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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졌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두 발로 걷고 사냥에 능했던 수각류 공룡은 약 1억 년 전부터 뒷다리, 꽁지깃 등에 깃털을 갖추면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새처럼 속이 텅 빈 뼈와 가슴뼈를 가지고 있었고, 치골(골반 앞쪽 뼈)은 비행에 유리하도록 뒤를 향해 있었다. 약 6600만 년 전 대멸종의 시기에 살아남은 수각류 공룡은 이후 1000만~1500만 년 동안 ‘진화 빅뱅’을 거쳐 1만 종이 넘는 조류로 분화했다. 그 과정에서 야생 닭의 조상 격인 ‘적색야계(멧닭·Gallus Gallus)’가 약 3000만 년 전에 탄생했다. 적색야계는 목 아래와 몸통 부분은 붉지만 꼬리로 갈수록 검은 깃털을 가진 새다. 특히 적색야계 수컷의 머리 부분에 있었던 붉은 볏과, 털갈이 때 나타나는 이클립스 깃털은 이 새의 상징이었다. 이클립스 깃털은 적색야계 수컷에서만 나타나는 보라색 깃털로, 늦여름에 붉고 노란 목 깃털과 꼬리 가운데 부분의 깃털을 털갈이할 때 생긴다. 하지만 이클립스 깃털은 동남아시아 산속에 사는 현재의 적색야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이다. 순수한 적색야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논란, 적색야계는 어디서 살았나
현재 싸움닭이나 가축닭으로 익숙한 품종들은 넓은 의미에서는 적색야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그 원형을 잃고 변형된 길들여진 닭(집닭·Gallus Gallus Domesticus)이다.
적색야계의 원산지와 최초의 집닭이 남긴 흔적을 찾아 고고학자들은 지층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은 논란 끝에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역의 산속이라는 답을 내놨다.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닭뼈가 발견된 곳으로서 방사성 원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4000년 전에 살던 닭의 뼈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닭의 뼛조각을 찾으면 그곳이 곧 원조 적색야계가 살았던 곳이며, 그 근방에서 최초로 사육화가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였던 중국에서도 최초의 닭 사육지 타이틀을 얻기 위해 닭뼈 찾기에 열을 올렸다. 1988년 중국 고고학자들이 중국 중부에서 8000년 된 닭뼈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앤드루 롤러의 책 ‘치킨로드’에 따르면, 독일 뮌헨대 인류학및고고해부학과 요리스 페터르스 교수는 당시 “그들이 지층의 연대를 파악하고 정작 닭뼈의 연대는 측정하지 않았다”며 “그들이 주장한 닭뼈는 실제로 약 2000년 전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습하고 산성도가 높은 토양에서는 닭뼈가 2000년 이상 보존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땅속의 쥐나 두더지같은 설치류가 2000년 전의 뼈를 8000년 전의 지층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인더스문명의 사람들이 적색야계를 사육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을까. 고고학자들은 “인더스문명의 사람들은 닭을 뼈까지 먹는 습성이 있었다. (더 오래전에 집닭이 된 적색야계의 흔적을)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며 명확한 확답을 내리지 못했고, 그 공을 유전물질인 DNA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넘기게 됐다.
![미국 캔자스대 타운센드 피터슨 박사는 1999년 발표한 논문에서 지난 2세기 동안 모인 적색야계 표본 745개의 특징을 조사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서 1920년대 이후 이클립스 깃털을 가진 수탉이 사라졌으며, 그 외 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유전자가 오염돼 매우 드물게 관찰된다고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원조 적색야계 수탉의 털갈이 때 목 주위로 점점이 나타났던 이클립스 깃털을 태국에서 발견한 적색야계 사진에 합성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6/S201701N052_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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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를 이용해 닭의 조상을 찾으려는 시도는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됐다. 현재 일왕인 아키히토의 차남으로 생물학자였던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가 꾸린 연구팀은 1994년,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닭이 태국에서 처음 사육됐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연구는 표본이 일부 지역으로 제한돼 있었다는 문제가 드러났고 이후 연구에서 중국과 인도 등 여러 장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닭을 길렀던 것이 속속 확인됐다.
미국과 중국, 영국, 네덜란드 등 6개국으로 이뤄진 ‘국제 닭 다형성지도 컨소시엄’은 2004년 12월 닭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고 지역별 닭의 유전적 차이를 분석해 남아시아가 원조 적색야계의 서식지였을 것이라고 ‘네이처’에 발표했다. 변이가 많을수록 유전자 다양성이 크고, 이는 ‘원조’에 가깝다. 유전자 변이가 가장 오랫동안 일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활용한 변이는 단일염기다형성(SNP)이었다. 단일염기다형성은 같은 종에서 단일한 DNA 기본 염기 서열 중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화 또는 변이를 말한다. 인간의 경우 33억 개의 염기쌍에서 약 0.01%가 단일염기다형성으로 사람마다 염기 1000개당 한 개씩 차이가 난다.
연구자들은 지난 2세기 동안 수집된 747마리의 적색야계 표본에서 280만 개의 단일염기다형성이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 이경태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생명환경부 동물유전체과 농업연구사는 “(당시 연구는) 완성된 닭 유전체 지도를 바탕으로 여러 가축화된 종간의 염기서열 차이를 분석해 SNP의 변이가 가장 많은 곳을 찾아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SNP의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큰 남아시아 지역이 야생 닭의 원 서식지로 유력하다는 것에 많은 학자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같은 남아시아지역 국가에서 적색야계가 처음으로 길들여지면서 집닭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육된 집닭이인도와 중국, 중앙아시아 등지로 처음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또 사람의 손에 의해 집닭은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넜으며, 서쪽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퍼져 나가게 됐다.
현재 닭의 염색체는 38개의 상염색체와, W와 Z라는 성염색체로 이뤄져 있다. 닭의 DNA 정보는 1번부터 28번, 그리고 30번부터 33번까지의 상염색체와 성염색체(W, Z) 등 12.3억 염기쌍이 밝혀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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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적색야계의 후손들은 다른 의미에서 ‘신의 반열’에 올라섰다. ‘치느님’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과 가장 밀접한 동물이 된 것이다. 지질학에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특정 종의 뼈가 발견되는 지층을 기준으로 시대를 나누는데, 닭뼈가 있는 지층을 ‘인류세’라고 재정의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과학적으로 인간이 살았던 때를 증명하기 위해 인간의 뼈로 명확히 조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지만,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곳에 집닭이 살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매년 약 400억 마리의 닭이 도축되고 약 200억 마리의 닭은 그와 관계없이 항상 사육되고 있다. 닭의 용도는 단순히 식재료에 국한되지 않는다. 매년 수백만 마리의 닭이 독감 백신 제조를 위해 희생된다.
동남아시아 숲속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원조 적색야계들도 이런 동족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동남아 전역에는 적색야계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야생 닭이 수천 마리가 남아 있다. 하지만 개발과 사냥으로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지금도 베트남 시골의 장에서 우리 돈으로 약 11만 원을 주면 야생닭을 암암리에 구해준다.
미국 캔자스대 생물학자 타운센드 피터슨은 1999년 발표한 논문에서 “보존을 위해 20세기 중반에 미국으로 옮겨졌던 것을 제외하면 (원서식지였던 남아시아 지역에서) 이클립스 깃털을 가진 원조 적색야계는 멸종했다”고 선언했다. 피터슨은 또 “유전적으로 순수한 야생 적색야계는 인류사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하다”며 “순수한 야생닭을 사냥하거나 사육화해 집닭 유전자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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