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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나

태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11년 주기보다 2년이나 빨리 흑점과 플레어가 활동하기 시작한 것.

지난 3월 초 1천문단위 떨어진 태양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흑점이 출현, 천문학계에 큰 화제를 뿌렸다. 흑점의 크기는 지구를 무려 70개나 삼켜버릴 정도였으며, 태양이 얇은 구름에 가려질 때에는 맨 눈으로도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흑점의 등장과 동시에 강력한 자기장이 태양 주위를 휘감았고 그 여파는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였다. 또 흑점의 '아내'인 플레어(flare)가 수십차례 목격되었으며 태양화(太陽花)인 오로라가 생생하게 관측되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태양활동이 극성을 부릴 때 흔히 나타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분노가 시작되고 있다', '태양이 다시 바빠지고 있다'고 표현, 태양활동의 고조를 예고하고 있다.

태양활동은 인플레이션곡선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대개 11년에 한번씩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 보여준 일련의 '난폭성'은 태양이 활동주기의 최고점에 근접해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전례없는 속도로

천문학자들은 지난 번 태양활동의 정점이 1979년 겨울에 있었으므로 1991년 초쯤에 다시 피크를 이룰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최근 태양이 연출한 '사건'들을 분석한 미국 항공우주국부설 마셜우주센터의 학자들은 태양활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3년 전인 1986년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후 전례없는 속도로 활동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

태양활동의 요즘같은 '가속'은 천문학자들에게 분명히 이례적인 일로 비쳐지고 있다. 국내의 태양물리학자들도 진행속도가 '기록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이번 주기에 새로운 기록들이 많이 작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내년이나 빠르면 올해 안에 태양활동의 최고점을 맞이 할 확률이 매우 커지고 있다. 11년주기에서 1~2년을 단축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경희대 김갑성교수(우주과학과)는 "태양활동이 크게 증대될 조짐이 보인다. 어쩌면 저 위도까지 생생한 오로라현상을 보이고 5차례나 파괴적인 지자기(地磁気)폭풍을 일으켰던 지난 1957~1958년 극대기만큼 위력적일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반면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므로 상황은 가변적이다'고 신중론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태양의 '변덕'은 유명하므로 더 두고봐야 '본심'을 알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태양의 활동주기가 그동안 11년으로 고정돼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11년은 단지 평균치일 뿐이고 길게는 17년, 짧게는 7년주기였던 적도 있었다.

흑점의 의미

금년 3월 이래 태양에서는 어떤 현상들이 관측되었나? 또 태양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3월 초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지구크기의 70배나 되는 흑점군(群)이 자리잡았다. 강력한 자장에 의해 형성되는 이 흑점들은 주위의 가스군(群)보다 온도가 훨씬 떨어져, 태양 표면(광구)의 검은얼룩으로 비쳐졌다.

일반적으로 흑점의 크기는 수천~수십만km(지름)에 이르고, 수명은 1일이하~수개월로 다양하다. 밝기는 광구의 40% 수준이므로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인다. 또 온도도 4천~5천˚K로 광구의 6천˚K 보다 낮다.

이 흑점의 특징으론 대개 2가지를 꼽는다. 첫째 온도가 낮고 둘째 강한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두 특징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태양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태양흑점의 존재는 태양 자체가 불안정하고 활동적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흑점의 주기를 태양활동의 주기와 동일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대 현정준교수(천문학)는 "극소기에는 태양흑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극대기에는 1백개 이상의 흑점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흑점수의 변동을 정하는 기준이 흑점상대수인데, 그 값에 따라 태양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의 강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흑점과 관련해 사람들이 금방 떠올리는 것은 기후와의 관계이다. 실제로 흑점이 많아지면 태양에너지가 줄어들 수 있고, 태양상수가 일정하지 않게 돼 지구의 기상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호수의 물이 흑점의 숫자와 관련, 줄었다 늘었다 한다는 연구보고는 그 좋은 예다. 또 바람의 방향, 기압, 온도, 폭풍우의 수, 심지어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점점 커져간다는 오존층의 구멍크기에도 흑점이 영향을 미친다는 알쏭달쏭한 보고들이 속출하고 있다. 더 믿기 어려운 '흑점설'도 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 북극곰의 숫자, 인도의 전염병 환자수, 미국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숫자와 태양흑점수를 무리하게 꿰맞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3월의 태양 ① 흑점 ② 플레어 ③ 홍염 ④ 루프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태양에너지의 '기침소리'에 지구는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에너지가 수%만 증가해도 지구는 홍수사태를 맞게 되며, 수%만 감소해도 빙하기를 불러 들이리라는 것.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 흑점에 과학자들의 이목이 쏠려 있던 지난 3월, 흑점발견과 거의 동시에 한 밝은 점이 관측되었다. 순식간에 수십만 평방마일로 커진 이 하얀불꽃은 플레어(flare)란 이름의 섬광. 채층(彩層)폭발현상을 뜻하는 플레어는 흑점이 생기면 으례 덩달아 관측되는 현상인데, 특히 이번 것은 과거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엄청난 복사열과 수십억t의 물질을 우주 멀리까지 날려 보낸 것이다.

플레어는 흑점의 일부가 갑자기 밝아졌다가 수십분~수시간 안에 다시 복귀되는 현상으로, 그 때의 온도는 3천6백만˚K에 이른다. 또 플레어는 엄청난 양의 대전입자를 방출, 지구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도 있다.

김갑성교수는 "플레어로 인해 발생되는 X선 때문에 지구의 전리층이 흔들리게 된다. 특히 지구대기 상층의 이온층이 영향을 받아 단파통신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고 이를 '델린저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의 태양의 '광기'로 단파통신이 24시간이나 방해를 받았다. 또 통신위성과의 교신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며 견고하기로 유명했던 미국의 해안감시체제에 혼선을 빚기도 했다.

또 플레어에 의해 강력한 순간자장이 대기권 상층부에 발생, 각종 전선에 유도전류가 형성돼 이상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자동차 차고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등 '묘기'를 속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도전류는 캐나다 퀘벡주의 수력발전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몬트리올과 퀘벡지방은 9시간 동안 정전사태를 맞았다.

또 미국 국방부가 자랑하는 첩보위성의 기능을 한동안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첩보위성은 지구 궤도안에 있는 1만9천여 목표물을 감시해 왔는데, 플레어가 나타나자 일시에 1만1천여 목표물의 위치를 놓쳐버린 것.

하지만 이 정도로 '심술'을 부린 것은 '많이 봐준 것'이라는 게 태양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지난 3월의 대형 플레어가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태양의 오른쪽(우리가 볼 때는 왼쪽) 가장자리에서 발생했기에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는 것.

태양의 자전에 의해 지구와 흑점군이 거의 마주보게 된 시기는 대형 플레어가 사라진후인 3월 10일. 이때에는 비교적 소형 플레어가 그것도 잠깐 나타났으나 그 영향은 지대했다.

플레어가 보인지 8분 후, 방사선의 일종인 X선과 자외선이 태양풍을 타고 지구의 상층대기에 도착, 반알렌대에 '노크'를 했다. 그것도 점잖게 두드린 정도가 아니라 강타였다. 그 뒤 약 1시간 동안 높은 에너지를 가진 양자(proton)가 지구를 감쌌고, 계속해서 3일간 저(抵)에너지의 양자와 전자가 퍼부어졌다.

이 사실을 처음 탐지한 것은 태양관측선인 '솔라 맥스'였다. 지난 1980년에 지구궤도에 올려져 수많은 태양관련정보를 지구에 전해 준 이 고참 우주선의 촉수에 포착된 것이다. 금년 11월이면 폐기될 운명인 '솔라 맥스'의 어쩌면 마지막 봉사였다.

그러나 특별히 튼튼하게 만든 '솔라 맥스'도 강력한 방사선 앞에서는 1분간 '멍청'해질 수 밖에 없었다. '솔라 맥스'를 잠시 고장나게까지 했던 방사선은 상층대기의 온도마저 올려 놓았다. 방사선들이 충돌하면서 낸 막대한 열의 위력이었다.

아무튼 지난 3월에 목격된 2차례의 대형플레어 이래 크고 작은 플레어가 뒤를 이었다. 그후 9번의 대형 플레어와 수백번의 소형 플레어가 있었지만 태양의 자전때문에 지구상에서는 잘 관측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체로 하루에 5~6차례 플레어가 기록되고 있다.

태양의 흑점과 플레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플레어의 '동반자'인 '븕은 불꽃' 모양의 홍염(紅焰, prominence)이 관찰되었다. 보통 때는 어두운 줄무늬처럼 보이는데 플레어와 흑점덕분에 '본색'을 되찾은 것이다. 이미 태양표면으로부터 수만마일까지 홍염의 세력이 퍼져 있으며 그 '자태'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주로 극지방에 나타나는 오로라


그리고 광환(光環)인 코로나는 더욱 크고 밝게 빛났다. X선의 원천이자 수억t의 고압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탱크'인 코로나는 온도가 2백만˚K에 이르는 태양의 상층대기.

또 주로 전자나 양자로 구성된 태양풍(solar wind)이 플레어가 나타난 직후 더욱 매서워 졌다. 이 바람은 매초 2백~5백 마일의 속도로 지구와 우주를 향해 불어오고 있다.
하지만 근래의 플레어 때문에 생긴 가장 극적인 현상은 이틀 밤에 걸쳐 북극 하늘을 수놓은 오로라일 것이다.

"오로라는 결국 플레어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다. 높은 에너지의 전자가 태양풍을 따라 대기권에 도착하면 지구자장에 의해 일단 굴절된 후 극지방 부근의 대기권 상층부에 침투한다. 그러면 이 전자가 산소원자를 때려 산소원자로 하여금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내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란한 빛을 내는 현상이 바로 오로라"라고 서울대 윤홍식교수(천문학과)는 정의한다.

윤교수는 "최근에 발생한 플레어의 여파로 지구에 도달한 전자는 활성(activity)이 매우 커서 극지방이 아닌 저위도지방에서도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즉 과거에는 지구자기장이라는 보호벽이 가장 허술한 극지방에 주로 오로라가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전자의 활성이 워낙 강해서 단단한 보호막으로 감싼 저위도지방에도 오로라'꽃'을 피운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남부지방인 텍사스나 플로리다 애리조나주 등에서도 오로라가 목격되었다. 생소한 오로라가 리본같이 가늘게 뻗어 나가자 현지주민들은 '대재난'으로 오인, 경찰에 신고하는등 소란을 떨기도 했다.


주로 극지방에서 나타나는 오로나. 그러나 금년 3월에는 상당히 저위도 지방에서도 발견되었다.


치명적인 피부암을 일으키기도

이번에는 태양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 태양은 지금까지 큰 변동없는 열에너지를 공급, 우리가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무엇이나 '과잉'이면 탈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태양의 자외선은 지구의 보호막인 반알렌대에 의해 걸러지지만, 일부는 반알렌벽을 뛰어넘는다. 특히 태양활동의 고조기에는 더욱 쉽게 '벽'을 통과한다.

이렇게 빠져나온 자외선을 장기간 쬐면 우리의 피부는 손상을 받는다. 일종의 화상을 입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 김수남교수(피부과)는 "특히 여름철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지나친 피부노출을 삼가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또 일부 학자들은 흑점의 수와 피부암발생 빈도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흑점이 많이 나타날 때, 즉 태양활동이 '정력적'일 때, 피부암 환자수가 늘었다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결과도 통계적인 허점이 있긴 하지만 태양이 피부암, 특히 치료가 비교적 용이한 편평상피암과 기저세포암, 그리고 치명적인 흑색종(黑色腫, melanoma)의 발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강한 자외선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신체의 면역작용이 원활할 때는 나타나지 않던 허피스 계두 등 여러면역관련 질병들을 일으킬 수 있는것.

자외선의 해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눈에도 타격을 준다. 경희대 김상민교수(안과)는 "자외선을 오래 받으면, 눈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백내장을 일으키기 쉽다. 자외선이 수정체의 단백질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충고한다.

'분노'로 표현되는 요사이 태양 상황을 거꾸로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관련학자들이다. 최근의 태양의 심상찮은 동태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구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지난 6월, 2주동안 전세계적인 태양관측기간으로 설정하고, 태양을 면밀히 살폈다. 이 계획의 주 목적은 활동중인 플레어를 생성부터 소멸까지 전과정을 관찰, 태양표면의 지도를 재구성하는데 있었다. 아울러 과연 태양주기가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 주기를 조절하고 있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태양은 점점 뜨거워질 것인가, 아니면 차질 것인가를 알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태양은 우주 안에서는 평범한 별에 불과하지만 지구와 비교해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지름이 86만5천마일이고, 수소(H₂) 72%, 헬륨(He) 27%로 구성된 고온의 기체덩어리인 것. 부피는 지구의 약 1백30만배, 질량은 33만3천배에 이른다. 이런 지표들을 제쳐 놓더라도 태양이 없으면 모든 생물체가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식물도 광합성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태양에 관해 꽤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상태가 심각한 실정이다. 국내에 태양물리 전공학자가 윤홍식 김갑성교수외 10사람 이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또 변변한 태양관측장비나 연구도 태부족한 상태이다. 35억년간 지구를, 그리고 한반도를 지켜준 태양을 너무 푸대접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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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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