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에는 지난 여름의 상처가 너무 컸다. 올해 8월 31일과 9월 1일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로 인해 우리나라는 자연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2백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생긴 것을 비롯해 10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재산 피해는 무려 6조원에 달했다. 단 며칠간의 태풍과 폭우가 다른 어떤 재앙 보다 많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이런 피해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 이변으로 거의 모든 국가가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더워야 할 여름에 폭설이 내렸고,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홍수로 도시들이 물에 잠겼다. 또한 십여년간 계속돼온 가뭄으로 아프리카는 점점 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돼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구촌의 가장 큰 문제는 날씨가 될 것이다’고 단언한다.
날씨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국가 경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이번달에는 생활 속의 날씨에 관한 기초지식과 역사 속의 날씨를 다룬 책, 기후 변동을 읽는 방법과 대표적인 기상이변인 엘니뇨와 라니냐를 다룬 책,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상서비스 제공과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해 해야하는 일을 정리한 책 등 날씨와 기후, 기상을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한다.
날씨따라 국가 운명도 바뀐다
보통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날씨다. 날씨에 따라 하루 일과에 크고 작은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맑음, 흐림, 구름, 비, 눈. 일기장의 날씨표시는 이렇게 간단 하지만 날씨 때문에 생기는 생활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울만큼 다양하다.
‘날씨 토픽’은 이런 일상생활 속의 날씨 얘기를 담은 책이다. 예를 들어 보통 더울수록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온이 30℃를 넘으면 공기 중에 수분 함유량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스크림보다는 슬러시 같은 얼음 제품이 더 잘 팔린다. 이런 결과는 제품 생산과 마케팅에 곧바로 반영 된다.
이처럼 날씨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를 통해 날씨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책의 내용은‘세계사를 뒤바꾼 날씨’‘날씨, 잘만 알면 돈이 보인다’‘날씨따라, 계절따라’‘날씨는 환경 지킴이’등 4장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날씨 사전은 일기와 기상에 관한 기초 상식을 꼼꼼히 정리해 놓아서 많은 도움이 된다.
전통적인 육탄전에서 최첨단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까지 병력, 무기, 전략과 전술 등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요소가많지만, 변함 없는 중요성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이 날씨다. ‘전쟁과 기상’은 ‘날씨토픽’의 저자가 전쟁사에서 날씨와 관련된 얘기만 따로 모아 펴낸 책이다. 고대에서 나폴레옹 시대까지를 다룬 1권과, 근대에서 현대까지를 다룬 2권으로 구성돼 있다. 천문과 역술에 능통한 사람이 국가의 중요 정책을 돌보았던고대에서 첨단기계와 위성통신으로 대기의 흐름을 알게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운명과 정세의 움직임을 바꿔 놓은 날씨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겨울 알프스 산맥을 넘어 안개를 이용한 기습 공격으로 로마군을 전멸시킨 한니발 장군의 일화, 동토의 나라 러시아를 겨울철에 공격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몽골군 얘기, 산악지방의 기상과 지형에 어두웠던 무솔리니가 그리스 침공에 실패하는 장면 등 굵직 굵직한 세계사와 변화무쌍한 날씨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지구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지키려면
‘기후 변동-21세기 지구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앞의 책들에 비해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기상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사진과 도표 등 관련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여줌으로써 대기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기과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지질학, 해양학, 천문학 등 다양한 지식이 결합돼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대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에 영향을 받듯이, 대기 역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제대로 조사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지구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 대기 시스템의 형성 과정과 기후 변화 과정, 산성비·스모그·오존층 파괴·지구 온난화 등 이상 기후현상, ‘지구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지속 시키기 위한 노력 등 대기과학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제목 그대로 기상이변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엘니뇨와 라니냐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원래 엘니뇨는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페루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계절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발생시기와 양상이 다양 해지고 그 영향이 커짐으로써 지금은 바닷물의 온도가 수개월 이상 평년보다 높아지는 이상 현상을 엘니뇨라고 부르게 됐다. 라니냐는 이와는 반대로 바닷물의 기온이 평년보다 낮게 나타나는 이상 현상을 말한다.
1972-73년 페루 연안에서 발생한 엘니뇨는 당시 세계 어획량 1위를 자랑하던 페루의 수산업을 몰락시켰으며, 1982-83년에는 전세계적으로 극심한 가뭄과 홍수 피해를 불러와 2천명이 넘는 사망자와 65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또한 1997-98년에는 20세기 최대의 엘니뇨가 나타나 전세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재앙을 몰고 왔다.
이 책에서는 엘니뇨와 라니냐의 실체와, 엘니뇨와 라니냐가 기후 변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지난 20여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엘니뇨와 라니냐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일 뿐이다. 특히 지구 온난화에 의해 엘니뇨가 자주 발생하고 큰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추측은 있지만, 아직까지 이것을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손으로 막는 하늘의 재앙
예전에는 날씨만 간단하게 전해주던 뉴스의 일기 예보 코너에서 요즘은 ‘날씨와 생활’ 등의 이름으로 하루 일과와 관련된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기예보의 중요성은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넘어서, 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업과 수산업에서 건설, 교통, 통신, 환경, 보건, 에너지, 금융,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하늘의 흐름을 잘 알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무형의 자원을 축적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기상정보가 요구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리한 책이‘정보화 사회의 기상서비스’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상 정보의 제공과 활용, 다양한 기상정보의 효용과 가치 등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부터 민간 차원의 기상 서비스가 본격화됐다. 앞으로는 위성통신, 디지털통신, 슈퍼컴퓨터, 멀티미디어 서비스 등을 통한 기상 정보 처리와 교환이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한다.
‘위기의 지구’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쓴 지구 환경에 대한 보고서다. 기후에 관한 내용과 환경 문제,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제시돼 있다. 지구 대기와 관련된 문제 외에도 여러가지 환경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오존층 파괴에 대한 경고와 지구 온난화 문제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책들과 함께 살펴볼 만하다.
공기 중에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산화탄소 비율, 오존층 파괴, 열대우림지대의 급격한 파괴 등 우리가 익히 들어온 지구의 위기 상황들이 과연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또한 이해타산에 얽매여 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문제 해결에 투자하지 않는 경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기 못하는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지구를 위기에 처하게 한 공범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준다.
|테마 산책 관련 도서|
∙날씨 토픽 / 반기성 지음 / 명진출판 / 2000
∙전쟁과 기상(상)(하) / 반기성 지음 / 명진출판 / 2001
∙기후 변동‐21세기 지구의 미래를 예측한다 / 토마스 그레델∙폴 루첸 지음, 김경렬∙이강용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9
∙엘니뇨와 라니냐 / 마이클 그랜츠 지음, 오재호∙권원태 옮김 / 아르케 / 2002
∙정보화 사회의 기상서비스 / 이우진 지음 / 문예당 / 1997
∙위기의 지구 / 앨 고어 지음, 이창주 옮김 / 삶과꿈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