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 같은 소형 기종에 의한 분산처리환경인 다운사이징은 90년대 컴퓨터 환경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공룡은 왜 지구상에서 사라졌을까? 공룡 멸종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쥐라기 이후 운석의 충돌로 닥쳐온 '핵겨울'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컴퓨터의 탄생과 더불어 사실상 세계 컴퓨터 시장을 이끌어 왔던 IBM도 멸종해 버린 공룡의 신세가 될 것인가? '푸른 제국'(BLUE EMPHIRE : 제복이 푸른색이어서 붙여진 별명)이라 불려왔던 공룡기업 IBM이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몰락해가고 있다. IBM은 최근 2/4분기 결산 결과 80억4천만 달러(6조4천억원)의 적자를 기록,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4/4분기 54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적자에 이어 또다시 엄청난 폭의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IBM이 이처럼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게 된 것은 이 기간중 인력감축, 공장폐쇄 등 구조조정 작업과 관련해 89억달러에 달하는 특별비용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IBM은 각 사업부문 영업 측면에서는 4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IBM은 대규모 적자를 발표함과 동시에 당초 5만명 정도로 예상됐던 올해 감원 규모를 내년까지 8만5천명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마지막 인원 정리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85년 40만5천명이 함께 일해 왔던 IBM에는 내년말에 가면 거의 절반 수준인 22만5천명만이 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세계를 풍미하던 초일류 기업 IBM이 이처럼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수록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변화하는 컴퓨터 시장의 흐름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90년대 들어 컴퓨터 시장의 새로운 흐름인 다운 사이징(down-sizing, PC 등 소형기종에 의한 분산 처리 환경) 추세는 메인프레임에 의존하고 있던 IBM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작지만 환경변화에 적응력이 강한 포유류(PC)는 핵겨울을 견디냈지만, 덩치 큰 공룡(메인프레임)은 이를 견디지 못했듯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컴퓨터 시장에서 IBM은 휘청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공룡 IBM을 몰락시키고 있는 다운사이징 바람이란 무엇인가?
컴퓨팅 환경과 관련된 시기 구분을 통해 그 내용을 알아보자.
메인프레임 단말기는 '말단'기
20년 전만 해도 한 기업의 전산업무는 온도와 습도가 잘 조절된 전산실 내의 호스트 컴퓨터에 의해서 처리됐다. 고성능 CPU와 대용량의 주기억장치, 어마어마한 길이의 마그네틱 테이프를 자료저장장치로 보유한 거대한 호스트 컴퓨터는 70년대까지 컴퓨터의 상징이었다. 각 장치가 독자적인 방 하나를 차지하고 하나의 호스트에 수십 내지 수백대의 터미널을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식은 아직도 은행이나 연구소, 정부기관에서 운용되고 있는 컴퓨터 사용환경이다.
호스트에 있는 중앙처리장치는 각 단말기에서 입력되는 요구에 따라 연산 비교 판단 전송 저장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각종 주변기기의 통제와 사용자의 접속허가 보안유지 등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 뒤 처리 결과만을 단말기에 보내주었다. 호스트 컴퓨터는 여러 대의 터미널에서 요구해오는 내용을 모두 만족시켜주기 위해 시분할기법(time-slicing)으로 멀티유저 멀티태스킹을 지원한다.
메인프레임을 구성하고 있는 호스트의 성능은 이렇게 막강하지만 단말기의 역할은 사용자의 요구를 호스트로 전송해주고 처리된 결과만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말단' 장치일 뿐이다. 단말기는 아무런 지능이 없기 때문에, 즉 독자적인 처리장치나 기억장치 저장장치 등의 장치를 구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바보단말기(dummy terminal)라고도 불렸다.
이 방식은 동시 다중 사용자에게 온라인(on-line) 실시간(real time) 처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집중화로 인한 정보의 집중적 통제나 보안유지가 용이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첫째 호스트 컴퓨터에 대해 처리 요구가 집중되면 처리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거의 기능이 정지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대입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 대학의 전체 전화통화가 불통되어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때 터미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처리 결과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데 은행에 가서 가끔 접하게 되는 전산장애도 이런 경우인 수가 많다.
이런 문제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시스템 도입시 컴퓨터 사용의 최대요구를 고려해 여기에 사양을 맞추어야 한다. 즉 당장은 사용하지도 않을 예비적 요구를 위해서 값비싼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점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값은 갈수록 저렴해지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낡은 기술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세번째 문제점은 워낙 고가의 고성능 장비이다 보니 특정 공급업자의 소량 생산 품목이거나 독점적 공급자에 의한 독점적 품목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구입에서 유지, 보수까지 공급업자의 일방통행식 횡포가 저질러지기 일쑤라는데 있었다.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판매한 업체에 완전히 종속당하는 구조가 강요됨으로써 보안유지가 생명인 정보처리 부분에 커다란 함정이 생길 우려마저 발생했다. 독점적 공급업자가 다른 업체 제품과의 호환성을 무시하거나 표준화를 외면함으로써 기종과 기종간의 자료 교환이 불가능한 경우에 정보처리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집권화에서 분업 전문화로
중앙집중화의 문제점은 분권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제2세대 컴퓨팅 형태는 각 단말로의 처리능력 분권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구조다. PC의 성능 향상으로 PC(또는 워크스테이션)가 단말기를 대신해서 각각 독자적인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고 처리한 결과만을 한군데(파일 서버)에 보관하는 형태의 컴퓨터 방식이 제2세대 컴퓨팅 방식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각 PC의 중앙에 있는 파일서버는 마치 자료의 저장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자료와 함께 자원의 공유도 가능하게 했다.
제1세대 컴퓨팅이 호스트(메인프레임)와 터미널로 구성되어 있다면 제2세대 컴퓨팅은 파일서버(미니급)와 워크스테이션으로 구성 돼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용어 자체가 '각각의 처리를 수행하는 작업장'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 방식의 이점은 우선 경제적인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며, 둘째 호스트의 업무폭주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점, 셋째 요구되는 업무의 양에 따라 시스템의 증설이나 재편성이 용이하다는 점, 넷째 하드디스크나 프린터 기타 주변기기의 공유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2세대 컴퓨팅 방식에도 한계는 있다. 즉 파일서버에 단지 자료 보관이나 관리 기능만을 주었을 뿐 아무런 처리 능력을 부여하지 않은 결과 파일서버는 각 워크스테이션에서 발생하는 무질서한 컴퓨팅을 제어 통제할 능력이 없고 전체적인 시스템은 보안성 안전성 면에서 취약성을 보인다. 또한 반드시 중앙에서 통합 처리해야 할 업무조차 각각 나누어서 하게 되므로 아예 불가능해져 버리는 업무도 생긴다. 그리고 파일서버가 통신제어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파일서버와 워크스테이션간, 또는 워크스테이션과 워크스테이션간에 통신 빈도가 높아질 때 이를 교통정리하지 못하므로 통신상의 병목이 초래된다.
제3세대의 컴퓨팅구조의 핵심은 1세대방식의 '중앙집권화'를 배제하면서도 2세대 방식인 '무조건적인 분산화'를 극복한 '분업화,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하드웨어들은 공동적인 정보서비스역할을 담당하는 서버와 구체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사용자측의 클라이언트 기능으로 분화돼 있으며 각각의 클라이언트는 고유한 업무를 중심으로 전문화돼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의 기능도 데이터만을 전문으로 보관 검색 관리하는 골간부분(back-end)과 데이터를 입수 분석 가공하는 전단부분(front-end)으로 양분해 각각 서버측과 클라이언트측에 분산 배치한 후 유기적인 연결하에 실행된다. 결국 제3세대 방식은 하나하나의 연결 장비에 독자성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유기적 연관관계를 잃지 않도록 하드웨어적 성능과 소프트웨어적 기능을 연동시켜 각각의 성능을 극대화하도록 한 '오케스트라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버에는 강력한 하드웨어적 성능을 바탕으로 자료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엔진을 구축해두고 클라이언트에는 서버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다양한 형태로 분석 가공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등의 도구를 배치한 후 하나의 업무도 유기적 연관 속에서 분업을 추구하게 한다. 서버―클라이언트 방식은 문자 숫자 화상 음성 등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면서도 다양하게 처리해낼 수 있는 컴퓨팅 방식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3세대의 방식은 2세대의 이점을 고스란히 누리게 된다. 더구나 서버든 클라이언트든 모두 PC만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특히 클라이언트 측에는 도스나 윈도우와 같은 최종 사용자에게 친숙한 O/S를 설치해둠으로써 쉽고 편리하게 컴퓨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같은 제3세대 방식의 컴퓨팅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무엇보다도 각각의 고립된 PC 사이에 고속의 정보전달을 가능하게 해준 LA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에서도 효율 높아
위에서 언급한 컴퓨팅 환경의 변화는 규모가 매우 큰 대기업이나 정부출연의 연구기관, 대학교 등에 해당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훨씬 많고 10여명 미만으로 구성된 일반 사무실의 수도 매우 많으며 대학의 건물마다 석사 과정이나 그 이상의 연구자들이 (학교 전산망과 관계없이) 각자의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애초부터 단일 사용자 단일 작업의 환경을 고수하면서 PC와 도스 중심의 사용환경에 머물고 있다. 이들의 컴퓨터는 모두 고립돼 있으며 이 컴퓨터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은 디스켓이다. 즉 디스켓을 통해서 서로간의 자료교환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업무의 성격상 컴퓨터간에 반드시 연결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정보의 갱신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이것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경우는 컴퓨터간의 상호연결이 필수적이다. 극장이나 공연장의 티켓을 예매한다고 해보자. 예매가 이루어지는 부분이 몇군데 된다면 현재의 예매 상황을 서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 예매현황에 관한 자료가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하는데 이 자료를 전화 등을 이용해 구두로 전달한다거나 일일이 디스켓으로 복사해 자료를 교환한다면 능률이 떨어질 것이 뻔하다.
또한 장비를 공유하기 위해서도 컴퓨터간의 연결(네트워킹)은 필요하다. 한 사무실에 프린터가 한 대 있는 경우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프린터가 연결된 PC가 사용중이 아닐 때만 인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프린팅을 하기 위해서는 프린터에 연결된 PC사용자가 자신의 프로그램 사용을 중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네트워킹 돼 있다면 자신의 컴퓨터에 프린터가 연결돼 있지 않은 사람도, 프린터에 연결된 PC사용자의 컴퓨터 사용을 중단시키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파일을 앉은 자리에서 상대편 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자원의 공유는 프린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네트워크의 구축으로 팩스모뎀이나 스캐너 등 여러가지 입출력 장치의 공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특히 공동 연구를 한다든지 공동의 업무를 위해서는 파일의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데 컴퓨터의 대수가 2대 이상이 되면 어느 파일이 어느 컴퓨터에 들었는지 몰라서 헤매기 일쑤다. 이런 경우에도 컴퓨터 네트워킹의 필요성은 강하게 제기된다.
결국 대규모의 컴퓨팅에서도 PC를 다양하게 연결해 효율을 높이는 다운사이징을 추구하게 되고, 소규모의 컴퓨팅에서도 고립으로 인한 낭비와 비효율을 탈피해 네트워킹으로 나아가게 되니 위로부터의 흐름과 아래로부터의 흐름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 교차점에 존재하는 것이 각각의 PC를 유기적으로 연결해내는 '근거리 통신망(Local Area Network)' 즉 랜(LAN)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