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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그린변혁 꿈꾸는 개척 프로젝트

쓰레기는 자원의 또다른 이름

지난 세기 성장과 발전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는 우리에게 엄청난 쓰레기를 남겼다.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쓰레기는 곧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는 제2의 자원이다. 버려진 폐기물에서 청정 연료를 생산하고 성능 만점의 적조 제거제를 개발하는 재활용 기술을 만나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류는 모른다.”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가 별 성과없이 끝나자 폐회식장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말처럼 인류가 사는 지구는 ‘환경파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10년 전 리우회의에서 채택한 예전의 약속만 되풀이했을 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행동지침을 마련하는데는 실패했다. 지구환경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알맹이는 없이 화려한 수사만 나열한 ‘나토’(No Action, Talks Only)가 된 셈이다.
 

21세기 그린변혁 꿈꾸는 개척 프로젝트


환경과 경제 동시에 만족

이런 성장패러다임 위주의 산업화 물결이 지속된다면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은 전지구적 환경 보전을 위해 온실가스를 규제하는 기후변화협약,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협약, 생태계 복원을 위한 생물 다양성 협약 등 국제적 환경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환경을 희생시키지 않고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우리 세대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생태적 번영을 다음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보존하고 자원고갈의 위협 없는 깨끗하고 건전한 환경을 지닌 자원순환형 사회를 만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발전과 환경보호는 대립적인 위치에 놓여 있어 둘 중 하나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경제, 두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폐기물 재활용기술이다.

산업폐기물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부산물이다. 특히 성장위주의 산업발전과정을 거친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독성 폐기물이 많이 발생한다.
 

지구가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최근 폐막된‘지구정상회의’도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이제 폐기물 재활용 기술이 나서 지구를 구해야 할 차례다.


폐식용유에서 청정 연료 개발

기존에는 이런 폐기물을 매립하거나 소각, 해양투기 등의 방법으로 환경으로부터 제거하거나 격리시키는 방식을 택해 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환경오염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자원 낭비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쓰레기도 효과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단순한 처리를 넘어 이를 유효자원으로 적극 이용하려는 재활용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폐기물 재활용 기술은 폐플라스틱, 산업·생활폐수, 폐분진 등으로부터 산업원료를 재생산하면서 다른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 개념의 대표적 청정기술이다.

현재 국내의 폐기물 재활용 기술은 지난 2000년 7월 과학기술부가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으로 선정한 ‘산업폐기물 재활용 기술개발사업단’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다. 폐기물의 재활용 기술은 쓰레기의 원재료에 따라 크게 유기폐기물과 무기폐기물로 나눠 개발되고 있다. 탄소 중심의 유기물과 그렇지 않은 무기물은 서로의 성격이 달라 적용되는 기술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유기폐기물의 대표적 예는 플라스틱이다. 현재 쓰레기 중 처리가 가장 골치 아픈 플라스틱은 배출량이 많고 분해가 잘 되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또한 소각할 경우 공기 오염은 물론 인류 건강에 치명적인 유해물질인 다이옥신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잘 분리하면 순도 99%에 이르는 손톱만한 크기의 펠렛(pellet, 작은 알갱이)으로 만들어 다른 플라스틱 제품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고온에서 플라스틱을 녹여 이때 나오는 오일증기를 응축시켜 경유를 대량으로 뽑아내는 공정도 가능하다. 기름의 생산이라는 면에서 바이오디젤도 뒤지지 않는다. 바이오디젤이란 폐식용유 등을 특수공정으로 가공한 뒤 기존 경유와 8대 2의 비율로 혼합해 자동차 연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대체에너지다. 바이오디젤유는 특히 이산화탄소와 환경 오염물질의 배출량이 경유에 비해 30-50% 이상 낮아 저공해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소각재로 만든 적조 제거제

한편 무기계 폐기물은 전통 굴뚝산업인 철강, 화력발전, 석유화학산업에서 발생하는 철가루, 석탄재, 소각재 등을 말한다. 최근에는 해마다 연근 해안의 양식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적조를 제거할 수 있는 물질이 소각재를 재활용해 개발됐다.

적조는 식물 플랑크톤이 대량 번식해 바닷물이 붉은 빛을 띠는 현상이다. 비가 많이 내려 육지의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 등이 대량으로 바다에 유입돼 영양염이 급증할 때 주로 발생한다. 적조가 해양 생태계에 피해를 입히는 이유는 대량의 플랑크톤이 죽으면서 미생물에 의해 한꺼번에 분해되기 때문. 이때 산소가 쓰이므로 용존 산소가 감소해 어패류들이 일시에 질식사하며 플랑크톤이 만드는 독성물질에 의해서도 피해를 입는다.

지금까지 적조의 유일한 해결책은 황토를 피해지역에 살포하는 것이었다. 황토는 적조의 원인인 독성 플랑크톤 코클로디니움의 세포에 붙어 세포막을 파괴하고 바다밑으로 가라앉게 한다. 그러나 황토는 단기 처방에는 효율이 높지만 궁극적으로 바다를 오염시키고 적조 발생률을 높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각재로 만든 새로운 적조 제거제는 ‘제오플럭’. 사업단의 핵심과제를 수행중인 부경대의 이제근 교수는 소각재를 고온으로 용융시킨 슬래그로 합성한 제올라이트를 주원료로 제오플럭을 만들었다.

제올라이트는 나노미터(nm, 1nm=10-9m) 크기보다 작은 미세한 구멍을 내부에 갖고 있는 다공성 결정체다. 수많은 구멍은 플랑크톤을 가두고 흡착시켜 적조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킨다. 제오플럭은 황토의 1/10만으로도 95% 이상의 적조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폐기물 재활용 기술을 이 용한 적조제거제‘제오플 럭’이 개발됐다. 기존의 황토 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매년 발 생되는 남해안 적조 피해를 효 과적으로 줄일 전망이다.


생산자가 최종 책임

재활용 과학은 관련기술의 핵심소재와 장치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NT나 BT, IT 등의 첨단과학과는 달리 재활용 기술은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이 떨어진다. 폐기물을 수거해 가공하는 절차는 매우 복잡하며 체계화돼 있지 못하다. 이에 따라 균일한 원료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또한 관련 기술을 상용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더욱이 아직까지 재활용 산업설비를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도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이같은 점 때문에 시장경제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재활용 기술을 상용화하고 활성화시키기는 어렵다. 다른 첨단기술에 비해 정책 연구가 중요시되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재활용 기술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책 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다양하고 효과적인 제도를 개발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생산자 책임재활용제도’(EPR). 제품을 생산한 기업이 폐기물을 회수해 처리하고, 제품의 판매자도 폐기물을 회수해야 하는 법안이다. 각종 폐기물의 최종책임자가 생산자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폐기물의 재활용율을 높인다는 취지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 EPR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에 따라 가전제품, 컴퓨터, 건전지, 윤활유, PET병, 타이어 등의 제품은 이를 생산한 기업이 의무적으로 회수해 재활용해야 한다. 또한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판매점에 대해 헌 제품을 가져가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책적인 관심을 통해 폐기물의 원천적인 발생억제(Reduce), 반복적인 재사용(Reuse), 에너지 재활용(Recycle)으로 이어지는 3R이 제대로 실현될 때, 진정한 자원순환형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가 맞고 있는 21세기는 결코 과거로부터의 단순한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 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폐기물 재활용기술은 완벽한 자원의 순환이용이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산업폐기물 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거칠 것 없는 21세기 개척자 이강인 단장


“폐기물은 완전히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발생되는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이를 가능한 한 자원화하는 것이 지금 인류가 새롭게 도전해야하는 일이고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폐기물 재활용 기술개발사업단의 이강인 단장은 거대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답게 당찬 소신을 밝혔다. 이 단장은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계속 연구자의 본분을 지킨 과학자였다. 금속공학을 전공한 이 단장은 미국에서 티타늄의 재활용 기술로 박사학위를 딴 뒤, 지난 1988년 국내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자원연구소에서 연구실장과 부장을 거쳐 자원재활용사업단장을 지낸 이 단장은 국내 재활용 기술분야의 터줏대감. 연구자로서 긴 시간을 보내서인지 이 단장은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같은 인상이다.

상용화 아니면 가지 않는다

현재 사업단은 사업의 형태를 세가지로 나눠서 진행중이다. 기초적인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상용화 공정으로 가기 위한 대형사업은 중점과제, 차세대 핵심기술 또는 기반기술의 개발은 핵심과제, 재활용 산업의 경제적·제도적 정책 제안을 위한 정책과제로 이뤄져 있다. 총 25개의 세부과제가 진행중인 이 사업은 2010년까지 약 1천3백억원의 연구비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국내의 재활용 기술개발은 산발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재활용 사업체의 재정난으로 실패했다. 물론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미미한 단계다. 그래서 사업단의 개발이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 단장은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 관련산업체가 연계됐을 때 과제 평가에서 가산점을 줬다. 연구소나 연구원만이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가 직접 참가해 현장에서 접목가능한지 동시에 평가해보는 시스템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상용화가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실질적인 개발이 아니면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이 단장의 의지다. 그래서 그런지 1차년도 과제평가를 마친 사업단의 프로젝트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용화에 성공했다. 대표적 예가 폐플라스틱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공정과 폐PC·폐휴대폰에서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공정이다. 이 기술들은 실제로 대량 생산을 위한 플랜트 설비를 갖췄다.

첨단기술의 효율적 집대성

이 단장은 국민적 공감대가 폐기물 재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임을 강조했다. 일본에서 추진되고 있는 에코 타운(Eco-town) 프로젝트도 초등학생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전문적 지식보다는 관심을 갖고 의문을 제기하고, 좀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재활용 기술을 동네 ‘고물상’ 수준으로 이해하는 고정관념도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재활용 기술은 IT, BT, NT 등 첨단과학기술이 총체적으로 모인 적극적 기술이다. 재활용 기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첨단기술의 최근 성과를 집대성해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를 성공적으로 탐험하고 돌아온 연예인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TV 프로그램처럼, 2010년 사업단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상상을 해보며, 도전하는 사업단과 이 단장을 거칠 것 없는 21세기 프론티어, 개척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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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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