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한 호수가 유령 호수라 불리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그 많던 호수물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죽음의 땅이 돼버린 호수가 간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정한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파키스탄.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한번 찾아보자. 아시아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길쭉한 모양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파키스탄은 아시아에서 7번째로 넓은 나라다.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 문화가 발달했으며,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강이 국토를 가로질러 흐른다. 찬란한 불교문명을 간직한 간다라(페샤와르의 옛지명)를 비롯해 하라파, 모헨조다로 등 유적지가 즐비해 전세계 관광객을 유혹한다.
그런데 최근 파키스탄을 찾은 사람들이 정말 깜짝 놀라는 곳은 따로 있다. 주인공은 파키스탄 남부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도시인 퀘타 부근에 있는 한나 호수(Lake Hanna)다. 한나 호수를 찾은 사람들은 그곳을 유령 호수(ghostly lake)라 부른다. 도대체 어떤 호수여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일까. 설마 유령이라도 출몰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
하늘로 빨려간 호수물
한나 호수가 어떤 곳인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손쉽게 알 수 있다.
‘한나 호수는 매력적인 장소다. 터키석 빛깔의 아름다운 호수물이 갈색의 모래 언덕과 조화를 이뤄 더욱 밝게 빛난다. 호수가를 거닐기만 해도 상쾌해지고, 작은 보트를 빌리면 그림같은 호수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금붕어가 호수를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움직인다. 발루치스탄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퀘타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금방 도착한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설명대로라면 한나 호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관광지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유령호수란 말과 어울릴 만한 단서는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런데 최근 한나 호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누구나 왜 유령 호수라 부르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름다운 호수물이 단 한방울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2년 만에 호수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모자이크를 해놓은 것처럼 쩍쩍 갈라진 땅바닥에 이따금 말라죽은 물고기만 눈에 띈다. 완전히 죽음의 땅이 돼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호수물을 탐낸 사람이 그 많은 물을 훔쳐갔을 리도 만무하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호수물을 훔쳐간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나면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다. 범인은 한나 호수 바로 위에 있는 하늘이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아름다운 호수물은 메마른 하늘속으로 모두 빨려들어갔다. 지독한 가뭄이 닥쳐서다.
지난 4년 간 파키스탄이 겪은 극심한 가뭄은 비극이란 단어 외에 표현할 말이 없다. 강우량은 예년에 비해 63%가 줄었다. 특히 1월부터 3월까지의 겨울철과 7월부터 9월까지의 우기에는 더욱 심각하다. 이 때문에 발루치스탄 고원에서 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점령군이 만든 인공 호수
한나 호수가 사라져버린 일이 파키스탄 사람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 수세기 동안 퀘타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문화교류와 통상의 요지인 동시에 중요한 군사거점이었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에 앞장서던 영국이 이곳을 점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지역에 들어온 영국군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
비록 점령군이 만든 호수였지만, 덕분에 이 지역은 비옥해졌다. 호수에 저장된 물을 이용해 농부들이 땅을 일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관개농업을 통해 과수원이 생겨나고 곡식을 생산하는 농지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와 레몬은 아주 유명해졌다.
영국이 물러난 후 한나 호수는 퀘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가 됐다. 휴일이면 아름다운 호수를 찾아와 산책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즐겼다.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호수 한가운데 나간 순간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었던 사람은 현재 향수에 젖어 메마르고 먼지나는 땅을 걷어차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관광객들은 완전히 텅비어버린 호수 바닥을 신기해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난 2년 동안 일어난 일을 도저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년 동안 가뭄은 파키스탄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와 인도 대부분의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먹을 물과 식량을 구하지 못해 수많은 주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더위 때문에 가축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겪는 괴로움도 다양하다. 히말라야산맥에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져 홍수라는 재앙이 함께 나타나고 때문이다. 가뭄 때문에 고원지대의 물길은 완전히 말라버리지만, 몇몇 평지 지역은 물이 넘쳐 침수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이와 같은 현상이 지구 온난화나 기상이변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호수가 사라지면서 이 지역의 풍경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지역의 동식물 역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메마른 지역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집을 버리고 물을 찾아나서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가뭄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수가 파키스탄에서만 34만9천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사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펑펑 쏟아지는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가뭄은 북극의 빙하라는 말보다 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끔찍한 가뭄이 전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마야 같은 찬란한 고대문명이 멸망한 것은 장기간 가뭄이 지속됐기 때문이라는 일설도 있다. 수천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은 계속되는 가뭄을 대처할 뾰족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인지가뭄 때문에 유령 호수가 돼버린 한나 호수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