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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얼룩지는 바다

유조선 침몰 후에도 수년 간 석유 유출한다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물질 중 하나가 기름(석유)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단 하루라도 30만t의원유가 없으면 자동차는 물론 공장을 움직일 수 없어 경제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따라서 기름을 수송하는 전용선박인 유조선으로 원유를 나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02년 11월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스페인 연안에서 대형 유조선 프레스티지호가 침몰해 엄청난 양의 기름을 해양에 유출시켰다는 것이다. 충격이 가시기 전인 올해 1월에는 우리나라 군산항에서 유조선의 벨브가 고장나는 사고가 발생해 반경 5백m의 바다가 기름으로오염됐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유조선 침몰과 기름유출, 그리고 그 후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바다 속에 가라앉은 프레스티 지호는 현재도 계속 기름을 유 출하고 있다


4조원에 이르는 손해 부르기도

지난해 11월 19일 침몰한 유조선 프레스티지호는 기름 7만2천t을 적재하고 스페인 연안을 항해중이었다. 불행히도 태풍을 만나 선체 오른쪽에 15m 정도의 균열이 생겼다. 이 균열을 통해 침몰 직전까지 약 4천t의 기름을 내뿜었고, 침몰한 후 현재까지는 약 1만8천t의 기름을 유출시켰다. 처음 균열이 생긴 직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사고선박이 피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묵살했다. 그 결과 갈리시아 외해역으로 예인하는 도중 스페인 해안선 서쪽으로 2백10km 떨어진 수심 3천5백m인 곳에서 선체가 두동강이 난 채로 침몰하게 된 것이다.

이 사고로 스페인 서부 해안은 검은 기름띠로 휩싸였다. 바다에서 어업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수십만명에 달하는 어민의 생활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으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해양환경이 오염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도 침몰된 선박으로부터 기름은 계속돼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침몰선박으로부터 기름을 회수하거나 유출되는 구멍을 막는 조치가 없을 경우 기름유출은 2006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프레스티지호 사고처럼 선박에 의한 대형 해양오염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발생한 규모가 큰 사고들을 살펴보면 1967년 토리 케년호 사고, 1979년 아틀란틱 엠프레스호 사고, 1989년 액손 발데즈호 사고, 1993년 브레이어호 사고, 1996년 시 엠프레스호 사고, 아모코 카디즈호 사고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1989년 미국의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액손 발데즈호 사고는 피해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액손 발데즈호 사고의 경우 그 피해액은 4조원 이상이며, 환경피해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수십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1996년에 발생한 시 엠프레스호 사고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밀포드 해븐 근처의 바위 위에 유조선이 좌초해 발생했다. 시 엠프레스호는 13만t의 북해산 원유를 적재하고 있었는데, 이중 약 7만2천t이 영국에 하나밖에 없는 해상공원에 유출돼 심각한 피해를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시프린스호와 제1유일호 사고처럼 대형 유조선 사고가 발생했다. 사이프러스 국적 원유선인 시프린스호는 A급 태풍 페이의 내습 예보에 따라 안전을 위해 하역을 중단하고 원유잔량 8만3천t을 적재한 채 피항했다. 그러나 피항 도중 강풍과 높은 파도에 떠밀려 여수 오동도 남서쪽에 위치한 작도에 충돌했다. 이 배는 또다시 강한 풍랑에 떠밀려 작도 서쪽에 위치한 소리도에서 좌초했다. 시프린스호는 좌초될 때 암초에 심하게 부딪혀 바위가 선체를 뚫고 들어가 선체 중앙부 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만약 부양작업 도중이나 부양상태에서 실수나 파랑에 의해 2차 사고가 발생했다면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재앙이 닥쳤을 것이다.

제1유일호의 경우 다대동 남형제도 앞바다에서 벙커C유 3천t을 싣고 가던 중 암초에 부딪혀 좌초했고, 예인 도중 침몰했다.
 

시커먼 기름과 다름없는 바 닷물. 자연적인 정화능력으 로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30년 동안 생태계에 악영향


새 한마리가 기름 제거 목욕을 한 후 몸을 말리고 있다.


대형 해양오염사고는 항상 예고도 없이 찾아오며 엄청난 규모로 바다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특히 20여만t급 유조선이 해양오염사고를 당한다며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해양의 기름오염문제는 수산업, 해양생태계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며, 방제를 위한 비용과 함께 피해보상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영향을 끼치는 시간은 30년을 넘길 수도 있다.

바다에 유출된 기름은 급속하게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다. 한 예로 1백L의 기름은 0.1㎛(마이크로미터, 1㎛=${10}^{-6}$m)의 두께로 1㎢의 수면을 뒤덮을 수 있다. 이런 기름막을 해상에서 물리적으로 수거하려면 두께가 0.1㎜ 이하로 얇아지기 전이어야만 가능하다. 해상에 유출된 기름은 증발, 용해, 분산, 에멀션화 등 복잡한 풍화과정을 겪게 된다. 확산되는 기름은 해수 표면에 퍼져 해류, 조석, 바람의 영향을 받으며 이동한다. 그 중 용해 성분은 해수로 녹아들고 휘발성분은 대기중으로 증발한다.

휘발성분이 날아가고 점성이 높아진 기름은 50-80% 정도의 수분을 함유하는 갈색의 끈적끈적한 에멀션을 형성한다. 이것은 해상에 유출된 기름을 회수하고 제거하는 방제작업을 할 때 큰 장애가 된다. 물론 기름분해능력을 가진 박테리아나 균류들에 의해 일부의 기름이 분해된다. 그러나 독성을 지닌 방향족탄화수소(벤젠고리를 함유하는 탄화수소)들은 분해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거의 분해되지 않고 해수나 퇴적물 속에 잔류하게 된다.

기름이 바다에 유출되면 해양생물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런 피해는 유출사고 초기부터 직접 발생하는 것이 있고 사고 후 수개월 또는 수십년에 걸쳐 장기적인 발생하는 것도 있다. 우선 해양포유류, 바다새, 해안서식 동식물들은 기름이 묻거나 기름에 함유된 유독 성분으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생산력이 떨어지며, 동물성 플랑크톤과 알과 치어 등도 생활에 장애를 받는다.

오염물질을 피해 유영할 수 있는 어류의 경우에는 용해 또는 확산된 기름 성분을 흡수하거나 섭취함으로써 간이나 쓸개에 기름의 분해산물이 농축된다. 퇴적물 속에 잔류하는 고분자량 방향족탄화수소들은 만성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잔류성분 중 발암성을 갖고 있는 물질이 해양생물에 농축되고 이를 먹는 인간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개펄이나 습지는 기름이 퇴적물 속으로 스며들어 장기간 잔류하므로 기름오염에 가장 취약한데, 이 곳에 서식하는 해양생물들은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해양오염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선박으로 인한 오염의 방지를 위한 전 세계적 차원의 입법 노력은 국제해사기구(IMO)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유류에 의한 해양오염방지협약’ ‘유류오염의 예방, 대응 및 협력에 관한 협약’등 다양한 국제협약이 마련돼 있다.

바다를 구하는 첨단 방제기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박의해양사고는 100%로 예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시시각각으로 기상과 해상상태가 변화하는 바다라는 특성, 완전할 수 없는 선박의 특성, 항해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박이 불가항력적으로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개발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우선 사고가 발생하면 기름유출이나 인명손상, 재산상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고선박의 손상상태를 실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선박의 생존시간을 향상시키는 기술과 손상이 확대돼 더 큰 사고로 발전되는 것을 방지하는 손상확대 방지기술, 사고선박의 구난작업을 가상현실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구난 시뮬레이터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 사고 후 좌초선박이나 깊은 수심의 침몰선박으로부터 기름을 회수하는 장비와 기술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해상에 유출된 기름을 회수하거나 제거하는 기술과 장비의 개발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개발되고 있다. 바다에 뿌려진 기름을 회수하는 기계장치인 유회수기와 기름이 넓은 면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고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는 오일펜스 등이 개발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넓은 면적에 엷게 퍼진 기름을 수중으로 분산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는 유처리제도 중요하다.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해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데 필수적인 기술로 조류방향이나 속도, 바람의 영향을 실시간으로 고려한 유출유 확산 예측 시뮬레이션기술의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해상 국립공원이나 중요한 어장, 국가시설과 육상 특수시설 등 특정지역의 정보를 전자해도에 나타내어 그 지역에 기름이 유출됐을 경우 보호의 우선순위 결정과 효율적인 방제전략 수립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민감지도(ESI Map, Environmental Sensitivity Index Map)도 있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해상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 방제기본전략이 있으며,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지역방제실행계획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에 국가 방제기본전략 수립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12개 지역의 방제실행계획이 2002년에 모두 수립된 상태이다.

실제 해상에 유출된 기름의 방제작업은 기름의 확산을 막기 위한 오일펜스 설치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 물에 퍼진 기름을 방제작업 전용선박이 장착한 회수기를 이용해 수거하거나 현장에서 태워버리기도 한다. 흡착제 또는 흡착포를 이용해 기름을 걷어 내거나 기름고형제를 뿌린 후 회수하는 방법도 있다. 화학적 방법으로는 유분산처리제를 이용해 기름막을 수중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처리제의 잘못된 사용은 2차오염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지침 아래 사용돼야 한다.

이 모든 방법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제 장비와 전문 기술진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해양경찰청에서는 해양오염사고시 선체 구조, 유출유 확산 시뮬레이션, 방제기술, 환경평가 등에 관한 전문기술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해양연구원에 방제기술지원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바다는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자원을갖고 있다. 이런 자원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연평균 7백여건의 크고 작은 선박사고가 바다에서 발생하고
있다. 크고 작은 선박사고는 바다에 기름을 유출하게 되고 유출된 기름으로 인해 해양생태계는 파괴되고 그 영향을 바로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이다. 기름유출로부터 해양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선박의 해양사고를 미연에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꾸준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로 사고 발생 후에도 신속하고 과학적인 구난과방제활동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 해양생태계에 후유증이 적게 미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창구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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