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인기가 군사용을 넘어 다양한 용도로 연구되고 있다. 스스로 알아서 기상을 관측하고 환경을 감시하며 높은 고도에서 무선통신까지 중계할 전망이다. 똑똑한 무인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힘차게 전개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수행하기에 지루하고 힘든 단순 반복작업은 점차 기계에 의존하게 됐다. 기계의 품질과 신뢰성이 증대되고 전자, 컴퓨터, 센서 등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기계가 지능화되면서 점차 복잡하고 중요한 업무에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추세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런 자동화의 경향은 항공기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초창기의 피스톤 엔진을 단 장거리 여객기의 조종실에는 5명이나 되는 승무원이 탑승했다. 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사, 항법사, 무선통신사가 각각 한명씩 탔던 것이다. 무선통신 장비의 발전에 따라 조종사가 통신사 역할을 겸할 수 있게 되면서 1960년대 초에는 무선통신사의 자리가 조종실에서 사라졌다. 1970년대 초반에는 관성항법장치의 발전에 따라 항법사가 자동화 기계로 대체됐고, 1980년대에는 컴퓨터의 발달에 따라 기관사가 관리하던 수많은 엔진 계기판이 조종사 앞의 모니터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면서 컴퓨터가 기관사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제 조종석에는 두명만 남아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도구는 발전된 기술이었지만 견인차는 운영비 절감이라는 경제성이었다.
미래의 언젠가 첨단기술 덕분에 여객기의 조종사가 필요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객이나 화물 운송이 아닌 분야에서는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 항공기, 즉 무인기가 이미 191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됐다. 초창기의 무인기는 단순히 무선통신 수단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조종받는 항공기라는 의미를 지녔다. 당시에 무인기는 RPV(Remotely Piloted Vehicle)로 통용됐다. 근래에 들어서 무인기는 스스로 항로를 찾아서 주어진 임무를 자동·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무인기를 뜻하는 용어도 바뀌었다. UAV(Unmanned Aerial Vehicle, 또는 Uninhabited Aerial Vehicle)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무인기의 장점은 사람이 탄 항공기 대신 3D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공미사일이 설치된 지역을 정찰하는 위험한(Dangerous) 임무나, 방대한 지역을 맴돌며 하루종일 산불을 감시하는 지루한(Dull) 업무, 또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을 정찰하는 더러운(Dirty) 임무 등은 무인기가 활약하기 적합한 일이다. 무인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인명손실의 위험을 없애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무인기 분야의 세계시장은 항공기술과 함께 전자·컴퓨터·통신기술 분야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연평균 약 12%의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무인기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정찰용에서 요인암살용으로 변신
지난 11월 3일 예멘 사막의 한 고속도로에서 이슬람 과격단체 알 카에다의 고위 간부가 탄 차가 미사일로 저격당해 6명이 사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이 저격사건은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 무인기인 ‘프레데터’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제너럴 애토믹스 사가 제작한 프레데터는 본래 정찰용 무인기로 1995년 보스니아 전쟁에 선보였으나 올해 초 아프간 전쟁부터 미사일로 무장하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무인기는 군사적인 용도로 개발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부터 군사용 무인기의 개발이 시도됐던 것이다. 군사용 무인기의 개발과 활용은 1960년대 월남전쟁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인기가 군사적인 용도로 진가를 발휘한 것은 1970년대에 일어난 중동전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프로펠러 무인기를 사용했다. 작은 프로펠러 무인기 한대가 맴돌고 간 후면 정확하게 쏟아지는 포탄에 아랍계 병사들은 몸서리를 쳤고, 무인기가 촬영한 영상 중에는 곧이어 쏟아질 폭격을 두려워하며 겁에 질린 채 백기를 흔드는 병사들의 모습도 식별됐다고 한다.
그 후 군사용 무인기는 항공, 전자, 통신, 소재 등 관련 분야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가공할 수준으로 개발됐다. 보스니아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서 무서운 능력을 발휘했으며, 최근에는 알 카에다 소속 요인을 공중에서 저격하는 일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무인기의 군사적 용도는 정찰과 목표물 위치 파악 외에도 다양하다. 공습해오는 적 항공기에 대항해 대공화기로 사격 훈련을 하기 위한 대공사격 훈련용 표적기, 지대공 또는 공대공 미사일로 사격 훈련을 하기 위한 미사일 표적기, 적군의 방공망 레이더에 마치 실제 항공기가 침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교란해 대공 무기를 소진시키거나 작전을 교란에 빠뜨리는 기만용 무인기, 적의 레이더 전파를 추적해 레이더 시설을 파괴하는 자살공격형 무인기 등 여러 종류가 이미 개발·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투기를 무인기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수행되고 있다. 미국은 2010년까지 적진 깊숙이 침투해 공격하는 항공기의 1/3을 무인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머지 않아 유인 전투기 대신 전쟁을 치르는 로봇전투기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도 무인기 가운데 군사용 무인기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라이트 형제가 공식적인 첫 비행에 성공한지 11년을 채 넘기기도 전, 유럽에서 군용 비행기들이 적기를 향해 총질을 해대기 시작하는 광경을 보고 오빌 라이트가 탄식하며 내뱉었다는 말이 있다. “비행은 얼마나 갈망하던 좋은 꿈이었던가! 그런데 그게 악몽으로 바뀌다니!”
무인기는 과연 라이트 형제의 평화스러운 꿈을 악몽으로 만드는 데에만 사용될 것인가.
왜 대서양 상공을 날까
군사용 외의 용도로 무인기를 개발하는 경향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 1998년 8월 20일 날개 길이 2.9m, 무게 13kg밖에 안되는 작고 하얀 비행기가 미국 동부 뉴펀들랜드 섬에서 이륙해 대서양 상공을 유유히 건너 26시간 45분만에 스코틀랜드의 한 농장에 내려앉았다. 에어로존데(Aerosonde)라고 명명된 이 무인기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항공기술자 태드 맥기어 박사가 기상학자인 그렉 홀랜드 박사와 팀을 이뤄 악기상 관측용으로 개발했던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기상청의 지정된 측후소로부터 하루에 적어도 두차례 기상측정 센서와 무선 송신기가 달린 장비를 실은 고무풍선을 올려보낸다. 라디오존데(radiosonde)라 불리는 이 장비에서 측정된 자료는 국제적으로 공유돼 기상예보에 활용된다. 문제는 측후소가 없는 바다 상공에서는 자료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착안해 무인기로 대양 상공의 기상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에어로존데의 목표였다.
1999년 홀랜드 박사는 별도로 기상관측 서비스 회사인 에어로존데 사(Aerosonde Ltd.)를 창업했다. 에어로존데 사는 호주에 있는 본부에서 세계 도처의 기상관측 활동을 관제하고 위성통신을 통해 기상자료를 수집·처리할 꿈을 가지고 있다. 무인기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좋은 사례 중의 하나다. 한편 맥기어 박사는 그대로 인시투 그룹 사(Insitu Group)에 남아 에어로존데보다 훨씬 뛰어난 후속 기종인 ‘시 스캔’(Sea Scan)을 개발해 기상관측뿐만 아니라 어군탐지나 해안경비 등의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홍보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완전히 자동으로 조종되는 무인기는 아니지만, 매우 안정된 비행성능을 지닌 농업용 헬리콥터를 개발해 농약살포에 활용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기종은 야마하의 농업용 헬리콥터다. 누적 판매 대수가 1천2백대를 넘어 민수용 무인기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TV방송이나 영화 등의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한 항공촬영용 무인 헬리콥터가 이와 유사한 사례다. 여러 기종이 개발돼 있으나, 일본의 농업용 헬리콥터와 마찬가지로 낮은 고도를 유지한 채 원격조종사의 가시권 내에서 비행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인기(UAV)는 아니다.
비행선이냐, 큰 날개 형태냐
무인기가 민수용으로 크게 경제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는 통신 서비스 분야다. 여객기나 일반 유인기가 비행하지 않는 고도인 20km 정도의 성층권에서 장기간 체공할 수 있는 무인기가 출현한다면, 이 무인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선통신 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개척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될 비행체는 두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하나는 비행선이며, 다른 하나는 날개가 매우 큰 형태의 비행기다.
두가지 비행체 모두 장기간 체공하기 위한 동력원으로 태양전지와 재생형 연료전지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을 지닌다. 태양이 비치는 동안에는 태양전지가 만들어낸 전기의 일부를 동력으로 쓰고, 남은 전기로는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한 후 이들을 연료전지의 연료로 저장한다. 밤이 되면 산소와 수소를 연료전지 내에서 반응시켜 전력을 얻고, 사용된 산소와 수소는 다시 물이 되는 원리다.
통신 서비스용으로 개발중인 무인기의 대표적인 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중인 성층권 장기체공형 무인비행선과 미국의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에서 개발·시험중인 태양전지 무인기 헬리오스다. 현재 항공우주연구원에서는 성층권 무인비행선 개발을 위한 1단계 연구로 길이 50m, 무게 약 2.5t의 저고도 무인비행선 시제기를 제작중인데, 2003년 중반 첫 비행시험이 있을 예정이다. 헬리오스는 하와이에서 비행시험을 계속하며 운용 자료와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에어로바이런먼트의 부사장 바이라크타르는 위성통신에 드는 비용의 1백분의 1로 무선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무인기는 착륙 후에 정비해 재사용이 가능하고, 인공위성에 비해 매우 낮은 고도에서 운용되므로 통신중계기의 출력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상관없다. 무인기를 사용할 경우 통신상의 시간지연 현상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평범함에서 한층 도약하려는 국내연구
국내 무인기 분야의 연구개발 현황은 어떨까. 국방과학연구소와 대우중공업(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공동으로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해 2000년 10월에 성공적으로 개발 완료한 군 전술용 무인기 ‘비조’가 있다. 민수용 무인기 분야는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1992년-1997년 사이에 대우중공업이 러시아의 카모프 사와 함께 개발했던 농업용 무인헬기가 있었다. 또 1999년 말부터는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에어로존데와 유사한 급의 소형 장기체공 무인기를 개발중이다.
2001년도에는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스마트 무인기 기술개발사업’이 채택됐으며, 2002년 6월 말 항공우주연구원이 이 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로써 10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형 무인기 기술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스마트 무인기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은 외국의 한 무인기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했다. “이제 평범한 무인기는 더이상 필요 없다. 앞으로는 똑똑한(smart) 무인기가 필요하다.”
‘스마트 무인기’는 기존의 무인기와 차별되는 특징을 가질 것이다. 첫번째는 새로운 개념의 비행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무인기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활주로가 필요없는 이착륙 성능이 필요하다. 기존의 헬리콥터로는 속도제한, 연비, 소음 등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마트 무인기에서는 회전익 항공기와 고정익 항공기의 장점을 고루 갖춘 신개념 비행체를 개발할 것이다. 이런 개념은 향후 사람이 타는 항공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둘째로 안전성과 신뢰성을 민간 유인기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무인기의 운항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공중에서 충돌을 방지하고 피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비행체의 국제적 인증규격을 제정하는데 동참해 그 기준에 따라 설계·제작할 것이다.
셋째로는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비행체와 운용시스템에 스스로 고장을 진단하고 비상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부여해 만약의 경우에도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무인기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0가지 주제의 ‘스마트 기술’을 개발하는 세부과제를 선정해 1차 년도인 올해부터 연구에 착수했다.
앞으로 10년 간에 걸쳐 수행될 스마트 무인기 기술개발 사업은 민수용 무인기 실용화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종합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무인기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고, 무인기의 평화적 활용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믿는다.
전파영상 얻고 화생방물질도 감지
무인기 시스템의 구성을 크게 분류하면 비행체, 임무탑재장비, 관제장비(임무계획 및 통제장비), 통신장비(데이터 링크 장비), 그리고 지상지원장비로 나눌 수 있다. 비행체는 임무를 수행할 장비(임무탑재장비)를 싣고 하늘에서 비행하는 플랫폼이다. 형태에 따라 비행기와 같은 고정익 항공기, 헬리콥터와 같은 회전익 항공기, 그리고 고정익과 회전익이 복합된 형태의 항공기가 있다.
임무탑재장비는 공중에서 원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장비다. 텔레비전 카메라와 유사한 전자 광학식 카메라, 야간에도 사물의 식별이 가능한 적외선 카메라, 전파를 이용해 영상을 얻을 수 있는 ‘합성 개구 레이더’(SAR), 기상관측이나 오염물질 탐사 등의 대기 환경을 측정할 수 있는 기상·대기 측정장치, 화생방 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특수 측정장치, 무선전화나 방송, 무선인터넷 등의 중계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선통신 중계기, 씨앗이나 농약을 공중에서 살포할 수 있는 공중 살포기 등이 있다.
관제장비는 지상에서 비행체의 비행경로를 계획하고 조종 명령을 하며 임무탑재장비를 조작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통신장비는 비행체와 관제장비 사이를 무선통신으로 연결해 지상에서 비행체와 임무탑재장비에 보내는 조종 명령을 위로 전달하고, 비행체의 비행상태 정보와 임무탑재장비가 획득한 자료를 아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지상지원장비는 무인기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 동력을 제공해주는 발전기, 활주로가 없는 곳에서 비행체를 쏘아올리는 역할을 하는 이륙발사대, 지상에서 비행체를 운반하거나 싣고 내리는데 사용되는 운반용 수레나 기중기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