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무대에서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던 멕시코의 고대문명. 찬란했던 그 문화유적이 한창 발굴되고 있다. 한편으로 지진 등으로 파괴된 멕시코시티의 현대건축물도 복원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지금 고대문명유적발굴과 지진 등으로 파괴된 현대건축물을 복원하는 대사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깊은 관심으로 과거와 현대의 잃어버린 문화를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찬란했던 고대 멕시코의 문명은 수수께끼처럼 몰락했고 그 뒤의 '아스테카'왕조 문화도 스페인 점령으로 황폐해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지진과 화산활동 등으로 멕시코시의 현대건축물과 오랜동안 보존되어 오던 유서 깊은 건물들의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고 다른 일부는 붕괴 직전에 있다.
멕시코시에는 대지진의 상흔이 지금도 여기저기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중세이래의 문화업적 파괴한 대지진
멕시코시에서 최근에 일어났던 지진은 1985년 9월19일 아침 7시 18분 리히터지진계로 진도 8.1의 강진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어 24시간 뒤인 20일 아침 7시16분에 여진이 있었고 그날 저녁 7시42분에는 진도 7.3의 강진이 한번 더 강타했다.
이 대재난으로 사망실종자가 2만8천여명(유엔 재난구조기구 집계)에 이르렀고 수도 전체의 4층 이상 건물 3분의 1이 완전 파괴되었으며 통신이 두절되고 가스관파괴와 전선합선으로 화재까지 발생했다.
멕시코시 남서쪽 약 3백20㎞의 태평양해저 코코스지층이 육지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어난 이 지진은 멕시코시의 46㎢안에 있는 구시가지와 상업지구를 강타하고 '할리스코'주를 비롯한 인근 3개주와 '아카풀코' '과달라하라'까지 완전 마비상태로 만들었다.
이 지진은 북으로는 멕시코시에서 1천2백㎞ 떨어진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남으로는 1천㎞ 떨어진 과테말라에까지 이른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 지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멕시코에서는 73년과 79년에 코코스지층 이동으로 인한 지진이 있었다.
82년 4월에는 멕시코 동부에 있는 '엘치촌'산이 대규모의 분화활동을 시작하여 유황성 가스 분연을 2천만톤이나 성층권으로 뿜어올렸다. 그 결과로 생긴 황산 에어로졸이 맥시코뿐만 아니라 북반구 전체의 기온을 장기간에 걸쳐 저하시켜 여러가지 이상기온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재해의 영향을 바로크식의 오래된 건물이 많은 멕시코시의 중심부 '알라메다 소칼로'(헌법광장) 부근이 가장 심하다. 카데드랄(cathedrale·교구대성당)과 옛궁궐, 식민지시대의 구시가지는 지진발생 당시에 생긴 균열로 지반이 침하되어 붕괴직전 상태에 있다. 신앙심이 깊은 멕시코인은 17세기부터 1세기 동안에 걸쳐 지었던 과달루페성당이 급격한 지반침하와 겹친 지진으로 붕괴상태에 이르자 최근 그 서쪽에 새로 대규모 성당을 건설했다. 그 내부는 마치 고급호텔의 로비를 연상케 하는 초현대식 시설이다.
호수 속의 작은 섬에 건설된 멕시코시
스페인어로 '메히코'(Mexico) 또는 '시우다드 데 메히코'(Ciudad de mexico)라 부르는 멕시코공화국의 수도 멕시코시는 교외를 합한 연방구의 총인구가 1천7백만명에 이르며 멕시코 중부 '아나와크'고원 중앙부의 표고 2천2백40m 높이에 위치하는 고지대 도시다.
동쪽 교외는 '테스코코'호(湖)와 접하고 있고 남동쪽에는 '포포카 테페틀'산(5,451m)과 '이스타시와틀'산(5,286m)의 두화산이 있으며 서쪽에는 '톨루카'화산(4,577m)이 솟아 있다.
위도상으로 보면 열대에 위치하고 있으나 고지대이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은 가장 높은 5월에도 섭씨 17.4도이며 가장 낮은 1월은 12.1도로 연간평균 기온은 15.1도다. 연교차(年較差)는 적으며 오히려 일교차가 커서 하루중에 4계절이 있다고 할 정도다.
인간의 거주지로 알맞은 조건을 갖춘 이아나와크고원은 옛날부터 집단거주지로 이용되어 왔다. 그 속에 있는 멕시코시는 원래 테스코코호 속에 있는 한 섬이었다. 이 섬에 아스테카제국이 1325년에 새도시 '테노치티틀란'(신이 머무는 곳이란 뜻)을 건설했다.
이곳은 아스테카의 성역으로 한때는 인구가 30만명에까지 이르렀다. 처음 도시를 건설할 때 시작된 호수매립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오늘날의 멕시코시가 되었다.
1519년에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왕국이 아스테카제국이었다. 그는 테노치티틀란에 우뚝 선 흰 피라미드와 궁전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움에 꿈이 아닌가 하며 감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코르테스는 이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멕시코시를 건설하였다. 이교도의 '악마의 문화'를 말살하고 그 자리에 기독교문화를 구축한 것이다.
새로 건설된 도시는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아니라 소칼로광장을 중심으로 가로가 동서남북으로 정연하게 구획되고 광장과 공원이 적절하게 배치된 시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겹친 지진과 화산활동, 인구증가에 따른 지하수 과잉사용 등으로 지반이 내려 앉아 테스코코호 수면보다 5m나 낮아졌다. 그리고 오래된 아름다운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
오래된 아름다운 건축물과 의회건물을 비롯한 정부기관과 호텔 등이 있는 중심부가 이런 상태에 있는 것과는 반대로 남부지역과 동부, 북부는 여러가지 특징과 자랑거리로 가득차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남부는 '코요아칸'교회와 수도원, '소치밀코'수로 등이 있어 주말을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고 동부에는 국제공항이 있고 '이스타팔라파'에는 아스테카시대의 생활양식이 남아 있다. 또 서부의 일각, '차플테펙'언덕에는 멕시코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성이 있으며 옛날부터의 별장지대가 있다. 이곳에는 지금 멕시코가 자랑하는 국립인류학박물관(1964년 준공)이 자리하고 있다.
유카탄반도의 잊혀진 고대유적
멕시코 남부에서 '유카탄'반도에 걸친 일대에는 귀중한 유적이 많다. 그 중에는 용암 밑에서 발굴된 피라미드도 있다. 그밖에 '팔렝케' '우스말' '치첸이차' 등의 마야유적도 있어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매일 붐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밀림 속에는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 않은 고전기 마야(기원 300~800년)의 유적이 더 많이 있다. 최근에 발굴된 유카탄반도 '킨타나 로' 주의 '코바' 지방 마야유적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여기에는 울창한 수해(樹海) 위로 모습을 드러낸 높이가 40m를 넘는 피라미드와 신전이 있으며 유적 전체를 발굴하는데만 1백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 한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 이 지역 유적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유적이 모두 발굴되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고대 마야문명의 수수께끼를 풀 새로운 자료도 나타날 것이다.
멕시코의 유적을 둘러본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이 한결같이 갖게 되는 절실한 생각은 5백년 남짓 전까지만 해도 찬란했던 문화를 가졌던 왕국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완전히 말살되어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의 문화는 이미 제로의 개념을 알고 현대의 역법과 거의 같은 정확한 역법을 사용한 고도로 발달한 문화였다.
아스테카제국의 기록은 스페인 정복자가 '악마가 쓴 글'이라 하여 모두 소각하여버렸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볼 때 5백년이란 시간은 수수께끼를 낳을 정도로 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오문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시대와 그 민족을 이해할 실마리가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의 분실이 아닐 수 없다.
멕시코정부와 관련학계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발굴·복원사업이 성공리에 이루어지면 인류의 문화유산은 그만큼 풍요하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