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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검색대 X선이 찾아낸 독극물

화학 동원한 법의학 원조는 셜록 홈즈

“아프가니스탄에 있다가 오셨군요.”

영국 런던에서 사립탐정으로 일하는 셜록 홈즈가 훗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수가 될 존 H. 왓슨을 처음 보고 한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왓슨의 말에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추리한 내용을 설명해준다.

왓슨에게 의사 같으면서도 군인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것으로 봐 군의관이라 추측했고, 손목은 희지만 얼굴은 검게 그을린 것으로 봐 열대지방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왼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걸 보면 부상이 있었던 것 같고 얼굴이 해쓱한 걸 보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영국군의관이 그렇게 심한 고생을 하고 팔에 부상까지 입을 만한 곳은 당시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아프가니스탄밖에 없다고 결론내렸다는 것이다.

홈즈와 왓슨이 주고 받은 첫 대사인 “아프가니스탄에 있다가 오셨군요”는 홈즈가 얼마나 논리정연한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로서, 셜록 홈즈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대사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그가 살았다고 기록된 영국 런던 베이커거리 2백21번지 B호에는 셜록 홈즈 박물관이 설립돼 있는데,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을 뜻하는 대사인 “아프가니스탄에 있다가 오셨군요”가 기념패로 만들어져 전시돼 있다. 그는 왓슨 외에도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직업이나 다급한 사정을 먼저 알아맞추곤 한다.

왕립화학회의 명예회원 셜록 홈즈

셜록 홈즈는 명석한 두뇌와 직관을 이용해 복잡한 사건을 풀어내는 사립탐정의 대명사다. 과학적인 수사와 논리적인 추리로 늘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그는 소설이 나온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종종 실존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2002년 10월 영국왕립화학회는 명탐정 셜록 홈즈를 명예회원으로 임명하고, 특별 명예회원 메달을 수여했다. 이 메달은 홈즈의 열렬한 팬이자 홈즈의 친구 왓슨과 성이 같은 왕립화학회 종신회원 존 왓슨 박사가 런던 베이커거리에 있는 홈즈 동상의 목에 걸어주었다. 홈즈가 이런 명예를 얻게 된 것은 홈즈를 탄생시킨 작가 코난 도일이 1902년 에드워드 7세 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은지 꼭 1백년만의 일이었다. 영국왕립화학회는 ‘홈즈는 범죄 해결에 화학을 이용한 점에서 시대를 앞서갔으며, 오래 전 그가 사용한 방법이 오늘날에 와서 법의학으로 자리잡아 그 덕분에 많은 범죄들이 해결됐다’면서 명예회원 추대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셜록 홈즈는 식물학, 화학, 지질학, 해부학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런 지식들을 적극 활용했다. 셜록 홈즈가 식물학과 화학에 풍부한 지식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작가 코난 도일이 1876년부터 1881년까지 에든버러대에서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난 도일은 해부학과 화학에 조예가 상당히 깊었으며 대학 졸업 후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에든버러대 시절 은사였던 조셉 벨 박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조셉 벨 박사는 평소 “환자를 진단할 때에는 눈과 귀와 손과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진찰실로 들어온 환자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병명을 알아맞추곤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면 “당신은 변호사군요”와 같이 말하면서 그 사람의 직업을 알아맞추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조셉 벨 박사를 모델로 해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탄생된 것이다.

시신 냄새 맡고 사인 규명

셜록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소설이자 코난 도일의 첫 장편소설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1887)는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이 시작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화학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용의주도한 살인사건이라 할 만한 독극물에 의한 살인을 홈즈가 명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영국 로리스턴 가든 3번지의 커다란 방에서 40대 남자 한명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방에선 여기저기 곰팡이가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창문은 더럽기 짝이 없었으며, 한쪽 구석에는 타다 남은 빨간 양초가 놓여 있었다. 보통 체격에 어깨가 넓은 죽은 사내는 양쪽으로 팔을 넓게 벌린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는데, 꼬인 다리는 죽음의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몸부림의 흔적은 있었지만 뚜렷한 외상은 없었다. 벽에는 독일어로 복수를 뜻하는 ‘라헤’(RACHE)라는 단어가 피로 쓰여 있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그 남자는 왜 이곳에서 고통스런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걸까.

셜록 홈즈는 집앞에 난 발자국과 그 보폭을 통해 범인이 ‘키가 1백80cm 이상 되는 남자’라고 추측한다. 또 벽에 새겨진 글씨 밑에 손톱 자국이 나있는 것으로 봐 오른손 손톱이 긴 남자임을 알아맞춘다. 오랫동안 집앞을 왔다갔다 한 마차의 말발굽 흔적을 보고 범인이 마차를 타고 이 집까지 와서 살인한 후 마차를 타고 사라졌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왓슨의 직업을 알아맞추는데 발휘됐던 홈즈의 놀라운 추리솜씨는 사건현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사건현장에 이미 도착해 있던 경관들은 피해자가 지팡이에 얻어맞고 즉사한 것으로 봤다. 복부 바로 윗부분을 정통으로 맞으면 아무 외상도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홈즈는 죽은 자의 입가에 코를 가져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 다음, 피해자가 독극물에 의해 살해됐음을 단번에 알아맞춘다. 그는 시신의 입에서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독살의 가능성을 감지한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잡힌 범인은 남아메리카에서 쓰이는 화살 독에서 추출해낸 알칼로이드를 이용해 독극물을 만들었다고 자백했다.

주로 식물에 분포하는 ‘알칼로이드’(alkaloid)는 어떤 하나의 물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질소를 함유하는 염기성 유기화합물 전체를 말한다. 현재 2백50종 이상의 다양한 알칼로이드계 물질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담배 속 니코틴, 독당근에 들어있는 코니인, 코카인의 성분인 트로핀알칼로이드, 양귀비의 페로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알칼로이드는 주로 진통제(모르핀)나 국소마취제(코카인), 교감신경작용제(에페드린), 부교감신경작용제(아트로핀), 중추신경흥분제(레세르핀) 등 의약품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주홍색 연구’에 나오는 것처럼 약리작용과 함께 독작용도 있어 복용하면 중독현상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다. 농약의 일종인 살충제 아바신이나 돌연변이 유발제로 쓰이는 콜히친 등도 알칼로이드계 물질의 예다. 따라서 소설에서처럼 알칼로이드 물질이 살인무기로 사용되는 것은 그럴듯한 설정이라 볼 수 있다.


독극물이 든 물질을 판별하는 방법. 용액 상태인 경우 리트머스 시험지를 이용


초콜릿으로 꿈꾼 완전범죄

독극물에 따라 복용한 사람들의 증상은 제각기 다르다. 비소 같은 중금속은 위경련이나 구토를 일으킨다. 일산화탄소 같은 휘발성 물질은 현기증이나 메스꺼움을 일으키며, 요오드나 PCP(phencyclidine)와 같은 의료용 마약류는 환각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특히 알칼로이드계 진정제를 과다복용한 경우에는 ‘주홍색 연구’처럼 아무런 외상이나 증상없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미국 뉴욕에서는 알칼로이드계 물질인 아트로핀을 이용해 교묘한 독극물 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뉴욕에 있는 한 대학의 인류학과 학과장 존 야누시 박사는 대학 연구실에서 마약을 만들다가 들통나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앙심을 품고 연방 판사에게 복수할 계획으로 판사에게 독약을 섞은 초콜릿 상자를 보냈다. 몇몇 초콜릿에는 알칼로이드계 물질인 아트로핀(동공을 팽창시키고 맥박을 빠르게 하는 부교감신경작용제)을 채우고, 다른 몇몇 초콜릿에는 맥박을 고르게 하는 필로카르핀을 집어넣었다. 그 판사가 두가지 초콜릿을 모두 먹는다면, 아트로핀 중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맥박은 정상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인 규명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 야누시 박사의 계획이었다.

야누시 박사는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초콜릿 상자를 판사에게 보냈고, 공교롭게도 판사 부인이 아트로핀으로 채워진 초콜릿을 먹고 기절했다. 다행히 부인의 동공이 팽창된 것을 병원 간호사가 발견해 아트로핀 과다복용 및 중독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 후 빨리 조치를 취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홈즈처럼 시체의 입냄새를 통해 독극물의 존재를 알아맞출 수 있을까. 몇몇 독약이나 살충제의 경우에는 냄새만 맡고도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특히 방화사건의 경우에는 연기의 냄새를 맡고 기름 같은 촉매제에 의한 방화였는지, 아니면 자연발생된 화재였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피셔가 쓴 FBI 사건보고서 ‘확실한 증거’에 따르면, 대부분의 화학부서 직원들은 냄새를 맡아 독극물을 추적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험할 뿐 아니라 시체 자체의 냄새 때문에 정확히 독극물의 존재를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부패한 오래된 시체의 입가에 코를 갖다대 독극물의 냄새를 맡는 것은 셜록 홈즈 같은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1천만분의 1g으로 화학물질 판별 가능

소설에서 홈즈는 나중에 독극물이 들어있는 알약을 발견한 후 이런 대사를 읊조린다. “가볍고 투명한 걸 보니 물에 녹을 가능성이 높군.”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이 발견한 알약에 독극물이 들어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옆에서 놀고 있던 개에게 알약을 먹인다. 이 불쌍한 짐승이 알약을 먹은 후 사지를 부들부들 떨다가 벼락을 맞은 듯이 빳빳해지면서 숨이 끊어지자, 홈즈는 자신의 추리가 맞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알약의 무게를 손으로 감지해서 수용성임을 짐작하는 그의 대사가 얼마나 그럴듯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약이 독극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에게 그것을 먹여 확인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FBI 내에 있는 화학-독물학 부서에서는 1백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의 샘플만 있으면 어떤 화학물질인지 알아낼 수 있다. 분광기록계의 발명 덕분에 말이다.

수천만개나 되는 유기 화학물질은 물질마다 나름의 독특한 분자구조를 갖고 있다. 분자마다 흡수하는 빛의 파장이 제각기 다르다는 성질을 이용해 분광기록계는 물질에 다양한 파장의 빛을 쏘여서 그 물질이 흡수하는 빛의 파장을 측정한다. 이 분자적인 지문을 통해 독극물의 화학성분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분광기록계에 얽힌 흥미로운 사건기록 하나가 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 사는 7명의 시민이 청산칼륨(청산가리)이 입혀진 타이레놀(진통제의 한종류)을 먹고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터진 후 많은 말썽꾸러기들이 ‘돈을 내놓지 않으면 제품에 독극물을 넣겠다’는 유사 협박편지를 타이레놀 사에 보냈다. 실행으로 옮겨진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뉴욕에 있던 몇몇 약병 속에서 독이 묻은 타이레놀 알약이 발견됐다. 상인들은 즉시 진열대에서 수천개의 타이레놀 약병을 치워버렸다. 그러나 그 중에서 독이 든 약병을 모두 골라내는 일이 FBI 화학검사실에 맡겨졌다. 약병들을 빠르고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검사하는 장치가 필요했지만, FBI 검사실에는 그럴 만한 장비가 없었다.

그 중 한 분광학자가 아이디어를 냈다. 칼륨은 X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고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칼륨이 들어간 청산칼륨에 X선을 투과시키면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FBI 화학부서에는 X선을 이용하는 분광기록계가 하나도 없었다. 거대한 X선 발생장치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모든 약병을 뉴욕 케네디공항 보안대로 가져갔다. 여행자의 짐을 검사하는 검색장치가 X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항에 있는 검색용 기계를 사용해 단 몇시간만에 청산칼륨이 묻어있는 몇개의 약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수십명의 생명을 구한 약물 검사가 공항 보안대 검색장치에서 이뤄진 것이다.


분광기록계를 이용해 물에 든 마그네슘의 양을 측정하는 모 습. 마그네슘은 특정한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파 장의 빛을 쏘였을 때 흡수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독극물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


주홍빛 살인의 혈맥

셜록 홈즈가 이번 살인사건을 ‘주홍색 연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주홍색이 서양에서 비유적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빛깔이기 때문이다. 홈즈는 다소 문학적인 표현으로 왜 이번 사건을 ‘주홍색 연구’라고 명명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삶의 무채색 실꾸러미 속에, 주홍빛 살인의 혈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실꾸러미를 풀어서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 그것을 가차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독극물에 의한 살인은 지금도 종종 발생하는 사건이다. 오늘날 형사들이 사건현장에서 하는 일 역시 피해자의 몸에 남아있는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 그것을 가차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최근 약물학은 셜록 홈즈가 마차를 타고 사건현장을 누비던 시대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정교한 장치들로 무장돼 있다.

하지만 FBI 부서는 독극물의 정체와 피해자의 사인을 알아낼 수는 있어도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다. 현대의 독극물 사건은 많은 사람이 마시는 음료수나 식수에 독극 물질을 타는 것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장난 삼아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많아, 그 잔혹성은 더욱 심각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독극물을 먹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런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지 안다면 그런 일은 결코 저지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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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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