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보다 소수의 선택이 승리하는 마이너리티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는 주가 등락과 같은 경제현상이나 도로 차선 선택과 같은 사회현상이 숨어있다. 이 게임에 한번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추석이나 설 귀성 차량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다. 온 나라의 고속도로와 국도가 귀성 차량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상황을 말이다.
이때 라디오의 교통방송이 계속해서 ‘몇번 도로 어느 지점에서 정체나 지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우회하기 바란다’고 방송한다면? 이 방송을 들은 운전자들은 아마도 잠시 생각에 잠길 것이다.
‘교통방송의 안내에 따라 그쪽으로 우회할까, 아니면 방송을 듣고 우회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이 길을 계속 고집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를 고심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우회하는 길을 택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계속 오던 길을 고집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정보를 갖고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은 달라져, 그 결과 복잡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회냐 계속가냐’의 경우에 승자는 누구일까. 사람들이 적게 선택한 길을 가는 운전자다. 즉 도로 선택의 문제는 다수가 아닌 소수(마이너리티, minority)가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연구소 근처 술집에서 문제 발견
마이너리티 게임은 과학자들이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자 만들어낸 간단한 모델이다. 현재 스위스 프리보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와이씨 챙 교수가 1997년 제안했다. 이 모델은 1994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제안한 ‘엘-파롤 바’(El-Farol’s bar) 모형을 변형한 것이다.
아서 교수가 이 모형을 탄생시킨 배경은 무척 흥미롭다. 그는 복잡계 연구의 메카인 산타페 연구소의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어서 이곳을 자주 들렀다. 산타페 연구소는 21세기를 맞이해 과학분야에서 새로운 사고를 열기 위한 노력으로 1980년대 중반, 겔만, 앤더슨, 파머, 아서 등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생물학자, 경제학자들이 모여 탄생시켰다.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과학혁명, 즉 양자역학의 탄생과 원자세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20세기 인간의 문명세계, 즉 컴퓨터, 휴대폰, 반도체와 같은 문명을 탄생시켰듯이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산타페 시에는 ‘엘 파롤’이라는 술집이 있다. 금요일 저녁 산타페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한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이 술집에 들리곤 한다. 아서 교수는 술집이 비좁아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 차있는 시끄러운 상태를 싫어했다. 그는 ‘이번주 금요일에는 과연 몇명의 사람들이 올까? 이를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금요일마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이 경제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스스로 요동치는 방문객 수
1백명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사람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1백명 중 60명 이상 술집에 모인다고 생각하면 가지 않고, 60명 보다 적게 온다고 생각하면 간다고 가정하자. 그럼 각자 사람들은 ‘이번주 금요일에 60명 이상의 사람이 술집에 모일까’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각각의 사람은 S개의 판단기준이 있는 박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기준 N개를 고른다고 하자. 여기서 각 개인의 선호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S개의 판단기준에서 무작위로 N개의 판단기준을 고른다고 생각해도 좋다. 예를 들어 판단기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지난주, 지지난주에 60명 이상의 사람이 왔기 때문에 이번 주 금요일에는 60명 이하로 올 것이다.’ ‘지난주, 지지난주에 60명 이상의 사람이 왔기 때문에 이번 주에도 60명 이상 올 것이다.’ 참가자 전원은 몇번째 금요일에 몇명의 사람이 모였고, 당시 자기가 무슨 판단기준을 사용했으며, 그 판단기준이 잘 맞았다든지 등에 대해 모두 기록해둔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무슨 판단기준을 사용했는데 맞았거나 틀렸다는 식의 정보를 갖고 있다. 이런 정보들은 이번 주에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기준이 되는 자료가 된다.
1백명의 사람들은 매주 몇명의 사람들이 왔는가에 대한 같은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국 어떤 사람은 술집에 가고 어떤 사람은 가지 않는다. 마치 교통방송을 듣고 우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서 교수는 이 모델을 갖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의실험을 실행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매주 술집에 온 사람의 수는 60명의 기준으로 약간 적었다 많았다 하는 요동현상을 보였다. 누구도 ‘오지 말라’ ‘오라’고 지휘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해 60명 근방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해지는 복잡계
이런 현상을 자체조절현상(self-organized phenomena)이라고 한다. 즉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수행한 행동은 거시적인 결과 즉 이번주에 술집에 온 사람의 수를 만들어내는 한 원인이 된다. 한편 이러한 거시적인 결과는 다음 행동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자체조절현상으로 인해 경제현상이 일어난다고 아서 교수는 주장했다.
자체조절현상은 복잡계의 중요한 특징이다. 경제현상, 사회현상, 생물현상 등을 포함하고 있는 복잡계는 많은 구성원 또는 성분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각 구성원 또는 성분 간의 보이지 않는 협동현상에 의해 거시적인 현상을 창출한다. 이러한 협동현상으로 인해 생긴 거시적 현상이 각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들을 증폭시킬 때, 특히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많은 구성원들에 의한 협동현상은 종래 물리학에서 다뤄왔던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와는 다르다. 복잡계에서는 각 구성원 또는 성분이 거시적 현상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적응시키는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적응현상들은 종래의 물리학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였다. 즉 적응현상에 의한 자체조절현상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구성원 또는 성분의 입장에서 볼 때 각 구성원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구성성분으로서 거시적인 현상을 창출하는데 원인을 제공하는 입장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적인 현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한 운전자가 덜 막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거시적인 현상에 적응시킨 한 예다. 차량들이 덜 막힌 길로 모여들면서 그 길은 더이상 흐름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다음 행위자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게임 결과 근거해 판단
아서 교수의 연구논문이 나온 이후 물리학자들은 모델을 더욱 간단히 하려는 평소의 습관에 따라, ‘엘-파롤 바’를 변형한 모형을 소개했다. 이 모형이 바로 ‘마이너리티 게임’이다.
1997년 이 모형을 처음 소개한 챙 교수는 중국 출신으로 젊은 물리학자다. 한때 미국의 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시엔 양 교수가 문화혁명으로 침체돼 있던 중국의 물리학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매년 수십명의 학생을 선발, 미국의 주요 대학원 박사과정에 유학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때 선발된 챙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이너리티 게임의 모형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편의상 홀수 N명의 사람이 게임에 참여한다고 가정하자. 매 게임마다 각 사람들은 A 또는 B를 선택한다. 게임의 룰은 A와 B를 선택한 사람의 수를 비교해 적게 선택한 경우가 이기는 것이다. 즉 교통방송을 듣고 우회할 것이냐, 그대로 버티느냐 중에서 어떤 경우가 현명한 선택이었느냐는 것과 같다.
마이너리티 게임이 ‘엘-파롤 바’ 문제와 다른 점은 지난번 게임의 승리 결과가 A였는지 B였는지만 알려주고 자세한 내용, 예를 들어 몇명이 B를 선택해 B가 이겼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매 게임마다 각 선수들은 최근의 마이너리티 게임 결과에 근거해 A 또는 B의 선택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최근 3게임의 결과로 판단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편의상 승리 결과가 A였을 때를 0으로 표시하고, B였을 때를 1로 표시하자. 이 경우 지난 3게임 내용의 가짓수는 총 8가지다. 이에 대한 정보로 판단을 내린다면 얼마나 많은 가짓수가 있을까. 3게임의 8가지 경우에 대해 모두 A가 이긴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는 그 반대로 모든 경우에 대해 B가 이긴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는 A와 B가 3게임의 결과에 따라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모든 경우수를 다 세면 ${2}^{8}$=2백56개의 판단기준이 생긴다(표).
만약 최근 n개의 경우로 일반화하면 판단기준은 총 ${2}^{{2}^{n}}$개가 생긴다. 이와 같은 많은 판단 기준틀에서 각 선수들은 몇개의 판단 기준을 선택하고 매 게임에서는 그 중 1개를 선택해 그 판단기준에 따라서 A 또는 B를 선택한다. 결과는 N명의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달렸다. 이것이 마이너리티 게임의 내용이다.
마이너리티 게임은 엘 파롤 바 문제처럼 정보를 갖고 있는 다수의 게임 참가자들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 각각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시적 현상이 자체적으로 조절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주가 변동 설명 가능
챙 교수와 대학원생 샬레는 마이러니티 게임에 대한 컴퓨터 실험을 통해 거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봤다. A와 B를 선택하는 마이너리티 게임에서 A를 주식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B를 주식을 사는 행위라고 가정한다. 팔고 사는 사람의 숫자 차이에 의해 주식 가격은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요동친다.
이들은 이런 관점으로 주가의 등락을 기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A로 이기는 게임이 계속된다면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이에 반해 B로 이기는 게임이 계속될 경우 주가는 계속 오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형은 비록 주가의 요동 현상을 설명해주는 모형이 되고 있지만 요동의 통계적 성질을 정확히 재현할 수는 없었다.
경제현상은 많은 경제주체들이 자기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정보를 총동원해 분석하고 이 분석에 따라 경제활동을 한다.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량은 더욱 많아지고 있으며, 컴퓨터를 이용한 빠른 방법을 동원해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 동안 분석한 자료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분석 내용을 갖고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들 그렇게 할 때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욱 큰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복잡계는 이런 다양한 개개인을 포함하고 있어 더욱 다양한 현상을 창출하며, 우리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교통방송에서 나오는 한마디의 정보를 듣고 우회할까 말까 고민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행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아서와 챙 교수의 통찰력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지난 6월 스페인 시체스에서 열렸던 복잡계에 관한 학회에서 챙 교수와 저녁을 나누면서 경제물리학에 대해 논의한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