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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기록한 화가

해수면 상승 그림에 남겨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태풍과 폭우에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에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처럼 지난 여름의 끝자락은 길었습니다. 그러나 폭풍보다 수마보다 위대한 삶의 의지는 다시 일어나 젖은 가재도구를 씻어내고, 쓰러진 벼를 세우게 했습니다. 이제 하늘이 조금만 도와주면 마지막 과일이 익어갈 것입니다.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자연재해를 보노라면 좀더 빨리 태풍의 길을, 비구름의 양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상예측은 인공위성 등 다양한 관측장비로 수집한 자료를 시간별로 분석해 이뤄집니다. 단기간의 기상 변이를 추적하는 한편, 1백년이 넘는 긴 시간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작은 변이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상관측 역사는 채 2백년이 안됩니다. 과학자들은 기상관측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시대의 기후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가가 남긴 그림에서 기상관측 이전의 기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카날레토(Canaletto)란 화가는 베니스의 항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 국립과학연구위원회의 기상학자인 다리오 카무포 박사는 카날레토의 그림에서 기후 변화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카날레토는 1730년대에서 1740년대까지 10년 이상 당시 베니스를 찾는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가져갈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기념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란 광학도구를 이용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일종의 바늘사진기로 조그만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서 들어온 광선이 거울에 반사돼 초점판 유리에 상이 맺힙니다. 상의 윤곽을 따라 베끼면 사진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카날레토는 휴대용 옵스큐라로 3일에 한번씩 베니스 항구를 관측해 이를 바탕으로 거의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카무포 박사는 카날레토의 그림에서 라미나리아(Laminaria)란 해초가 베니스 항구에 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라미나리아는 바닷물 표면 위에 떠다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베니스 운하의 수면 변화를 알 수 있었습니다. 1백여점 이상의 그림을 토대로 카무포 박사는 베니스의 바닷물이 매년 2.7mm씩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1871년 이후 이뤄진 공식 수위 측정자료로 분석한 결과도 이와 근접하는 매년 2.4mm의 증가였다는 것입니다. 카날레토는 당시의 기상학자, 해양학자였던 것입니다.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국제 암석권-생물권 프로그램의 전지구적 기상변이연구 책임자인 프랭크 올드필드 박사는 “비록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카무포 박사의 연구결과는 매우 신뢰할만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최근 화가들이 카메라와 같은 도구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또한번 있었습니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지난해 19세기 고전주의 화가 앵그르가 광학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호크니는 앵그르의 자신에 찬 선들이 미국의 20세기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 ‘베껴 그린’ 드로잉과 흡사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앵그르,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등 거장들의 그림에 카메라 옵스큐라가 이용됐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호크니의 책이 나오자 기상학자들과는 달리 작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걱정한 미술사학자들은 불같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문헌적 증거가 없는 논의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란 것이죠. 이 논쟁은 미국의 유명 미술 월간지인 ‘아트 인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학도구를 이용했다고 해서 거장들의 명성에 해가 가는 것일까요. ‘예술’(art)이라는 말은 기술을 말하는 그리스어인 ‘테크네’(thecne)를 라틴어로 번역한 ‘아르스’(ars)에서 왔습니다. 사이좋던 이웃사촌을 후손들이 떼놓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카날레토 작 ‘예수 승천일의 부친토로 해변’(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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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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