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이 되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여 고향을 찾아가는지 궁금해집니다. 서울에 남아 있으면 텅 빈 도심을 누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산과 들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고 말을 합니다. 고향은 힘들어도 가고 싶은 곳, 누구나 있었으면 하는 그런 곳인가 봅니다. 그런 고향을 정지용의 ‘향수’만큼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론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굳이 시골 출신이 아니어도 이 시를 들으면 눈앞에 고향이 보이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그런데 시 구절을 자세히 보면 뭔가 색다른 말들이 있습니다. 지금 한창 대학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새 눈치를 챘을 겁니다. 바로 ‘공감각’ 표현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시각의 청각화이며, ‘금빛 게으론 울음’은 청각의 시각화입니다. 공감각이란 이처럼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다든지, 글씨를 보고 냄새를 느낀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나의 감각 자극에 두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색을 듣는다든지, 소리의 촉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3백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종의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겪는 정신장애로 치부돼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감각이 실재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 반더빌트대의 토머스 팔메리 박사팀은 검은색 글씨에서 다양한 색을 느낀다는 중년의 한 남성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연구진은 ‘WO’란 가명으로 불린 이 남자에게 우선 흑백으로 인쇄한 한음절로 된 1백개의 단어들을 제시하고 어떤 색을 느끼는지 적게 했습니다. 실험을 한지 한달 이상 지난 뒤 같은 실험을 했더니 WO는 97개의 단어들을 두번 모두 같은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틀리게 말한 색도 베이지나 흰색이 섞인 연한 갈색처럼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붉은색 잉크로 ‘붉다’는 글을 인쇄했을 때 단어의 색을 더 빨리 말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변형시켜 WO의 공감각을 좀더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WO는 ‘moose’(캐나다 큰사슴)란 단어를 분홍색으로 봅니다. 실험결과 이 단어를 분홍색으로 인쇄했을 때가 다른 색으로 인쇄했을 때보다 색을 말하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천재 예술가들은 공감각 소유자
한편 WO는 숫자 2는 오렌지색, 5는 녹색, 6과 8은 거의 같은 진한 파란색으로 봅니다. 그래서 연구진이 흰색의 5들 사이에 같은 흰색의 2 하나를 숨겨놨을 때 일반인들은 모양이 비슷해 2를 쉽게 찾지 못했지만, 2와 5를 확연히 다른 색으로 인지하는 WO는 쉽게 2를 찾아냈습니다. 이에 비해 일반인들은 6들 속의 8은 모양이 달라 금방 찾았지만 WO에게는 같은 색으로 보여 좀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 과학원회보’(PNAS) 5월 19일자에 발표됐습니다.
공감각은 흔히 천재 예술가들에게서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보들레르, 랭보와 같은 시인이나 소설가 나보코프, 화가 칸딘스키, 클레 그리고 리스트, 스크리아빈 등의 작곡가들이 그랬습니다. 반더빌트대 연구진은 WO의 일반적인 색 지각 능력은 극히 정상적이며 정신적인 이상징후도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했습니다.그렇다면 여러분들도 공감각을 발달시킴으로써 예술적 재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올 4월 독일 라이프치히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2천명 가운데 한명 정도는 색에서 소리를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기자는 23이라는 수만 보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과연 저도 공감각을 가진 걸까요. 참고로 23일은 과학동아의 마감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