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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상 후보감' 쇤 박사의 논문 날조 충격

정직한 과학에 부도덕한 과학자?

노벨상 후보감으로 불리던 미국의 한 과학자 논문이 날조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진실만을 추구한다는 과학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현대 과학자의 연구양심은 어떠하며, 이를 지키기 위한 방안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노벨상 후보감’ 쇤 박사의 논문 날조 충격


‘나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방식으로 쓰이는 더나은 세계를 위해 일할 것을 약속한다. …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나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의 윤리적 함의를 고려할 것이다.이 선서를 통해 매우 큰 요구가 나에게 부과될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의 책임감이 평화를 향한 도정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이 선서에 서명한다’

미국의 젊은 과학도로 구성된 ‘퍼그워시 학생그룹’(Student Pugwash Group)이 마련한 ‘과학자 선서’의 일부다. 과학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양심에 따른 연구를 해야 하며 자신의 연구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같은 선서는 ‘과학자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현실에서 낯설게 다가온다. 자연을 대상으로 객관적 실험과 검증을 통해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자가 자신의 양심에 정직할 것을 서약해야 한다니,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퍼그워시 학생그룹의 과학자 선서는 미국에서 과학연구를 시작하는 많은 젊은 과학도가 서약하고 있다. 이들은 왜 자신의 오른손을 기꺼이 올리고 이같은 양심 서약에 동참할까.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과학에서의 기만행위는 일반적으로 흔치 않은 일이라고 믿었다. 혹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에도 그것을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자동적으로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활동으로 생각됐고, 따라서 기만행위는 필연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험실의 활동이 점점 경쟁적으로 돼가고, 특히 실험의 재현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그만큼 기만행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심각한 부정행위들도 빈번해지고 있다.

8일에 과학논문 한편?

특히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한 젊은 과학자의 기만행위는 그 규모와 대담성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세계적 연구소인 미국의 벨연구소에 근무하는 올해 32살의 얀 헨드릭 쇤 박사. 그는 지난 4년 간 발표한 25개의 논문에서 최소 16건 이상의 실험 데이터를 변조하고 심지어 없는 데이터를 지어내는 날조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지난 9월 25일 벨연구소에서 해고당했다. 쇤 박사의 연구들은 노벨상 수상감이라고 할 정도로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과학계의 충격은 더욱 컸다.

지난 1998년부터 박사후연구원으로 벨연구소에 근무해 온 그는 왕성한 연구열을 불태우며 놀라운 성과들을 속속 발표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무려 평균 8일에 한편씩 과학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가 발표하는 논문은 탁월했으며, 기존의 한계를 과감히 꺾어 나갔다. 이런 뛰어난 연구 성과들은 세계적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나 네이처, 응용물리학레터(Applied Physics Letters)에 논문으로 게재됐다. 이들 학술지는 과학자로서 자신의 논문이 실린다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생각될만큼 과학자 사이에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받는 전문지다. 여기에 그는 무려 13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그의 연구 성과 또한 눈부셨다. 그의 연구분야는 기초 물리학의 핵심분야 중 하나인 초전도체와 유기분자 반도체 분야. 그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풀러렌(C60)의 초전도성을 1백K(캘빈, 0K=-2백73℃)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기존의 플러렌은 극저온에서나 초전도성을 보여 실용화에 걸림돌이 돼 왔다. 또한 그는 유기결정체에 전하를 주입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해 부도체인 유기분자를 전도체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방법을 이용해 지난해 11월에는 하나의 분자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데 성공해 나노과학에서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그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세상을 속인 과학자

쇤의 뛰어난 성과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과학자를 고무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쇤의 결과를 자신의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쇤과 같은 똑같은 절차로 실험을 해도 동일한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쇤의 연구결과에 의심의 눈길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올해 5월, 쇤의 유기분자 반도체 논문을 꼼꼼히 읽던 코넬대학의 맥유언 교수는 이 논문에 쓰인 그래프가 이전에 나온 쇤의 전혀 다른 논문에도 쓰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쇤의 연구 결과를 미심쩍어 하던 분위기에 기폭제를 던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벨연구소는 스탠퍼드대의 응용물리학 교수인 말콤 비슬리 박사를 주축으로 5명의 저명한 과학자로 위원회를 구성해 쇤의 논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증위원회는 1백3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에서 “쇤이 과학에서 실험 데이터의 신성함을 무시한 행동을 저질렀음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동일한 실험 데이터를 다른 종류의 물질과 장치에 여러 차례 반복 사용하고, 심지어 예상되는 결과에 맞춰 데이터를 날조하기까지 했다.

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대부분의 실험이 협력자 없이 혼자서 한 것이고, 데이터 측정 또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해 왔으며 심지어 손수 기록하는 실험노트 또한 존재하는 않는다고 한다. 쇤은 자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부족으로 그동안의 실험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고 모두 지웠다고 밝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지금껏 발표한 모든 실험논문의 실제 샘플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이언스와 네이처 홈페이지에 실린 그의 논문 앞에는 ‘기만적 실험결과가 포함된 논문’이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다.

쇤의 이번 사건은 많은 이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주기에 충분했다. 미 텍사스대 물리학과의 박병화씨(박사과정)는 “최근 몇년 동안 쇤 박사의 성과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며 “이곳 미국에서는 이번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혹시 나노분야(특히 유기반도체 분야)에 대한 연구지원이 줄어들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엄밀한 실험 과정을 거쳐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과학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세상을 속인 과학자


공명심에 눈 멀어

국민대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과학사회학)는 “쇤과 같은 사례는 현대 과학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비해 현대의 과학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며 “이에 따라 현대의 과학자상은 예전처럼 실험실에 틀어박혀 데이터 해석에만 몰두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자신의 출세와 공명심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과거에 비해 과학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만큼, ‘순수한’ 과학자는 존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과학자 집단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회집단과는 달리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돼 왔다. 현대과학의 특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197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공동체에는 다른 사회집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규범들이 있으며, 이 덕분에 과학자 집단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산출할 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모델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과학공동체의 규범은 크게 네가지다. 첫째 공유주의로서, 과학자들은 데이터와 연구결과를 서로 공개하고 권유한다. 둘째 보편주의로, 정치적·사회적 요인이 과학적 아이디어 또는 개인과학자를 평가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며 과학적 성취는 오직 ‘과학’ 그 자체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셋째 무사무욕으로, 과학자들은 오직 진리추구에만 관심을 두며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조직화된 회의주의다. 과학자들은 높은 수준의 엄밀성과 증명을 추구하며, 충분한 근거없이 어떤 믿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튼은 초기 과학자의 행동과 특징을 잘 분석했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특히 과학이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돼 발달함에 따라 이 규범은 실제 과학자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하게 됐다. 특히 무사무욕의 항목은 여러가지 예외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교수는 “쇤의 경우도 무사무욕의 관점에서 예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쇤은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의 무명대학(콥렌츠대)을 나온 그가 세계 물리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은 첨단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유기분자 트랜지스터라는 분야를 택했다.

이 분야는 ‘나노’와 ‘고집적회로’등이 융합된 응용물리학계의 핵심연구분야 중 하나다. 그가 지난해 11월에 만들었다고 발표한 단분자 트랜지스터는 유기분자 한개로 구성된 트랜지스터로, 가느다란 핀 끝에 1천만개를 놓을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다. 만약 이것이 실용화된다면 현재 실리콘 기반의 정보기술을 단숨에 바꿀만한 획기적인 업적인 것이다. 김교수는 “쇤의 경우 자신의 공명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실험 데이터를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조작한, 현대 과학자의 비뚤어진 모습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다”라고 말한다.
 

현대과학, 특히 생의학 분야에서 는 과학자의‘암묵적 노하우’ 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동일한 절 차로 실험을 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현대과학의 이런 특징은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묵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험 검증 방해하는 암묵적 지식

현대 과학자 행동의 또다른 특징은 비밀주의를 들 수 있다. 울산의대 구영모 교수(의료윤리)는 “이런 특징은 특히 생의학 분야에서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 현대의 생명과학은 과거의 그것과는 달리 ‘생명의 본질’에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첨단 분석도구와 실험방법이 발달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연구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됨에 따라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조차 세세한 부분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특히 생명과학에서는 복잡한 실험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재현하기는 매우 힘들다. 구교수는 “각각의 실험실에는 다른 사람이 공유할 수 없는 특수하고 ‘암묵적인’ 실험기법이 있다. 따라서 다른 과학자가 이를 따라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은 오직 실험을 계획하고 수행한 과학자만이 반복과정을 거쳐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다른 과학자가 따라하기는 매우 어렵다. 머튼이 분석한 과학자의 공유주의 특징은 이제 더이상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과학자가 특정 유전자를 쥐 세포에 삽입시켜 특정 형질을 발현시켰고, 이를 통해 유전자의 새로운 특성을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자. 연구결과에 흥미를 느낀 다른 과학자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똑같은 실험을 하더라도 동일한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특정 유전자를 쥐 세포에 삽입하는 기술은 고도의 숙련된 과정이 필요하고 특수한 ‘손재주’를 필요로 한다. 논문의 주인공이 성공시켰다고 모든 과학자가 같은 실험에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재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고도의 실험기법 이외에도 거대한 실험장치가 있다. 지난 1999년 미국의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물리학자 빅터 니노브 박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인 원자번호 1백16번과 1백18번의 초중량 원소를 발견했다고 학술지(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했다. 그는 연구소의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실험장치를 이용해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원소번호 92번의 우라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이고 원자번호 93번부터는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찰나의 원소’다. 이런 상태의 원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에너지로 중성자와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는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실험장치가 필요한데, 이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장치는 세계에서 단 몇대뿐으로 웬만한 과학자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다. 니노브 박사는 이 점을 이용, 자신의 실험 데이터를 조작해 발견하지도 않은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확인할 길이 없던 과학자들은 그의 논문을 믿었다가, 최근에 와서야 그의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듯 현대 과학의 초전문성과 비밀주의 특징은 과학자를 ‘부정행위’라는 유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자신의 입장따라 상이한 실험결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배태섭 간사는 현대 과학자의 특징으로 정치주의를 든다. 머튼의 보편주의와는 달리 현대 과학자들은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입장에 따라 과학 자체를 평가한다는 말이다. 그가 든 예는 아직도 논란중인 유전자변형작물(GMO)이다.

지난해 11월 네이처에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퀴스트 박사팀의 논문이 실렸다. 그는 멕시코 오악사카주 산간지방에서 채집한 야생 옥수수와 이 지역 식료품 가게에서 팔고 있는 일반 옥수수를 분석한 결과, 여기에 몬산토사의 유전자변형 옥수수에 들어간 것과 동일한 외래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동안 GMO를 반대한 많은 과학자들은 GMO의 외래 유전자가 야생종의 유전풀에 끼어 들어가 결국 종 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퀴스트 박사의 논문은 이를 직접 증명한 사례인 것이다. 물론 퀴스트 박사도 GMO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곧 이에 대한 반박이 시작됐다. 올 4월, 4개의 과학자 그룹은 퀴스트 박사팀이 사용한 실험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네이처에 게재했다. 퀴스트 박사는 ‘리버스 PCR’이라는 방법을 썼는데, 이는 전체 유전자풀에서 특정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골라 그 양을 증폭시키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퀴스트 박사는 자신의 결론을 뒷받침할 유리한 유전자만 증폭시키고 나머지는 무시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GMO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대편의 주장과 찬성하는 이의 근거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며 어느 한쪽만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배간사는 “생명공학의 경우 그 연구결과가 현실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띠느냐에 따라 연구결과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미 과학연구 윤리국에 보고된 과학논문의 부정행의 건수


과학 내부 문제 과학자가 해결한다?

머튼이 분석한 정직하고 성실하며 중립적인 과학자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송성수 박사는 “머튼이 제시한 과학자의 보편주의 규범은 그나마 과학이 순수한 학문적 과학에 머물러 있을 때나 어느 정도 현실 유관성이 있지, 오늘날과 같이 산업화된 과학의 시대에는 현실로부터 멀어졌다”며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과학자의 양심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방식은 바로 과학정책에 의한 과학자의 통제. 바로 현대 과학자가 처한 또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과학정책을 주도하는 정부와 과학 자체를 연구하는 과학자 사이에 그동안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발전 위주의 과학정책과 연구 중심의 과학이 부딪힐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과학자는 때때로 이기주의적이 됐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심지어는 경쟁자의 연구를 방해하는 와해공작과 표절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치명적인 기만행위까지 빈번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과학정책자는 이렇게 변해버린 과학자를 되돌리고 규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만들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그마한 다툼들이 있었다. 과학자와 과학정책자 사이의 이런 마찰은 마침내 ‘볼티모어 사건’으로 폭발하게 된다.

볼티모어 사건은 과학자 내부의 자그마한 과학논쟁으로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분자생물학자 데이비스 볼티모어 박사팀의 테레사 이매니시-카리 박사와 그녀의 박사후연구원인 마가렛 오툴르 사이의 과학논쟁이 발단이었다. 이매니시-카리 박사는 쥐의 세포에 외래 항체 유전자를 삽입시키면 원래 유전자와 외래 유전자가 동시에 단백질을 발현시켜 하이브리드 항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놀라운 점은 삽입된 외래 유전자는 직접 단백질을 생산하지 않고 쥐의 원래 항체유전자를 변형시켜 자신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면역 시스템에서 유전자가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논문이었고, 1986년 세계적 학술지인 셀에 게재됐다.

하지만 문제는 오툴르가 그들의 연구업적을 뒤집을 수 있는 화학약품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녀가 발견한 약품은 자신들의 연구결과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그녀는 그녀의 동료에게 이같은 딜레마를 털어놓았고, 동료들은 그녀에게 국립보건원(NIH)의 페더와 스튜어트 박사를 소개했다. 이들은 다시 이 문제를 미 에너지통상위원회의 존 딘겔에게 상의했다. 존 딘겔은 NIH의 연구비와 연구방향을 결정하는 총 책임자였다.

이제 볼티모어 사건은 과학자 내부의 과학논쟁을 넘어서고 있었다. 과학정책자인 존 딘겔과 노벨상 수상자인 과학자 볼티모어 사이의 논쟁으로 커져 버렸다. 딘겔은 과학에서의 기만행위를 근절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고, 볼티모어는 과학 내부의 문제는 과학자들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둘은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해줄 근거를 찾았고, 어느새 논쟁은 정부와 과학자 사이의 싸움이 돼 버렸다.

1986년부터 1994년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9년을 끌어온 논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버렸다. 이 논쟁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과학자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장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NIH에는 자신들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과학연구윤리국’(ORI, Office of Research Integrity)을 설치해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조사하고 있다. ORI에서는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없는 데이터를 지어내는 날조와 데이터를 바꾸는 변조, 데이터를 베끼는 표절로 나눠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소식지에 보고하고 있다.

또한 미 의회에는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조사하고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을 검토하는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고무된 유럽의 대부분 나라에서도 과학자의 윤리행동을 규제하는 각종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올바른 과학자 양성할 제도 시급해

지난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세계과학자회의’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세계 1백97개국 과학자와 정책결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21세기 과학이 지녀야 할 올바른 모습에 대해 토론했다. 여기서 채택된 ‘과학자 선언’에는 과학자들이 윤리적으로 그릇됐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학의 응용을 피하려고 노력하는데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원자폭탄의 개발로 야기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양심은 현재에 와서 과학자 자신의 양심문제에까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과학자의 행동을 규제할만한 이렇다 할 제도나 규정이 없다. 송성수 박사는 “우리도 이제 과학의 발전만 외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과학 우리 모두를 위한 과학을 위해 과학자의 행동을 규제할 적당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에도 하루 속히 과학자의 윤리를 강화할 제도를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쇤 같은 과학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 퍼그워시 학생그룹 |
반핵운동과 군비제한을 지지하는 과학자 단체인 '과학과 국세정세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the Pugwash Conferences on Science and World Affairs)의 산하기구다. 퍼그워시 회의는 1957년 버트런드 러셀과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핵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일단의 과학자들이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퍼그워시란 이름은 첫 모임이 열린 캐나다 노바스코사주의 작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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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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