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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 핏빛으로 물든 사연은?

물에 녹슨 철 vs 우주먼지

지난 8월 27일 저녁 화성이 지구에 6만년 만에 가까이 다가왔지만, 전국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아 희귀한 광경을 만날 수 없었다. 물론 이날 하루만 화성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접근 날을 전후해 한달 동안 화성 쇼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아 ‘별 볼 일 없었기’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화성이 가까이 다가오면 보름달처럼 크게 보일 거라고 착각한다. 보름달은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눈에 띌 정도로 크기가 달라지지만, 다른 행성이나 별은 그 정도는 아니다. 화성도 마찬가지인데, 단지 좀더 밝은 ‘별’처럼 보일 뿐이다. 대접근한 화성은 -2.9등급으로 웬만한 가로등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눈에 들어올 정도로 밝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6만년 전 크로마뇽인이 살았던 시기 이후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화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커다란 화성 사진을 살펴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보자. 이 사진은 화성이 대접근 시점에서 수분 이내일 때 찍은 것이다. 이때 화성은 지구에 5천5백75만7천9백30km까지 접근했다.

전체적인 화성의 모습에서 받을 수 있는 강한 첫인상은 바로 붉은빛에서 나온다. 그래서 밤하늘에 보이는 화성도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은빛을 내뿜는다. 6만년 전 크로마뇽인이 화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강렬한 붉은빛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신화 속의 화성은 무자비한 살육을 즐기는 전쟁의 신으로 그려진다. 붉은빛의 화성이 핏빛으로 물든 전쟁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화성의 영어이름인 Mars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르스는 원래 봄과 성장, 번영의 신이었으나 점차 대지의 신, 죽음의 신으로 성격이 바뀌고 끝내는 전쟁의 신으로 여겨졌다. 3월의 영어이름인 March도 마르스에서 온 것이고, 대제국 로마가 주로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전쟁을 벌인 이유도 마르스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봄의 신이 전쟁의 신으로 이미지를 180。 바꾸다니 아이러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아레스가 로마신화의 마르스에 해당한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아레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사랑을 나눠 쌍둥이 형제인 포보스와 데이모스를 낳았다. 이들 형제는 각각 낭패의 신과 공포의 신으로,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에 다녔다. 그래서인지 현재 화성 둘레를 돌고 있는 감자 같은 두개의 달에도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봄을 기다리는 전쟁의 신


허블우주망원경이 지난 8월 27 일 화성의 대접근 때 찍은 화성 의 모습. 행성 전체가 불타는 사 막같다.


1976년 미국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표면에 착륙한 후 풍경을 찍어 보내온 사진에도 역시 온통 붉은빛뿐이었다. 화성 표면의 붉은 토양은 바위 속의 철분이 오래 전 풍부했던 물 때문에 녹슨 후 표면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주 먼지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6일자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실린 NASA 과학자 앨버트 옌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에서 미세한 금속성 파편이 화성에 계속 떨어져 10억년에 5cm 정도로 쌓였고 이같은 먼지가 물이 없는 지금의 화성에서 붉게 변했다는 것이다. 옌 박사는 화성처럼 꾸민 실험실 환경에서 이를 재현해보였다.

다시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화성 사진을 들여다보자. 위쪽 중앙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지구의 에베레스트 산보다 3배나 높은 올림푸스 산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레스가 싸움이 끝나면 피에 젖은 몸을 이끌고 돌아와 몸을 씻었다는 산이다.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검은 흔적은 4천km나 굽이치는 마리너리스 계곡이다. 이 거대한 계곡 바로 아래에는 ‘화성의 눈’이라고 알려져 있는 솔리스 라쿠스가 있다. 정말 전쟁의 신이 무시무시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대상은 남쪽에 있는 극관이다. 이곳에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얼어 있다.

현재 4대의 탐사선이 화성으로 향하고 있다. 내년 초 이들이 화성에 도착하면 생명체를 품고 있는 화성의 베일을 벗겨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화성은 전쟁의 신이 아니라 봄의 신으로서 진면목을 드러낼 텐데.

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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