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융합돼 헬륨이 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태양과 같은 별이 탄생하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 중 약 3/4은 수소이며 나머지 약 1/4은 헬륨이다. 여기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이라고 기술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 눈에 밝게 보이는 은하들은 이 우주에 있어야 하는 질량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거의 소경이나 진배없는 인간들이 우주를 바라보며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물질을 '암흑 물질'이라고 부르는데 천문학자들은 아직까지 확실히 그 정체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의 대부분이 수소라는 사실은 천문학자들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수소 원자는 가장 질량이 작고 구조가 간단해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원소이기 때문이다. 흔히 과학 시간에 보통 수소 원자는 (그림1)과 같이 그려진다. 즉 (+)전기를 띠고 있는 양성자 1개의 주위를 질량이 가볍고 (-)전기를 띤 전자 1개가 돌고 있는 모델이다.
여기서 전자는 양성자에 왜 잡혀 있을까? 그 답은 물론 (+)전기와 (-)전기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힘 중에서 양성자와 전자가 원자를 구성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자기력이다.
또한 만일 양성자와 전자가 같은 종류의 전기를 띠고 있었다면 이 우주에 원자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우리도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수소원자에서 양성자가 전자 주위를 돌지 않고 전자가 양성자 주위를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양성자가 전자보다 질량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양성자는 전자보다 약 1천8백40배 무겁다).
(그림1)식으로 그리면 보통의 헬륨 원자는 (그림2)와 같이 그려진다. 즉 질량이 크고 (+)전기를 띠고 있는 양성자 2개와 질량이 양성자와 비슷하고 전기를 띠고 있지 않은 2개의 중성자가 원자핵을 이루고, 그 주위를 질량이 가볍고 (-)전기를 띤 전자 2개가 돌고 있는 모델이다.
(그림1)과 (그림2)의 모델들은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사실 정확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 쉽게 개념이 전달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교육상 자주 인용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이러한 원자 모델을 사용하여 별의 탄생을 설명하기로 하자.
1만℃로 온도를 올려라
온도가 아주 낮은 우주 공간 속의 한 상자 안에 (그림1)과 같은 수소 원자가 (그림3)과 같이 가득, 예를 들어 1억개쯤 들어 있다고 하자. 우리가 1년쯤 기다리면 수소 원자 1억개가 어지러이 운동하다가 서로 충돌하여 (그림2)와 같은 헬륨 원자들을 잔뜩 만들어 내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다. 그럼 10년, 아니 1백년쯤 기다리면 헬륨이 생겨날까? 유감스럽게도 아직 대답은 'No'다.
그럼 무작정 기다리는 방법을 버리고 온도를 서서히 높여 보자. 온도를 1백℃, 1천℃로 올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마치 주전자 속의 끓는 물 분자 운동과 마찬가지로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수소 원자들은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전체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다.
그런데 온도가 약 1만℃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는 수소 원자들의 운동 속도가 충분히 빨라져서 더 이상 양성자들이 전자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게 되어, (그림3)과 같던 상자 안은 (그림4)와 같이 제각기 자유롭게 운동하는 양성자와 전자로 가득 차게 된다. 이제는 양성자가 전자기력으로 전자를 잡아도 전자는 다시 다른 원자의 충돌에 의해 곧 튕겨져 도망가게 되는 것이다. (그림4)와 같은 상태를 플라스마라고 부르고, 이 때 각 원자는 이온화되었다고 한다.
이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의 대부분이 수소이기 때문에 천체 물리학에서 1만℃라는 온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우주 공간 내의 어느 지역 온도가 1만℃보다 더 높으면 거기에 있는 수소 원자들은 대부분 이온화되어 있다고 봐도 좋고, 1만℃보다 낮으면 아직 전자들이 양성자에게 대부분 붙들려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하지만 1만℃의 플라스마 상태에서도 헬륨 원자들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림5)에서처럼 서로 다가가는 두 양성자 사이에는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전자기적 반발력이 서서히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두 양성자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강해진 반발력에 의해 다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아무리 온도를 높이 올려도 (그림4)와 같은 수소 원자들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헬륨 원자들을 만드는 일은 희망이 없는 것인가. 이 우주에 중력과 전자기력만 있다면 물론 그 희망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림2)의 헬륨 원자핵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같은 (+)전기를 가진 양성자 2개가 아주 가까이, 서로 밀지 않고 얌전히 같이 있지 않은가!
왜 헬륨 원자핵 속의 두 양성자는 전자기적 반발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두 양성자는 전자기력으로 열심히 서로 밀고 있다. 하지만 훨씬 더 큰 힘이 두 양성자를 서로 멀어지지 못하게 꼭 잡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이 바로 '위대한' 핵력, 즉 원자력인 것이다!
뜨거웠던 우주의 태초
(그림2)에서 우리는 핵력의 중요한 성질을 하나 이해하게 된다. 핵력은 아주 작은 거리, 즉 원자핵 크기 정도의 공간에서만 작용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림5)에서처럼 서로 다가가는 두 양성자가 핵력이 인수인계를 맡을 수 있는 정도까지 접근만 할 수 있으면 착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즉 온도만 충분히 더 올리면 마침내 두 양성자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 나머지 전자기적 반발력을 이겨내고 충분히 접근하여 핵력에 의해 결합하게 된다. 그 온도가 약 1천만℃다. 즉 이 온도에 도달하면 마침내 (그림4)와 같은 수소 원자들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양성자들이 모여 보다 더 질량이 큰 원자핵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모든 것들은 '포텐샬 장벽'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정리해 볼 수 있다. 포텐샬 장벽은 화학 과목에도 나오는, 자연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아두도록 하자. 만일 이해하기 힘든 독자가 있으면 이 글의 후반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넘어가기 바란다.
(그림5)에서처럼 다가가는 2개의 양성자의 운동을 그 중 한 양성자를 기준으로 기술해 보자. 즉 우리가 한 양성자에 올라타고 그 양성자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다른 양성자를 관찰하여 보자는 말이다. 다른 양성자는 예를 들어 온도가 1백만℃일 때 10만℃였을 때보다 더 큰 속도로 다가와 우리에게 접근했다가 전자기적 반발력에 의해 다시 멀어져 간다. 이 두 상황을 (그림6)처럼 포텐샬 장벽을 굴러 올라오는 양성자에 비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온도가1천만℃에 이르면 다른 양성자는 (그림6)의 포텐샬 장벽을 넘어 '핵력의 골짜기'로 넘어 들어오는 것이다.
일단 핵력의 골짜기에 들어온 양성자는 절대로 다시 밖으로 못 빠져 나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원자핵 물리학의 세계다. 우라늄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 원자핵에서 핵력의 골짜기를 탈출해 나오는 헬륨원자핵들이 바로 우리가 α선이라고 부르는 방사선이다. 포텐샬 장벽을 넘어 1개의 헬륨핵이 밖으로 나올 확률은 제주시에서 발로 찬 세발 자전거가 한라산을 넘어갈 확률만큼이나 작은 것이지만 α선은 실험실에서 엄연히 관측되고 있다.
얘기가 잠시 빗나갔으나 다시 대부분 수소 원자로 구성된 우주로 돌아오자. 1천만℃ 이상의 온도에 육박하면 수소 원자들은 결국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구성된 헬륨 원자핵을 이루게 된다. 4개의 양성자 질량과 1개의 헬륨 원자핵 질량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고, 그 질량 차이가 유명한 아인슈타인(Einstein)의 공식 E=${mc}^{2}$에 의해 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이 원리가 (그림7)에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만드는 수소폭탄의 원리이기도 하다.
핵에너지를 얻는 이와 같은 과정을 우리는 핵융합이라고 한다. 우라늄같은 질량이 큰 원소가 방사성 붕괴를 해서 에너지를 내는 과정인 핵분열과는 분명히 구분해 주기 바란다. 지구상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는 핵분열을 이용한 발전소다. 핵융합발전은 2050년 경이나 실용화될 전망이다. 천체 물리학에 기여하는 핵에너지 과정은 모두 핵융합이다.
앞서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 중 약 3/4은 수소이며 나머지 약 1/4은 헬륨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헬륨이 무려 수소의 1/3가량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주의 시초 한때에 온도가 1천만℃ 이상 이르렀다는 증거가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현대 우주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Hubble)은 윌슨산 천문대의 망원경을 사용해 은하들을 관측한 결과 놀라운 우주의 비밀을 발견했으니, 모든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은하들은 방향에 관계없이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후퇴하여, 예를 들어 우리로부터 3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가 초속 1백㎞로 멀어진다면 2배 더 먼 6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는 2배 더 빠른 속도인 초속 2백㎞로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우주를 '팽창 우주'라고 부른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우주의 부피에 초점을 맞추어 지어진 이름이다. 따라서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향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팽창 우주는 '수축 우주'가 되고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와 모두 한 곳에 모여야 한다. 바로 그 순간을 우리는 '태초'라고 부른다.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크고 무지막지하게 뜨거워야 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점에 모여 있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Big Bang)을 일으켜 팽창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태초의 우주가 모든 면에서 지금과 마찬가지였다는 우주론이 한 때 제시되기도 했었다. 즉 우주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은하가 하나씩 없어지면 높은 밀도와 온도를 피할 수 있다는 줄거리를 갖는 우주론이다. 따라서 시간이 제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 우주론에서는 은하가 하나씩 생겨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우주론을 '연속 창생'(Continuous Creation)우주론이라고 부른다.
"BB(Big Bang)가 맞느냐, CC(Continuous Creation)가 맞느냐"하는 역사적인 논쟁은 사실 미국과 영국의 대결이기도 했다. BB가 이김으로써 영국이 가지고 있던 우주론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BB가 CC를 이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이 바로 이 우주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인 것이다.
1964년 미국의 펜지아스(Penzias)와 윌슨(Wilson)이 우연히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도 BB가 CC를 제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우주배경복사란 태초의 뜨거운 우주 속에 고르게 퍼져 있던 빛이 식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펜지아스와 윌슨은 이 발견으로 인해 노벨상을 받았다.
별의 탄생
별도 대부분 수소로 구성된 성간물질이 중력 수축을 하여 태어나게 된다. 성간물질이 점점 빨리 회전하면서 중심 방향으로 중력 수축을 함에 따라 내부의 온도는 서서히 상승한다. 온도가 1만℃에 이르면 대부분의 수소들은 이온화하고, 마침내 중심 온도가 1천만℃에 이르면 핵융합이 일어나 에너지를 내기 시작한다…즉 별이 빛나기 시작한다. 그 웅대한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이리하여 마침내 별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때 중력 수축한 성간물질의 양이 태양 질량의 1/10보다 작으면 온도는 1천만℃에 도달하지 못한다. 즉 핵융합이 일어나지 못해 별은 태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 태양계 행성의 하나인 목성은 수소 가스로 구성됐지만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아 별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SF영화인 '2121 Space Odyssey'에서 목성이 빛나는 별로 변해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이론적인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갈색왜성'이라는 별도 바로 이러한 것이다.
반대로 성간물질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백배가 넘으면 중력 수축이 일어날 때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서 여러 개의 별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이 성단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별들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10보다는 크고 1백배보다는 작다고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원시별은 현재 태양보다 1천배 이상 밝으며 그 크기도 1백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후 약 1천만 년 동안 중력 수축해 결국 안정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태양같은 별의 수명(약 1백억 년)에 비하면 거의 순식간에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다음 호에서는 별의 진화에 관해 알아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