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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SF영화의 고전 ET(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82)가 제작 20주년을 맞아 재개봉됐다. 못생긴 얼굴과 기괴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어린이들의 친구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ET. ET는 인간에게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됐던 외계인을 지구인의 친구로, 그것도 어린이의 친구로 받아들이게 했다. ET는 단순한 영화를 넘어서,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다.

SF영화는 그 이름 ‘Science Fiction Films’이 뜻하는 것처럼, ‘과학적’ 요소로 구성돼 있다. 신선한 소재와 상상을 초월하는 볼거리로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SF영화를 보면서, 과학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다니 이만한 일석이조도 드물 것이다. 이번 달에는 SF영화와 과학을 다룬 책, 그리고 이런 책들과 같이 읽으면 좋은 로봇과 관련된 책들을 소개한다.


영화 속 과학 찾기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는 1999년 출간 이후 줄곧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온 교양과학도서다. 과학 책은 어려운 이론과 논리로 무장돼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인기리에 상영됐던 영화 속에 숨어있는 과학을 재발견하게 해줌으로써 과학과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같은 저자가 쓴 또다른 책 ‘시네마 사이언스’의 내용과, 책이 출간된 후 개봉됐던 ‘매트릭스’, ‘할로우 맨’ 등의 영화가 추가된 개정판이 나왔다. 야시경을 쓰고 전등을 비추는 영화 ‘쉬리’의 한 장면이나, 굴착기 기사들이 NASA의 우주선을 몰고 지구를 구하는 ‘아마겟돈’의 장면들은 여지없이 저자의 날카로운 눈에 걸려 도마에 오른다.

영화 ‘매트릭스’ 부분을 잠시 살펴보자. ‘매트릭스’는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에 가둬진 인간들이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거대 통제 시스템에 대항해서, 인간들이 육체적·정신적 해방을 추구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코드명 J’ ‘공각기동대’ ‘너바나’ 등이 흥행에 실패했던 것과는 달리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저자는 그 이유가 ‘매트릭스’에 들어있는 종교적 코드와 문화적 다양성에 있다고 한다. 즉 갖가지 문화가 섞여있는 다국적·탈문화적 공간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장점을 잘 살려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초국가적인 네트워크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 나노기술의 발전이 영화 속 세계를 빠른 속도로 현실화시키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종류의 책으로는 ‘과학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가 있다. 앞의 책이 영화를 중심에 두고 과학을 비춰본 것이라면, 이 책은 과학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설명한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재미를 즐기며 과학적 요소를 숨은그림 찾듯이 살펴보려는 사람들에게 앞의 책이 유용하다면, 영화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요소 그 자체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해준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인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설명, 생물과 관련된 주제를 간추린 내용, 그리고 이와 관련된 32편의 영화에 대한 내용 등 크게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과학과 관련시켜 얘기한 해당 내용이 영화의 어디쯤 나오는지 시간을 표시해놓은 것이 장점이다.

SF영화는 즐겨보면서도 과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상’을 넘어선 과학적 지식의 보고로서 SF영화를 재발견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21세기를 읽는 코드, 사이버펑크

이미 소개한 두책이 과학과 기술의 관점에서 SF영화를 해석했다면, ‘기술과 문명’은 인문학의 관점에서 SF영화에 접근한다. 생명복제, 인공지능, 디지털화 같은 과학적 현상이 인류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 맞이해야 하는지 등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과 과학기술, SF영화 등을 절묘하게 조합시키고 있다.

1960년대 영화부터 최근 상영된 영화 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난 SF영화 몇편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2백년을 산 사나이’ ‘매트릭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이 그 대상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뤄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사이버펑크’ 문화의 대표작 속에 들어있는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인간복제 문제에 대한 찬반논쟁을 보더라도, 올바른 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철학적 성찰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개발된 과학기술을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기대어 적절하게 제어하거나, 법률과 같은 사회적 장치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과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과학과 철학, 종교, 윤리의 대화를 모색하고 서로간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들이 자주 눈에 띈다.

‘기술과 문명’은 철학의 입장에서 과학을 해석함으로써, 이런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책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속의 생활이 일상화된 시대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 인간과 로봇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기계의 본성, 그리고 인간 정체성의 확립과 혼란 등의 다양한 주제를 통해 과학의 근원적인 문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세기에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로봇, 노예에서 친구로

예전에는 SF영화의 주인공이 인간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로봇이나 외계 생명체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로봇은 더이상 인간의 조력자나 부수적인 존재에 머물지 않고, 점차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게임과 스포츠 경기 등을 통해 로봇과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1997년 IBM사가 개발한 컴퓨터 딥 블루와 체스 세계 챔피언인 러시아의 게리 카스바로프가 게임을 벌여 딥 블루가 이긴 일이 있다. 또 로봇들의 축구 경기도 인기 종목 중 하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조물을 직접 실험하고 그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어한다. 로봇이 지면 지는 대로 인간의 우월함에 안도하고, 로봇이 이기면 이기는 대로 인간이 만든 로봇의 능력에 감탄한다. 이런 태도 속에는 로봇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싶은 인간의 꿈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로봇의 기능과 지능을 보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럼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로봇의 시대’는 지금부터 펼쳐질 로봇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안내서 같은 책이다. 로봇의 개념, 로봇과 친해지는 법, 생명공학 시대의 로봇 등 다양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 1952년 일본에서 탄생한 우주소년 아톰에서, 1999년부터 판매된 세계 최초의 애완용 로봇 아이보까지,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첨단로봇의 역사도 함께 읽을 수 있다.

‘로봇의 행진’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보다 인간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우월했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며, 그런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로봇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2050년,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21세기를 이끄는 첨단산업인 정보통신 기술과 생명공학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3년간 2배로 업그레이드되던 기술들이 이제 불과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고 있다. 이런 초고속 성장 속에서 누구도 50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로봇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영화와 소설, 만화 속의 로봇은 이제 생활 속의 로봇이 되고 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로봇에게 제2의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로봇이 아닌, 인간과 함께 생각하고 인간을 도우는 친구로서의 로봇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과 로봇의 공존은 가능한지, 또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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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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