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뭍으로 나와 죽음을 자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고래 떼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환경단체들과미 해군이 고래를 사이에 놓고 법정 공방에 나섰다.
노르웨이에 서식하는 레밍 쥐는 보통 쥐와는 다른 괴이한 행동을 한다. 레밍 쥐는 봄이나 가을에 이동을 시작해 바닷가에 종착하는데, 거기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처음에는 멈칫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며 도망갈 곳을 찾지만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만 바다에 빠져버리고 만다.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레밍 쥐와는 반대로 육지로 올라와 죽음을 자초하는 동물이 있어 화제가 돼 왔다. 해마다 4백여마리의 고래가 해안가로 몰려들어 스스로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고래 소동’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만약 동물들이 수명이 다해 그런 것이라면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들 스스로 고귀한 생명을 끊는 일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혹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최근 발생한 고래의 집단 떼죽음은 이러한 의문을 더욱 부채질한다.
지난 7월 27일 미 매사추세츠주 데니스의 채핀 해안에서 수십마리의 고래가 몰려들어 그 중 일곱마리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고래가 집단으로 뭍에 올라와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18세기 말엽부터 심심찮게 일어났고, 과학자들은 고래의 죽음을 놓고 자살때문에, 쉬고 싶어서, 혹은 기상 이변으로 등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재판대에 오른 미 해군
그러나 최근 발생한 고래 떼죽음이 주목을 끄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환경단체들도 고래 떼죽음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온 이래 미 해군이 고래 떼죽음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미 해군이 수중에서 사용하는 음파탐지기가 고래를 죽게 만든 주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8월 7일에는 미 해군의 음파탐지기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사실 환경단체들과 고래, 그리고 미 해군의 삼각관계는 요 근래 수차례 불협화음을 빚어낸 적이 있었지만, 미 해군이 정식으로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귀머거리 고래는 죽은 고래
환경단체들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데는 고래의 죽음과 음파탐지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 고래의 죽음이 자연환경 탓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북극에서 유입되는 물 때문에 조류의 흐름이 빨라져 고래가 여기에 휩쓸려서 육지로 밀려왔다는 설명이 있다. 또 고래는 지구가 자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지자기를 인식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동물인데, 이 지자기에 이상이 생겨 고래가 방향 감각을 잃고 육지로 올라온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리고 바다 속 지진 때문에 고래가 죽는다는 설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고래의 죽음이 외부 자연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고래의 음파반사기능에 이상이 생겨 초래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등장했다. 고래는 초음파를 쏘아 보내고 이 초음파가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들음으로써 방향을 잡고 이동 경로를 따라간다. 이런 고래의 음파반사기능은 먹이를 찾고 새끼를 돌보는 등 고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활동에서 사용되므로 음파반사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고래의 생명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고래 스스로 음파반사기능에 착각을 일으켜 해안으로 몰려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더 고래가 방향을 잘못 잡아 육지로 향하면 뒤따르던 고래들도 하나 둘 해안가로 올라온다. 또는 모래해안으로 음파를 쏘아 보내면 고래에게 되돌아가는 음파가 모래에 모두 흡수돼 없어지므로 고래는 깊은 곳으로 착각하고 해안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고래가 해안가에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최근 몇년 사이의 고래 떼죽음이 주로 외부 요인에 의한 고래의 음파반사기능 이상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최근 한 연구는 미 해군이 사용한 음파탐지기로 인해 고래의 초음파 체계가 교란돼 음파반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이에 놀란 고래들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보고했다.
수중 소음 공해의 주범, 음파탐지기
해군이 사용하는 음파탐지기는 음파의 물리적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공기 중에서는 음파보다 전자기파가 빠르고 멀리 전달되기 때문에 공중, 지상 및 해상의 목표물을 탐지하는데 전자기파를 이용한 레이더가 동원된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전자기파가 모두 흡수돼버리는 반면 음파는 상대적으로 잘 전달되기 때문에 음파를 사용해 잠수함을 찾거나 해저지형을 파악한다.
미 해군이 이런 음파탐지기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88년부터였다. 특히 저주파수의 음파를 사용하면 수중에서 음파를 더 멀리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미 해군은 저주파 음파탐지기 개발에 주력했다. 실제로 1991년 남인도양에 있는 한 섬의 해안에서 발생시킨 저주파 신호가 수천km 떨어진 미국 서해안에서 감지될 정도로 저주파 음파는 멀리까지 전달됐다.
탐지기 개발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는 그리스 서해에서 음파탐지기를 시험 가동했는데, 그 후 수염고래가 해변에서 방향을 잃은 채 무더기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음파탐지기가 고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는 2000년 3월에 발견됐다. 당시 미 해군이 바하마 해역에서 음파탐지기를 사용해 전투 훈련을 수행한 것과 동시에 바하마 해변에서 부리고래 5마리와 돌고래 1마리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현장이 목격됐다.
음파탐지기는 갈수록 그 기술이 발전해 매우 강력한 음파를 발사할 수 있게 됐고, 당시 사용한 음파탐지기는 최고 2백15dB(소리의 강도를 표시하는 단위)이었다. 고래는 1백10dB이 넘어가면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1백 80dB이 넘을 경우 고막이 찢어진다. 죽은 고래의 머리를 조사한 결과 사인이 강력한 음파로 인해 귀 내부가 파괴된 것임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미 해군도 군사훈련이 고래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됐다.
하지만 사건이 법정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은 2001년 8월 미 해군이 새로운 형태의 음파탐지기를 사용할 의사를 내비치면서부터였다. 이 음파탐지기는 함정에서 케이블로 예인하는 방식으로 음파를 발사하는데, 케이블을 조절해 음파 발사 범위를 이전보다 훨씬 넓게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당연히 소음의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는 이유로 새로운 음파탐지기 사용을 반대했으며 이로써 미 해군과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결국 지난 7월 말 55마리의 고래가 해안으로 몰려와서 그 중 일곱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이튿날 채 4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44마리의 고래가 해안에서 길을 잃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후 환경단체들은 법정 소송을 결심했다.
환경단체들은 고래의 멸종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래 떼죽음이 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 전체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매우 염려하고 있다. 아직까지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미 해군과 환경단체들에 대해 앞으로 법원의 판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