 실험에 겁을 먹고 자신이 실험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장 교수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대학 3학년 때 실험실에서 사고를 내고 손에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10바늘을 꿰매야 했다. 그 다음부터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하게 됐다고 장 교수가 설명해줬다.
“그렇다면 생명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박사논문이 완성될 즈음이었죠. 컴퓨터로 계산해 결과를 얻는 일이 무척 따분했습니다. 1953년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당시에 생명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참 신기하더군요. 도대체 생명이란 뭔지, 그리고 DNA로 생명을 이해한다는게 뭔지 알고 싶어졌어요. 대학 다닐 때만해도 생명에 관심은 없었죠.”
1968년 박사논문을 쓰던 중 장 교수는 생명의 신비를 접했다. 그는 당시 같은 대학으로 유학온 한국인 미생물학도를 만나보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보며 혼자서 공부했더니 DNA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재미를 느꼈다.
그런데 장 교수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반도체를 연구한 것이 생명의 암호문인 DNA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반도체 대신 DNA 분자로 관심 대상만 바뀐 것과 같았던 것이다. DNA 분자의 복제 과정이 영상으로 그려지면서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면 그렇게 쉽게 머리 속에서 그려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장 교수는 물리학으로 생명에 처음 눈뜬 것이다.
“생명에 눈뜬 이후에는 어떻게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워오셨습니까?”
“박사학위를 받은 후 생명을 연구해보겠다고 맘을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물리학자가 생물학으로 전향하던 사람이 꽤 있었던 때라…. DNA를 발견한 크릭도 물리학자이었죠. 때마침 시카고대에 생물학이 아닌 분야의 박사학위자들이 모여 생물학을 연구하는 센터가 생겨났어요. 그래서 여기에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했죠.”
하지만 장 교수는 시카고대 이론생물학 센터로 가지 않았다. 애초 반도체 분야로 텍사스대에 박사후연구원을 신청했었는데, 시카고대와 텍사스대를 고민하다 좀더 물리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1969년 9월 텍사스대로 향했다.
텍사스대에서 그가 얻은 행운은 뒷날 노벨 화학상(1977년)을 수상한 벨기에 물리학자인 프리고진과의 만남이었다. 프리고진은 벨기에대 교수로, 1967년부터는 미 텍사스대 통계열역학센터의 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때문에 텍사스대에 자주 오갔다. 장 교수는 그곳에서 프리고진이 열역학적 방법으로 생명현상에 접근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살펴보곤 했다. 이후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 조금씩 생명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교수님은 물리학을 기반으로 ‘온생명’ 이론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생명이론을 물리학으로 펼칠 수 있습니까?”
“1988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생명을 주제로 한 과학철학 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발표할 논문을 쓰면서 온생명에 대한 개념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생명을 위한 최소 여건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나온 거예요. 이때 열역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온생명은 생명을 개개의 생명, 즉 낱생명 단위에서 이를 둘러싼 환경인 지구뿐 아니라 태양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야 온전히 생명이 이해될 수 있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이것은 그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생명에 대한 화두, 즉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물리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풀어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온생명과 열역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자연현상은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한다. 즉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만을 고려하면 이 법칙이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생명체는 진화를 거치면서 질서도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엔트로피가 감소하기 위해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된다면 이같은 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현상에서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순리지만, 외부에서 에너지를 제공하면 반대방향으로의 이동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엔트로피 감소는 지구에 태양에너지가 공급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장 교수는 지구 생명체를 태양까지 확대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수님은 환경운동에 동참하는 등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도 물리학과 관련이 있나요?”
“물리학자는 이론이 없으면 말을 하지 않는 사고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전체가 이론적으로 연결이 돼야 얘기를 시작하죠. 그래야 힘이 생기고…. 그런데 온생명 이론을 만들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환경이 바로 온생명의 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어요. 그러자 환경문제와 생태문제가 명확해지더군요. 그러면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서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 후 환경단체와 함께 활동하게 됐고….”
이처럼 장 교수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온생명 이론을 근거로 삼고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근거를 좀더 들어보자. 온생명 이론으로 보면 인간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신경세포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만을 생명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머지 신체를 환경으로 보고있다. 그래서 자기만 살겠다고 자신에게 편리하게 신체를 변형시킨 결과, 온생명에 왜곡이 생겨 환경과 생태계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과학철학뿐 아니라 동양철학에도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대학에 들어와서 물리학에 재미를 잃었어요. 고등학교까지 물리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는데 대학 내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그래서 대학 3학년 때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3-4학년 때는 부전공 수준으로 철학 수업을 들었어요.”
동양학문은 이보다 한참 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신이 동양인이면서 서양학자만 알았지 몇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의 학자는 모른다는 것을 느끼고서였다. 그리고 나서 한자를 공부했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장 교수는 우연히 족보를 뒤적거리다가 선조가 쓴 책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1631년에 쓰여진 ‘우주설’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성리학으로 도덕이나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장 교수는 마침내 그 책을 규장각에서 찾아냈다. 당시에 누구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우주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무척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책에는 대지라고 표현된 엄청나게 무거운 지구가 허공에 떠있는데, 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선조들은 궁하지만 열심히 답을 찾았다. 떠있는 이유가 대기가 순환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대지를 허공에서 받쳐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만 있으면 대기가 흩어지니까 구각이라는 것이 대기가 밖으로 못 빠져나가게 한다고 생각했다.
장 교수는 우주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통해 당시 우리 선조들이 이를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교가 없이 그냥 흥미에 따라 공부해서는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교수님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러나 물리학과 삶의 문제는 매우 동떨어져 보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관련이 있습니까?”
“물리학으로부터 시작해 생명, 환경, 철학, 그리고 꽤 멀리 떨어진 동양학문까지 가봤어요. 이것들은 결국 인간이 근원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답해주고 있습니다. 서양학문은 실제현상을 바탕으로 물질 중심으로 전개해나가는 대물지식이죠. 반면 동양은 대생지식인, 삶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요. 살기 위해 안다는 식이죠. 그러면서 동양학문은 온생명을 마치 알고있는 것처럼 근원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얘기합니다. 아마도 삶이 가장 기본관심이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온생명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고 본 거 같아요.”
장 교수는 현대 과학자들이 과학을 개척하는 것은 좋지만 전체 우주의 틀 속에서 자신을 알고 전체를 내다보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어떤 미래로 향해갈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연구를 잘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에 현실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다시 교수가 된다면 자신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교육은 단지 전문성만 강조하면서 열심히 연구하는 과학자만을 길러내고 있다.
장 교수는 꿈을 꾼다. 학생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공부하는 교육을 말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해주려고 한다. 그는 녹색대학에서 이 꿈을 펼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