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가정에는 정수기가 있나요?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정이다. 이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 좀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산업발전은 환경파괴라는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다. 특히 공기와 물의 오염은 하루하루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물의 경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수자원이 고갈돼 가고 있을 뿐 아니라 폐수도 늘어나고 있다. 또 늘어난 폐수는 2차오염을 통해 수자원의 고갈을 더욱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환경문제의 고리를 끊고 산업발전과 환경보존의 두마리 토끼를 잡게 해주는 묘책은 과연 없을까. 폐수를 재활용한다는 아이디어가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답이다.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용한 물을 모두 모아 처리한 후 그 물을 다시 사용자에게 돌려보내 재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물의 사용량을 급격히 줄여 수자원을 보호할 수 있다. 이를 ‘무방류 시스템’이라고 한다.
현재 염료염색폐수 처리 불가능
무방류 시스템은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처리된 물의 순도가 용도에 적당해야 한다. 가정에서 사용될 물은 샤워나 설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보다 좋으면 된다. 반면 반도체제조공정에서 사용될 물은 초순수와 동일해야만 재사용이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처리기술이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실제로 사용되기 어렵다. 처리시설이나 운전유지에 드는 비용을 모두 감안해 계산된 처리수의 가격이 기존 수돗물 값과 일반폐수 처리비용의 합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처리시설의 규모가 작을수록 좋다. 그래야 아파트 단지나 공장과 같이 기존의 폐수처리시설이 어려운 곳까지도 널리 보급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폐수처리 기술은 이 세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폐수란 말 그대로 그 구성성분이 매우 복잡하다. 이것저것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종류의 오염물들이 함께 섞여있다. 이같은 폐수를 기존의 생물학적 처리법과 흡착법으로는 일반 생활하수나 대체로 단순한 공장 폐수의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때 처리수 수질은 겨우 하천이나 강으로 방류할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에서 정한 방류수 기준을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만 처리해 하천이나 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난분해성 폐수는 생분해가 어려운 화합물들이 다량으로 포함된 것으로, 생물학적 처리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대다수의 공장폐수는 난분해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염료염색폐수, 펄프제지폐수 등이 그렇다.
비용 측면에서도 경제성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기존의 처리 방법은 방류수 수준으로 보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을 재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처리하는 무방류 시스템을 실현시키는 일은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넘는다. 결국 이 방법으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매우 넓은 면적의 처리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집수조, 화학처리조, 1차 침전조, 2차 침전조, 생물학적 처리조 등을 갖춰야 한다. 공장이나 일반 주거지역에서 이를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막으로 소금까지 모두 분리해낸다
그렇다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환경친화적 무방류 시스템으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나노소재기술을 적용한 분리막을 이용하는 것이다. 막으로 폐수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순수한 물만을 걸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분리막의 한종류인 역삼투막은 물 속에 녹아있는 가장 작은 1가 이온인 소금이온(${Na}^{+}$, ${Cl}^{-}$)까지 모두 제거하는 탁월한 성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밀여과막, 한외여과막, 이온교환막, 역삼투막 등 여러개의 막을 적절히 조합해 사용하면 폐수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존 방법으로 폐수처리를 할 경우 응집제와 수소이온농도(pH) 조절 등을 위한 화학약품들을 다량 사용해야 하지만 분리막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재사용 가능한 수질을 만들 수 있는 공정 중 최저의 처리비용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방법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막의 가격은 사용조건을 적합하게 조절하고, 분리막 교체시기를 최대한 길게 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분리막 시스템은 부피 측면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분리막법은 가장 조밀한 폐수처리 시스템으로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땅이 좁은 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폐수처리 공정이다. 특히 부피가 작아 처리 시설을 2층, 3층과 같이 복층구조로 설치할 수 있어 공간에 제한을 받는 장소에서는 최적의 폐수처리 공정이다.
산소막의 구멍은 수소 한개 크기
나노소재기술은 바로 이런 장점을 지닌 분리막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분리막 기술은 다양한 선택투과특성을 지닌 분리막들을 이용해 물질분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물질 분리에 있어서 분리해야 할 혼합물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이들 분리에 사용되는 분리막의 특성 또한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기체분리용 분리막의 경우를 보면 산소·질소 분리막, 이산화탄소 분리막, 휘발성 유기물 분리용 분리막 등이 있고, 액체분리용 분리막에는 역삼투막, 한외여과막, 정밀여과막, 투석기, 이온교환막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따라서 막의 종류에 따라 활용분야도 다양하다. 에너지효율 증가 또는 의료장비 제조용 산소 분리막, 지구온난화를 저감하는 이산화탄소 분리막, 주유소의 휘발유 회수를 위한 휘발성 유기물 분리용 분리막, 폐수처리 및 혈액투석기 제조를 위한 다공성 분리막 등 활용분야는 분리막의 특성과 매우 밀접하다.
나노소재기술은 분리막이 이같은 다양한 특성을 갖기 위해 동원된다. 초기 분리막은 나노소재기술을 사용하지 못한 탓에 실질적인 활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분자를 용매에 녹이고 이를 얇은 두께로 주조하고 건조시켜 제조됐다. 때문에 표면에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지닌 기공이 없고 단지 고분자의 분자 사이의 부피만이 기공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 결과 분리막으로 거르고자 하는 물질이 잘 통과하지 못해 투과도가 매우 낮았다. 또한 기계적 강도가 낮아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다.
우수한 분리막은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높은 선택도와 투과도 그리고 기계적 강도다. 분리막의 선택적 투과성질은 분리막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대부분은 분리막 표면의 기공 크기와 기공의 분포도 그리고 기공을 형성하는 물질의 화학적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체로 흙에서 자갈을 걸러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체의 구멍이 작을수록 작은 돌까지도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큰 자갈만을 걸러내려면 체의 구멍이 너무 작으면 안된다. 마찬가지로 분리대상에 따라 분리막 표면의 기공이 적당한 크기를 가져야 한다.
산소·질소를 분리할 목적의 분리막의 경우 표면의 기공은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옹스트롬(Å, 1Å=${10}^{-10}$m) 크기다. 1Å은 불과 수소원자 한개의 지름과 비슷하다. 산소·질소 분리막은 공기 중의 산소와 질소를 분리해 다양한 용도에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공기에서 산소만을 분리할 경우 기계의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 공기에서 질소만을 걸러내 식품보관용 용기에 포함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도록 한다. 한편 산소·질소 분리막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는 산소·이산화탄소 분리막의 경우에는 인공폐에 응용될 수 있다. 막이 심장에는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걸러내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한편 가정에서 사용되는 한외여과 정수기용 분리막의 경우는 수μm 크기의 기공으로 형성돼 있음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이때 분리막 표면의 화학적 성질은 재료에 따라 결정된다. 분리막 표면의 화학적 성질을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는 친수성이고 나머지는 소수성이다. 물과 같은 용매를 처리할 경우에는 분리막의 표면이 친수성인 것이 좋고 유기용매나 소수성이 강한 물질을 처리할 분리막은 소수성의 표면을 지닌 것이 유리하다.
투과도는 분리막의 단위시간 단위면적 당 처리할 수 있는 성능을 가늠하는 주요 인자다. 분리막의 투과도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는 분리막이 다공성 구조여야 한다. 한편 분리막은 운전시 필요한 압력차와 같은 외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기계적 강도를 갖춰야 한다.
튼튼하게 원하는 물질 빨리 걸러내기
문제는 이 세가지 특성을 지닌 분리막을 한번에 제조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세가지 요소가 모두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지 않고 밀접하게 상호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투과도를 높이려면 분리막 전체가 다공성이면서 얇아야 물질이 이동할 때 걸리는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는 높은 선택도와 기계적 강도를 기대할 수 없다. 투과도를 높이기 위해 기공을 크게 할 경우 작은 물질을 분리할 수 없어 선택적 투과도가 낮아진다. 또 얇으면서 높은 기공 분포도를 지닌 막은 높은 기계적 강도를 갖기 어렵다. 반대로 높은 선택도와 기계적 강도를 위해 기공이 없거나 아주 작은 기공으로 된 두꺼운 막을 만들면 투과도는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장 적합한 분리막의 구조를 개발하는 것이다. 즉 분리막이 여러개의 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선 물질 분리가 일어나는 분리막의 표면에 아주 얇은 층으로 아주 작은 기공을 분포시킨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물질 분리가 가능해진다. 그 아래층에는 스폰지와 같이 대체로 큰 기공으로 형성된 충분히 두꺼운 층을 만들어준다. 그러면 분리막 표면을 통과한 물질이 저항 없이 두꺼운 분리막층을 통과해 투과도뿐 아니라 기계적 강도가 높아진다. 이런 분리막의 구조는 ‘비대칭다공성’ 구조라고 하는데, 단순한 고분자 가공기술로 제조가 불가능하다.
나노소재기술은 이같은 구조를 갖는 분리막 제조의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분리막 표면에 나노크기의 기공을 형성하려면 우선 나노크기의 고분자 입자가 필요하다. 이 고분자 나노입자는 분리막의 표면층을 형성한다.
다음으로 마이크로 단위의 고분자 덩어리로 분리막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게 한다. 즉 분리막 표면층에는 작은 크기의 기공이 고루 분포하게 되고 그 하부구조에는 큰 기공으로 된 두꺼운 층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크기가 작은 모래로 한층을 만들면 매우 크기가 작은 기공들로 형성된 얇은 층이 형성되고 큰 자갈들로 층을 만들면 좀더 큰 기공으로 된 두꺼운 층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노소재기술은 분리막에 쓰이는 고분자 덩어리의 크기를 조절하게 해준다.
2-3년 내 수요 급증 예상
이처럼 고분자 분리막의 제조에서 나노소재기술을 응용하는 방법을 ‘상전이법’이라고 한다. 일정양의 고분자를 유기용매에 녹여 만든 고분자용액으로 원하는 분리막의 모양을 갖도록 주조한다. 그런 후 이를 사용한 고분자가 녹지 않으면서 고분자제조에 사용된 유기용매와 서로 잘 섞이는 용매에 넣으면 고분자용액(액체상태)에서 다공성 고분자체(고체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상태가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는 방법을 이용한다고 해서 상전이법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중요한 것은 상전이 과정에서 액체상태의 고분자들은 나노크기의 고분자 알갱이들로 바뀌면서 응집이 계속 일어나 나노 크기의 기공을 지닌 다공성 일체형 고분자 분리막이 형성된다는 것.
이때 형성되는 고분자 덩어리의 열역학적 안정성과 이들이 서로 엉기는 속도에 따라 분리막의 기공 크기와 기공 분포도가 달라진다. 또한 분리막 표면의 작은 기공층과 하부구조의 큰 기공층은 용매와 비용매 사이의 교환속도 차이를 통해 한꺼번에 제조할 수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나노소재기술은 원하는 분리투과특성을 갖는 고분자 분리막을 제조할 수 있다.
다양한 기공의 크기와 분포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나노소재기술을 이용한 상전이법은, 매우 작거나 기공이 거의 없는 얇은 표면층과 다공성인 하부구조로 된 기체 분리막에서부터 수십μm 크기의 기공으로 형성된 정밀여과막까지 다양한 제조가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고분자를 사용할 수 있어 분리막의 화학적 성질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분리막의 형태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본 공정의 큰 장점에 속한다.
분리막법을 이용한 무방류 시스템은 이미 적용단계에 있다. 좀더 우수한 분리막의 개발과 더불어 2-3년 내에는 그 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시장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폐수를 재활용하지 않는 회사와 주택의 수를 감안할 때 성공적인 무방류 폐수 재활용 시스템의 개발은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분리막 기술을 통한 나노소재기술은 환경보존과 개발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