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② 시험관에서 이뤄지는 DNA 진화

원하는 기능만 갖는 맞춤효소 가능

우리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쌀과 보리, 감자, 옥수수, 돼지고기, 소고기. 또는 우리가 입고 있는 면과 모. 아니면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예쁜 꽃이나 애완 동물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오랜 조상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많은 것들은 지난 세기동안 더나은 수확량과 인간이 원하는 형질을 얻기 위해 생물체를 서로 교배시키는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다.

생명체의 본질이 DNA라고 밝혀진 이후, 인간은 육종기술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게 됐다. 유성생식시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상동염색체를 구성하는 DNA 사이에 재조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재조합은 자신의 유전체 일부를 다른 유전체에 주고 자신은 다른 유전체의 일부를 받아들여 새로운 유전체를 재구성함을 말한다. 생물체의 교배시 유전체 재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유전적 다양성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특성을 갖게 했고, 인간은 원하는 특성의 생물체를 얻기 위해 재조합 기술을 터득했다. 현재는 생물체의 육종기술을 시험관 내에서 모방함으로써 전체 생물체가 아닌 개개의 유전자나 유전체를 교배시켜 단기간 내에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제는 생명체의 본질인 DNA를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손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DNA를 진화시키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옥수수 등의 음식은 우수한 종끼리 교잡시키 는 육종기술의 결과물이다. 최 근에는 시험관 내에서 원하는 방 향으로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기 술이 개발되고 있다.


원하는 DNA만 취사선택

DNA 진화기술의 가장 대표적 예는 ‘유전자 진화기술’이다. DNA 혼합기술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법은 서로 다른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유전자군을 시험관 내에서 교배시켜 유전자의 일부가 서로 교환된 다양한 재조합 유전자군(라이브러리)을 만들고, 이 라이브러리로부터 유용한 유전자만을 선발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에 ‘진화’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인위적으로 DNA를 교배시켜 원하는 특성의 자손 DNA를 선택하는 과정이 마치 생물이 유성생식이라는 재조합과정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고, 자연환경이라는 선택과정을 통해 적합한 자손만을 번성시키는 자연계의 진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진화기술은 1994년 윌리엄 스티머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됐다. 스티머는 생물의 유성생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전체 재조합 원리를 시험관에서 모방하기 위해 다양한 돌연변이를 가진 유전자군의 DNA를 무작위로 조각냈다. 이 조각을 하나의 시험관에 섞은 다음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시키면 DNA 조각 사이에 접합과 중합반응이 일어나 서로 섞이게 된다. 이런 반응을 수십회 계속함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재조합 유전자 라이브러리가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유전자 라이브러리를 대장균 등의 적당한 숙주에 삽입한 뒤, 숙주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유전자 산물을 분석하면 우리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유전자를 선발할 수 있다.

유전자 진화기술은 ‘유전자의 무작위 교배’라는 과정을 통해 각각의 유전자가 보유한 유익한 돌연변이를 한 유전자에 모으고, 나쁜 돌연변이는 제거함으로써 유전자 진화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인간이 의도한 특성을 갖는 DNA를 얻을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의 치료제로 흔히 쓰이는 알파-인터페론을 예로 들어보자. 다양한 알파-인터페론의 유전자들을 DNA 혼합기술을 이용해 시험관에서 교배시킨 결과, 무려 28만5천배로 그 활성이 증가한 알파-인터페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활성을 가진 인터페론을 자연계에서 얻으려면 아마 수십만년 이상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단기간 내 자연친화 생물공정 개발

유전자 진화기술의 또다른 장점은 수백만년에 걸쳐 일어나는 자연진화를 단시간에 가능케 함으로써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특성을 가진 유전자 변이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적 효율을 보이는 조건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작용하는 새로운 유전자 변이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리파아제 효소는 특정 입체구조를 갖는 지방만 분해하는 특성을 갖는데, 유전자 진화기술을 활용하면 대부분의 지방분자를 분해하는 고효율의 리파아제를 만들 수 있다. 즉 자연계에서 존재할 때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기질에 대한 선택성을 버리고 인위적으로 인간이 선택한 다른 기질에 대해서도 높은 촉매 효율을 보이는, 자연계에 존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효소(단백질)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유전자 진화기술은 인간이 의도한 방향으로 DNA를 진화시킬수 있기 때문에 화학공업과 의약용 단백질, 농업, 환경산업 등 생물산업 전반에 걸쳐 적용 가능하다. 특히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였던 화학공정을 자연친화적인 생물전환공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에 유전자 진화기술은 매우 유용하다. 지금까지는 생물전환공정에 적합한 효소를 개발하기 위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효소를 탐색하고 돌연변이를 통해 개량하려는 시도 등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기존의 화학공정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반응특성이 우수한 효소를 개발하기 매우 힘들다.

그러나 유전자 진화기술을 이용하면 목적하는 화학공정에 적합한 맞춤효소를 단기간 내에 개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화학공정을 생물공정으로 전환하는데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유전자 진화기술을 통해 의약용 단백질(항체나 성장 호르몬, 사이토카인 등)을 개량해 그 기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효능과 안정성이 뛰어난 새로운 의약용 단백질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현재 DNA백신 개발, 유전자 치료용 벡터 개발 등의 분야에도 그 응용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바이러스보다 앞서가는 치료제


유전자 진화기술을 이용하면 바 이러스가 미래에 어떤 표면 단백질을 발현시킬지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미래의 바 이러스에 대한 신약을 미리 개발할 수 있다.


유전자 진화기술은 유용한 DNA의 진화를 가속화시키는데 머무르지 않고 인간에게 해로운 미생물의 미래 진화과정을 예측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신약 개발 과정을 생각해보자. 바이러스에 대한 신약은 바이러스 표면의 특정(표적) 단백질을 타킷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표적 단백질을 코딩하는 내부 DNA 서열을 바꿈으로써(돌연변이) 표적 단백질의 특성을 바꾼다. 이렇게 되면 신약은 아무 소용이 없다.

유전자 진화기술을 이용하면 이들 표적 단백질의 DNA에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시험관에서 서로 교배시켜 다양한 변이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다음 이들을 바이러스에 옮기면 변형된 표적 단백질을 만드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단기간에 생산할 수 있다. 즉 유전자 진화기술을 통해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표적 단백질의 미래 진화 모습을 현시점에서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변이 표적 단백질을 갖고 있는 바이러스에 신약을 처리하면 이들이 신약에 어느 정도 내성을 갖는지 효율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다. 또 얼마 후 신약에 내성을 보이는 바이러스가 출현하는지도 예측 할 수 있다. 미래에 출현할 바이러스에 대한 신약을 현재에 미리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DNA 차원에서 이뤄지는 인위적 진화기법에는 유전자 진화기술 이외에 ‘게놈 혼합기술’이라는 기법도 있다. 이 기술은 주로 동종의 박테리아나 곰팡이로부터 원형질체(세포막과 세포질, DNA가 모두 포함된 한 개체)를 얻은 다음, 복수의 원형질체를 반복해 융합함으로써 전체 게놈들 사이에 재조합을 일으키는 기술을 말한다. 유전자 진화기술이 개개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게놈 혼합기술을 유전자 전체가 포함돼 있는 게놈을 대상으로 한다.

자연계의 유성생식에서는 암수의 게놈이 재조합되고 그 기간도 몇년이 필요하지만, 게놈 혼합기술을 이용하면 시험관에서 복수의 게놈을 불과 수주만에 교배시킬 수 있다. 게놈 혼합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재조합 게놈을 함유한 미생물 중에서 인간이 원하는 가장 우수한 형질을 보이는 변이체를 선택하면, 인간이원하는 인위적 미생물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다. 아직까지 게놈 혼합기술은 미생물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식물이나 동물의 게놈을 시험관에서 교배시키고 이들을 인간이 의도한 방향으로 단기간에 진화시킬수 있는 기술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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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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