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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뇨에서 노다지 캐는 환경공학자 박완철

KIST 수질환경 및 복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똥박사. 고상한 박사 명칭에 점잖지 않은 단어가 붙어있어 아무래도 장난스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별명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을 소개하는 인물이 있다. ‘분뇨는 내길’이라는 신념으로 20년을 똥과 씨름하며 지내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수질환경 및 복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박완철 박사(48)다.

“솔직히 유쾌한 별명은 아니죠. 아내와 아이들도 썩 달가와하지 않고…. 하지만 모두가 꺼리는 것을 내가 얼마나 많이 만지냐에 따라 폐수가 맑은 물로 바뀐다는 생각에 사명감이 더 커져요.”

첨단을 달리고 있는 연구원에서 똥을 화두로 삼아 매달리고 있는 과학자의 이미지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생활하수의 양은 1천6백만t. 1년으로 치면 낙동강 2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은 사람과 가축의 배설물, 즉 똥이다.

고상한 것만 찾아서는 안된다


박완철 박사가 현장에서 가동중인 축산분뇨 퇴비화 시설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


“생활하수를 깨끗하게 정화해 다시 쓰면 웬만한 가뭄에 농사용 물 걱정을 상당히 덜 수 있어요. 아파트나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화하지 않으면 전국토는 금세 분뇨 천지가 되겠지요. 과학자가 고상한 것만 찾다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박 박사는 1980년대 중반 한강 오염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던 시기에 분뇨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KIST에서 울산 공단지역 대기오염 문제에 매달리던 박 박사에게 분뇨 정화조를 만들라는 새로운 지시가 내려진 것이 계기였다.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제가 촌사람이니까 냄새나는 연구를 해도 잘 버틸거라 생각했나봐요. 사실 똥냄새는 별로 거리껴지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박 박사는 어린 시절 똥장군을 많이 져봤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는 농촌과의 인연을 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농사짓는 일을 평생의 가업으로 생각하던 부모님은 장남인 그가 집안일을 책임지고 꾸려나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상주농장고등전문학교 농업과. 고등학교와 전문대학교를 합친 형태인 5년제 전문학교였다. 부모님은 아들이 졸업 후 면서기를 하면서 집안일을 돌보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곧잘 하던 그에게 전문학교의 생활은 고달프게만 느껴졌다. 방학 기간을 포함해 매일 6시간 정도의 농사일을 실습하는게 주된 일과였다. 당시 그는 어린 마음에 ‘이공계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공계 공부는 그저 ‘풀뽑는 일’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졸업 후 2년 간 농사를 짓던 박 박사는 어느날 농사일과는 상관없는 ‘번듯한’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여러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가장 최선의 선택은 건국대학교 농과대학 3학년으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이때 박 박사는 ‘이게 내 팔자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벼를 키우는 농부의 심정으로

하지만 막상 대학원을 거쳐 KIST에서 연구하면서 생각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가축분뇨를 처리하는 축산정화조를 만들어 전국 5천 농가에 보급하는 대히트를 기록했을 때 자신의 손으로 오폐수를 맑은 물로 바꾼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그가 개발한 축산정화조는 가격이 기존 정화조의 5분의 1밖에 안되면서도 처리효율이 97%로 완벽에 가까웠다. 맨눈으로 봐도 뿌옇게 거품이 일어나던 것을 수돗물로 활용할 수 있는 맑은 물로 변하게 했다.

폐수처리의 비결은 분뇨를 먹고 사는 미생물에 있었다. 박 박사는 일본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거치던 시절부터 주말이면 일본 화산 일대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국의 산을 뒤지고 다녔다. 낙엽을 분해하는 미생물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종류를 찾으면 독성이 가득한 똥도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박 박사는 연구 초기에 미생물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핵심에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두꺼운 영어책들을 쌓아놓고 무작정 독학을 시작했다. 확실한 감을 잡을 때까지 이론 공부에 매달리느라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7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쓸만한 미생물은 10여종. 이들이 현재 우리나라 분뇨처리장에서 터를 잡고 맑은 물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다.

많은 고생 끝에 얻은 미생물이니 그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지요? 미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자가 실험실을 얼마나 자주 들락거리며 자신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애정을 많이 쏟아야 텔레파시가 잘 통해서 미생물이 힘차게 자랍니다.”

그래서 박 박사의 하루 일과는 실험실에 들러 미생물이 잘 자라는지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일로 시작된다. 어제 관찰한 미생물이 오늘도 변함 없이 건강한지, 그리고 혹시 좀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는 미생물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을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현미경 옆 대형 냉장고에는 여느때처럼 똥물이 그득 담긴 통들로 가득 차있다. 당연히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생활폐수, 인분, 축산오물 등 이름표가 붙은 오물통이 즐비하다. 실험에 사용하기 위해 1-2주일에 한번씩 직접 하수처리장 등을 돌며 채집해온 것들이다.

실험실 중앙 테이블에는 작은 통들로 연결된 축소판 정화시설이 배치돼 있다. 악취를 풍기던 오물 샘플은 1차로 미생물 희석액과 혼합된다. 그 결과 냄새와 유해성분이 사라진다. 이어 2-3단계를 거치면서 각종 침전물이 제거돼 마지막 통에는 맑은 물이 똑똑 떨어진다. 농업용수 기준보다 훨씬 깨끗해 재활용이 가능한 물이다.

부와 명예 동시에 잡아

박 박사는 과학자로는 드물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박 박사가 보급한 정화조 덕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안겨준 기술료가 10년간 15억원에 달했다. 박 박사 역시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기에 이르렀다. 또한 농어촌 오폐수 처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1년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바이오메카 기술고문으로 설립 초기부터에 관여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실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이오메카는 미생물을 활용해 산업오폐수, 축산폐수, 음식쓰레기 등을 처리하는 환경바이오벤처기업이다.

바이오메카는 다양한 환경문제 가운데 오폐수 처리가 전문이다. 설거지나 빨래물, 공업폐수 등 오수를 맑은 농업용수로 둔갑시킨다. 그런가 하면 농촌지역 하천오염이나 토양오염의 최대 원인인 축산폐수를 하천에 직접 흘려도 좋을 정도의 맑은 물로 정제한다.

물론 이 과정의 최대 해결사는 박 박사가 발견한 미생물이다. 박 박사는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미생물을 막대모양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이를 오폐수에 집어넣고 적절한 조건을 맞춰주면 덩어리가 녹으며 미생물이 활동을 개시한다. 현재 바이오메카는 거대한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 박사가 이룬 이런 성과의 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벗어나고 싶어했던 농촌 생활의 경험에서 발견된다.

“운도 많이 따랐지만, 어린 시절 농촌에서 배운 경험이 저에게는 소중한 자산이에요.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뛰는 습관이 몸에 배었지요.”

그래서 그는 하수처리장에서 샘플을 얻어올 때 마스크 없이 맨손 차림이다. 분뇨가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직접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봐야 생생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화조 연구에 몰입하던 초반에는 분뇨와 비슷한 오염물질과 농도로 이뤄진 합성폐수를 실험재료로 사용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는 분명히 정화에 성공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실패하기 일쑤였다.

박 박사는 고심 끝에 실험재료를 진짜 똥으로 바꾸었다. 실험실은 마치 시골 터미널 화장실에 들어선 듯 암모니아 냄새로 가득해졌다. 덕분에 연구원 한가운데 있던 실험실이 가장 외진 곳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현장에서 채취한 분뇨 샘플을 시간이 늦은 탓에 집에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밤늦게 분뇨통을 들고 귀가한 박 박사는 혹시 실험 샘플이 ‘상하지 않을까’ 우려해 냉장고에 넣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부인이 아침에 기절초풍을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쓰레기 없는 세상 만드는 과학자


일본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던 시절 연구실 교수와 동료들과 찍은 사진(뒷줄 맨 왼쪽이 박 박사).


이제는 만성이 됐는지 똥박사라는 별명에 대해 ‘딴짓 하지 말고 한길을 가라’는 채찍질로 받아인다는 박 박사. “제 영문 이름이 W.C. Park입니다. WC는 화장실을 뜻하잖아요? 분뇨 연구가 피할 수 없는 제 운명이라는 의미인 듯해요”라며 털털하게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대상에 매달리고 있지만, 그의 작은 노력이 환경오염이 없는 깨끗한 미래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쓰레기를 모두 자원으로 바꾸는 과학기술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과감히 도전할 만한 분야죠. 모든 전문가가 어우러진 멋진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야 쓰레기 없는 세상이 열려요. 자기 분야에서 기초를 탄탄히 닦으면 환경오염을 없애는데 기여하는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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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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