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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의 증거 조각? 정말 이상한 구름 '누베'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을 ‘무거운 입자’로 추정했다. 그런데 무거운 암흑물질이 실제 우주를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봤다. 암흑물질이 굉장히 작고 가벼운 입자라면? 그제야 기존에 설명되지 않던 실제 우주 문제가 해결됐다. 그리고 최근 이 가벼운 암흑물질 이론을 뒷받침해줄 새로운 증거까지 제시됐다. 작고 흐릿한데다가 펑퍼짐한 은하 ‘누베’다.

 

암흑물질의 여러 후보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윔프(WIMP)다. 윔프는 상호작용을 아주 약하게 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뜻이다. 암흑물질은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은하와 은하단 속 육중한 질량을 채우고 있다는 이론 속 물질이다. 오직 중력의 지배만 받는 것이다. 암흑물질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에 이끌려 높은 밀도의 ‘물질 반죽’을 만든다. 반죽 덩어리가 주변에 있던 가스 물질을 함께 끌어당기면서 은하와 별을 만들게 된다. 암흑물질 이론 중 이처럼 순전히 중력에 의해서만 반죽되고 뭉치는 방식의 암흑물질을, 차가운 암흑물질(CDM・Cold 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최근까지 많은 시뮬레이션은 차가운 암흑물질 이론을 적용했을 때, 우주의 진화를 꽤 잘 묘사해왔다. 초기 우주에 퍼져있던 물질이 모여들면서 오늘날 관측되는 것과 비슷한 우주 거대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의 해상도가 더 높아지면서 오히려 실제 우주와는 다른, 시뮬레이션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거운 암흑물질의 한계 두 가지

 

윔프가 암흑물질이라는 가설을 적용한 무거운 암흑물질 시뮬레이션 결과를 살펴보면 실제 우주에 비해 작은 위성 은하들이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우주에 탄생한 작은 은하들은 서로 반죽되면서 덩치 큰 은하로 성장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큰 은하 주변을 맴도는 굉장히 많은 수의 위성 은하가 남는다. 하지만 우리은하를 비롯해 주변의 여러 큰 은하를 관측해봐도 그 주변에 위성 은하가 시뮬레이션에서만큼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렇게 실제 관측에서 위성 은하게 적게 발견되는 문제를  ‘실종된 위성 은하 문제(Missing satellite problem)’라고 한다.

 

밀도에서도 시뮬레이션과 실제 관측 결과가 어긋난다. 차가운 암흑물질은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반죽되고 모여, 은하 중심으로 가면서 암흑물질의 밀도가 가파르게 높아진다. 그런데 실제 은하를 관측한 결과를 분석해보면, 중심으로 갈수록 암흑물질의 밀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모델만큼 가파르지 않다. 은하 중심으로 갈수록 밀도가 천천히 증가하다가 중심부에서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은하 중심에 물질이 밀집된 정도가 시뮬레이션에 비해 훨씬 완만하게 관측되는 것을 ‘커스프-코어 문제(Cusp-core problem)’라고 부른다.

 

▲천체를 여러 파장대에서 동시에 촬영하는 HiPERCAM으로 촬영한 누베 은하(가운데)와 주변 지역.

 

이 두 가지 문제는 차가운 암흑물질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에서 항상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중력에 의해서만 모여드는 차가운 암흑물질이 아닌, 다른 암흑물질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암흑물질을 무거운 입자로 가정해왔지만, 만약 정반대였다면 어떨까. 암흑물질이 빛과 어느 정도 상호작용도 할 수 있는, 굉장히 작고 가벼운 입자로 이뤄져있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가벼운 암흑물질과 한계 극복

 

10-28g. 암흑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전자 하나의 질량보다 1조 곱하기 1조 곱하기 1만 분의 1수준의 아주 가벼운 입자일 가능성을 한 번 생각해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 정도로 작고 가벼운 입자는 사실상 파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으로 이 가상의 입자를 계산해보면 물질파 파장의 길이가 3000광년이나 된다.

 

이처럼 파동을 일으키는 작은 입자들이 한 데 모이면, 마치 호수 위에 돌멩이 여러 개를 던졌을 때 크고 작은 다양한 파문이 뒤섞이듯 입자들의 파동이 서로 모여 간섭을 일으킨다. 이처럼 파동성을 크게 보이는 암흑물질 입자라면 높은 밀도로 한 곳에 모여있기 어렵다. 더 넓은 범위에 부드럽게 퍼지게 된다. 입자들이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모이지 못하게 사방으로 밀어내는 일종의 양자역학적인 압력이 작용하는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식의 암흑물질을 펑퍼짐하게 퍼지려고 하는 암흑물질이라는 뜻에서 ‘퍼지 암흑물질(Fuzzy 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퍼지 암흑물질 이론을 적용하면 기존의 차가운 암흑물질을 가정했던 시뮬레이션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퍼지 암흑물질은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에 은하 중심부 물질이 더 은하 외곽까지 퍼진다. 실제 은하에서 관측할 수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또한 퍼지 암흑물질 입자들은 서로 잘 반죽되지 못하게 밀어내는 양자역학적 압력이 작용하다보니, 비교적 가벼운 반죽 덩어리로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금방 흩어지고 파괴된다. 어지간히 무거운 반죽 덩어리가 아니라면, 서로를 밀어내는 양자역학적 압력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남을 수 없다. 큰 은하 주변을 맴도는 위성 은하가 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실종된 위성 은하 문제 역시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래서 최근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성질이 어쩌면 ‘차갑지’ 않고 ‘퍼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암흑물질의 분포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한 결과. 암흑물질은 우주에 거미줄처럼 흩어져 있다. 노란색은 중입자 물질이다.

 

구름처럼 흐릿한 은하, 누베를 발견하다

 

2015년, 고래자리 방향의 하늘 한 켠에서 무언가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이상한 영역이 하나 발견됐다. 하지만 워낙 흐릿했던 탓에 망원경 센서에 주변 다른 천체의 빛이 번지면서 생긴 얼룩인지, 아니면 정말 어떤 흐릿한 천체가 숨어있는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2019년 1월 카나리아 제도 라 팔마 섬에 위치한 지름 10.4m의 그랑 텔레스코피오 카나리아스 망원경을 통해 같은 방향을 관측했다. 그리고 깊은 어둠 속에 숨어있던 아주 흐릿한 새로운 은하의 존재를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새롭게 확인된 너무나 흐릿하고 펑퍼짐한 은하에게 스페인어로 구름을 뜻하는 ‘누베’라는 이름을 붙여 2024년 1월 국제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발표했다. doi: 10.1051/0004-6361/202347667

 

누베 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3억 광년 정도로 추정된다. 거리를 감안했을 때 밤하늘에서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누베의 전체 별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000만 배 수준이다. 우리은하 곁을 맴도는 아주 작은 위성 은하, 소마젤란 은하 정도 밖에 안되는 가벼운 질량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벼운 질량에 비해 너무 크게 보인다는 점이다. 누베의 지름은 대략 4만 5000광년. 우리은하 지름의 3분의 1 수준에 맞먹는다. 질량이 우리은하의 1000 분의 1 정도 밖에 안되는 꼬꼬마 은하가 우리은하에 맞먹는 엄청난 크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은하 속 별과 물질이 넓게 퍼져 분포한다. 별과 물질이 넓게 퍼져 분포하면서 밀도가 낮은 은하를 울트라 디퓨즈 은하(UDG・Ultra-Diffuse Galaxy)라고 부른다. 누베는 UDG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으로 밀도가 낮은 사례다.

누베는 어떻게 극도로 낮은 밀도를 가지고도, 파괴되지 않고 계속 은하의 형태를 유지하는 걸까? UDG가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메커니즘 중 하나는 훨씬 큰 은하들이 서로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중력으로 인해 큰 은하가 산산히 부서지면서 여러 개의 작은 은하 조각으로 쪼개지는 것이다. 이렇게 은하끼리 주고 받는 중력, 조석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작은 조각 은하를 조석 왜소 은하(TDG・Tidal Dwarf Galaxy)라고도 부른다. 그동안 발견된 많은 UDG의 90% 이상이 TDG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이번 누베 은하도 흔한 TDG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누베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는 누베로부터 무려 140만 광년이나 떨어져있는 UGC 929 은하다. 보통 TDG는 큰 은하에서 5~6만 광년 떨어진 범위 안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누베가 UGC 929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작은 조각 중 하나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베는 사실상 주변에 아무런 이웃 은하가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떠도는 정말 이상한 은하다.

 

누베가 알려주는 답은 ‘가벼운 암흑물질’

 

누베는 기존의 차가운 암흑물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윔프로 구성된 차가운 암흑물질은 서로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물질이 높은 밀도로 모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물질이 모이지 못하도록, 양자역학적인 압력이 작용할 수 있는 퍼지 암흑물질 이론이라면 누베와 같은 극도로 낮은 밀도의 펑퍼짐한 왜소 은하를 설명할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누베가 암흑물질의 퍼지한 성질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누베라는 이름의 작은 조각 구름이 끈질긴 미스터리, 암흑물질의 성질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새로운 증거 조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번 발견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할 이유도 있다. 누베 은하까지의 거리를 추정하기 위해, 연구팀은 지름 100m 크기의 그린 뱅크 전파 망원경을 동원했다. 그리고 은하 속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관측해 거리를 파악했다. 그런데 은하가 워낙 어둡고 흐릿하다보니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된 수소 구름이 누베 은하 안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거리에 있지만 우연히 비슷한 방향에 겹쳐보인 것일 수 있다. 만약 수소 구름이 누베 은하보다 훨씬 먼 배경에 우연히 겹쳐 보였을 뿐이라면 엄청 거대하고 흐릿한 은하가 아주 먼 거리에 놓여있다고 착각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발견이 정말 퍼지 암흑물질의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을지를 결론짓기 위해서는 누베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파악하는 더 깊은 새로운 관측이 뒤따라야한다.

 

❋필자소개

지웅배.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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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
  • 에디터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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