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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속물질

거대블랙홀의 자기장과 중력이 만든 결과

우주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면 그리 조용한 동네는 못된다. 우주라는 거대한 저택을 이루는 기본 벽돌인 은하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은하들끼리 서로 충돌하거나 덩치 큰 놈이 자그만 녀석을 잡아먹는 일은 예상보다 다반사로 일어나고, 은하 자체에서도 수상쩍은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새해를 맞이해 1월 8일 공개된 허블우주망원경 사진을 보자. 사진 중앙에는 나선은하가 우리에게 옆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사실 이 은하를 위에서 들여다본다면 사진 오른쪽 위에 자리잡은 은하처럼 수레바퀴 모양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은하에서 뭔가(붉은색)가 아래위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치 정원용 호스의 주둥이에서 물줄기가 뻗어 나오는 양상을 닮았다. 이 괴상한 움직임은 사실 VLA라는 전파망원경배열이 전파로 찍은 것이다. 원래 가시광선으로 찍은 허블우주망원경 사진에서는 감춰져 있던 모습이다. 이 나선은하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음모가 전파라는 다른 빛을 들이대자 들통나 버리고 만 것이다.

‘0313-192’라는 이름의 이 은하는 모양으로 보면 나선은하지만, 특성으로 보면 전파은하다. 물줄기처럼 아래위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전파 영역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전자나 양성자 같은 입자가 거의 광속으로 움직이는 양상으로 ‘제트’(jet)라 불리는 현상이다.

죽음의 강에서 발견된 행성


나선은하에서 최초로 발견된 제트(붉은색). 은하 중심에 자리 한 거대블랙홀에서 전자나 양성 자 같은 입자가 거의 광속으로 뿜 어져 나오는 현상이다.


이 은하는 에리다누스자리 방향으로 9억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에리다누스자리는 겨울밤하늘 웅장한 오리온의 발 밑에 자리한 거대한 별자리다. 저마다 자신의 밝기를 뽐내는 화려한 별들과 대조적으로 어두운 별로 이뤄진 이 별자리는 지평선 근처에서 조용히 굽이치고 있다. 어둡고 음산한 별자리임에 틀림없다. 신화에 따르면 에리다누스는 지상에서 황천으로 흐르는 죽음의 강으로 알려져 있다. 에리다누스는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이 빠져죽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파에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고 아폴론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아폴론에게 태양을 싣고 다니는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졸랐다. 태양 마차를 몰고 친구들 앞에 멋지게 나타나려고. 하지만 파에톤의 초보운전은 큰 재앙을 불러왔다. 태양 마차가 궤도를 이탈해 온세상이 불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제우스가 마차를 향해 번개를 던졌고, 결국 파에톤은 별똥별처럼 긴 불꽃을 내며 에리다누스 강에 떨어져 죽었다.

사실 전파은하 ‘0313-192’에서 나오는 제트도 에리다누스가 풍기는 죽음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전파 제트는 뭐든지 집어삼켜 파멸로 이끄는 괴물인, 은하 중심의 거대블랙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블랙홀 주변 물질이 원반 모양으로 회전하며 빨려들 때, 이 물질 원반은 자기장을 비틀어 꼬아 일부 물질이 은하의 양극 방향으로 빠르게 뿜어져 나가게 한다. 제트를 만드는 것이다. 블랙홀의 거대한 중력에너지가 제트의 속도를 거의 광속으로 가속시킨다.

이번에 관측된 제트는 나선은하에서는 최초로 발견됐다는 중요한 의미도 지닌다. 지금까지는 타원은하나 충돌은하에서만 제트가 발견돼 왔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발견으로 제트 생성 메커니즘에 대한 기존의 생각 가운데 일부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겨울철 지평선에 어둡게 드리워진 에리다누스자리에 뭐든지 파멸로 몰고 가는 거대블랙홀이 자리한 은하가 있다. 막바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밤처럼 스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하듯이 죽음의 냄새가 강할수록 생명의 탄생이 임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2000년에는 지구에서 10.5광년 떨어진 에리다누스자리 엡실론별에서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이 발견됐다. 1960년부터 이곳은 외계인의 신호가 있을 것으로 추정돼 지름 25m의 전파망원경으로 관측돼 왔다. 어딘가 외계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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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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