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부터 1353년까지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대유행했다. 흑사병은 흑사병균(Yersinia pestis)에 감염된 벼룩이 쥐에 기생했다가 사람을 물면 전염되는 병이다.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흑사병균이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원했다는 연구가 나왔지만, 왜 해당 시기에 유럽에 전파돼 대규모 유행으로 번졌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025년 12월 4일 마틴 바우흐 독일 라이프니츠 동유럽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이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화산 활동으로 인한 흉작이 14세기 흑사병 유행을 불러왔다는 연구를 ‘커뮤니케이션즈 지구&환경(earth&environment)’에 발표했다. doi: 10.1038/s43247-025-02964-0
연구팀은 흑사병의 유행이 기후, 생태계, 사회 변화와 관련됐을 거라고 추측하고 14세기 당시 유럽 기온을 파악했다. 먼저 기존 논문에서 유럽 8개 지역의 나무 나이테의 밀도 자료를 찾았다. 여름철에 생기는 나무 나이테는 기온이 낮을수록 세포벽이 얇아지면서 조직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1346~1347년 유럽 나무들의 평균 나이테 밀도는 1300~1350년 사이 평균보다 낮았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하기 직전 여름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기온 저하의 원인을 화산 폭발에서 찾았다. 독일 헬름헬츠 해양연구센터가 관리하는 빙상 정보에 따르면, 1345년 남극과 그린란드 빙상에는 약 14Tg(테라그램·1조 그램)의 황산염이 유입됐다. 황산염은 화산 폭발 시 대기로 배출되는 물질이다. 연구팀은 대규모 화산 분출로 생성된 황산염 입자가 햇빛을 반사하면서 지구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고 추측했다.
기온 저하는 유럽에 흉작을 가져다줬다. 실제로 1346~1347년 유럽 정부의 행정 문서에서 공통으로 당시 흉작이 심각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134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정부는 흑해 지역에서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그후 1348년 베네치아에서 흑사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흑해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흑사병균에 감염된 벼룩이 곡물에 붙어 유럽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14세기 흑사병 유행은 기후변화와 사회·경제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며 “오늘날처럼 기후가 빠르게 변화하고 교역이 활발한 사회에서는 전염병이 더욱 갑작스럽게 퍼질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