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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 inter ISEF

꿈나무 과학자가 펼치는 축제의 현장

해마다 5월이면 전세계 미래 과학자들이 모여 축제의 경연장을 벌인다. 모두 1천2백여명의 학생들이 한해 동안 연구하고 준비한 저마다의 작품을 소개하고 열띤 경쟁을 벌이는 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ntel ISEF)가 그것. 올해로 53번째를 맞는 이 대회를 찾아 과학교육의 미래를 점검해봤다.

 

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 inter ISEF 축제의 현장



5월 17일 미국 켄터키국제컨벤션센터 시상식장.

5천여 좌석이 가득찬 가운데 시상식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애써 긴장을 참고 있는 학생도 있고 어제 받은 특별상으로 들떠 있는 학생도 있다. 우리나라 대표로 참여한 박영기군과 안정상군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옆쪽을 둘러보니 2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온 중국팀은 국기를 흔들며 연신 즐거운 표정들이다.

대회 최고상인 인텔 젊은 과학자상이 발표되는 순간 장내는 환호와 박수갈채, 나부끼는 깃발로 소란스러워졌다. 청중은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함께 온 가족과 동료들은 요란한 세러머니로 환희를 만끽했다. 조용한 도시 루이빌을 한껏 달구었던 1주일간 축제의 하이라이트 순간이다.

전세계 40개국에서 참가한 1천2백여명의 학생들은 이번 대회에서 모두 9백여개의 상을 받아 말 그대로 상잔치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이미 지역 예선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로 작품의 우수성은 충분히 검증된 상태. 학생들은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과학이 사실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흥미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대회장에서는 최종진출자들의 연구성과를 전시하는 행사 외에 1주일 동안 다채로운 부가 행사가 이어졌다. 달착륙선을 타고 직접 달에 다녀온 우주비행사의 강연, 198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레더만 박사의 초청강연, 록밴드의 공연 등 이 대회는 참가자들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학생들은 가족과 지도교사, 동료 등과 함께 참석해 시내의 자연사박물관을 구경하기도 하고, 타지에서 참가한 학생들과 기념품을 교환하거나 행사장 내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놀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중국 상하이에서 참가한 유 인동(16)군. 감성인식 프로 그램으로 3등상 포함 모두 4개의 상을 수상했다.



기발한 발상 돋보인 감성인식 프로그램

중국 상하이에서 참가한 유인동(16)군은 음성을 통해 감성을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출품해 주목을 받았다. 목소리로 화자의 감성을 파악해 웃는 얼굴을 보여주거나 슬픈 표정을 연출한다. 이 작품은 음성인식 프로그램에 덧붙인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받아 대회 3등상과 함께 미국인공지능협회상을 비롯한 3개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대회 최우수상인 인텔 젊은 과학자상은 3명을 뽑는데 모두 미국학생들이 차지했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5만달러의 상금과 각종 부상, 그리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는 올해 노벨상 시상식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화학분야에 출품한 미탈(17)군의 작품은‘자가조립하는 DNG-PNA 복합체를 이용한 나노조합’으로 최근 한창 연구가 활발한 나노과학에 속한다. 이 연구는 현재보다 더 작고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을 인정받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불과 17세의 고등학생이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이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하나의 주제를 놓고 1년 정도 연구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사는 학생의 연구가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관련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서 연결해주기도 하고, 실험 기자재의활용, 이론적 검증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은 교사의 도움을 받는다.

심사과정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얼마나 협력했는지도 평가항목에 포함된다.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연구가 수행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회에 처음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은 다산(18)양은 하버드 의과대학 실험실과 여성안과병원센터에서 연구 수행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자유롭게 심화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대학과 병원이 시설과 자료를 개방해주었던 것이다. 미국학생들이 대회 최우수상을 휩쓴 것은 참가자의 80%가 넘는 수적 우세뿐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여건에 힘입은 바도 크다.


한국대표 참가자들의 선전

이 대회는 세계 각국의 지역 예선을 통해 참가자를 선발한다. 지역예선에서는 2명의 최종진출자를 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학생들 중 매년 2명을 선발해 컴퓨터공학 부문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 대표로 금년에 참가한 경남과학고의 박영기(17)군과 대전과학고의 안정상(16)군은 작년 한국정보올림피아드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으로 선발됐다. 박영기군이 출품한‘IDA* 알고리듬의 개선연구’는 기존의 A*알고리듬이 갖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작품이다. 이 연구결과는 컴퓨터의 성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대회 3등상과 미국인공지능학회에서 수여하는 특별상을 받았다.

안정상군이 준비한 작품은‘MP3 음악을 위한 쌍방향 가사 구현’으로 MP3 음악파일을 청취할 때 특정 가사 부분을 선택하면 그곳에서 연주가 시작되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디지털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암호화 기법이 적용됐다. 두 학생을 지도하고 인솔한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배두환 교수는“여기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가 우수한 학생들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이런 행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제휴 공모전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창성과 과학적 근거가 심사요소

심사는 이틀에 걸쳐 모두 3-4차례 이루어진다. 출품작의 규모가 방대한 만큼 분야별로 심사한다. 각 분야별로 50-60명의 심사관이 출품작을 검토하는 예비심사를하고, 이틀째에는 전시부스에 배치된 학생들에게 심사관이 직접 질문하거나 설명을 듣는 본심사가 이루어진다. 대면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각 출품작당 30분 내외. 하지만 학생들은 거의 하루 종일 작품앞에서 대기해야 한다. 본상심사관만 10여명에 특별상 심사관까지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사관은 대면심사가 끝날 때마다 각각 평가표를 작성해 제출하고, 이 평가표를 모아 종합점수를 낸다. 그다음 토의를 거쳐 최종결과를 확정한다. 심사관으로 참여한 인텔재단 대표 티모시 사포나스 박사는“연구주제의독창성, 지도교사와의 협력관계, 그리고 과학적 가설과증명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본상을 심사하는 심사관은 박사학위 소지자이거나 관련 분야에서 6년 이상의 경력을 소지한 사람으로 위촉을 받거나 자원자 중에서 선발한다. 자원자는 주로 기업체 연구원이나 대학의 교수들인데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접수하면 된다.

금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여성 심사관이 선발 됐다.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사의 최명희 이사가 그 주인공. 최 심사관은 대회 공식 후원사로 참여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의 위촉 심사관으로 선발돼 이 행사에 참석했다. 심사가 끝난 후 밤늦은 시간에 만난 최 이사는“뜻밖에 한국 학생의 작품을 직접 평가하게 되었는데 출품작이 다른 학생들의 것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아 내심 기뻤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는 지도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또 하나의 시상식이 열린다. 교사특별상은 연구프로젝트를 준비해서 제출한 교사를 대상으로 대회 개막 전에 모두 5명의 교사를 선발한 후 본대회에서 대상을 가린다. 선발된 교사에게는 제출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비를 지원해준다.

금년에는 필리핀과학고의 조세티 비요가 제출한‘과학적 연구 프로젝트’가 최고상을 수상해 2만5천달러의 연구지원비를 받았다. 비요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국내 연구소의 과학자를 직접 방문하는 현장수업을 통해 학생과 과학자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을 수행해 왔다.
 

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ntel ISEF)



과학기피는 전세계적인 현상

이 대회의 최대 후원사인 인텔의 교육혁신프로그램 담당관 웬디 호킨스는“10여년 전 인텔 ISEF를 처음 접했을 때, 대학원생들이 연구하는 수준의 연구를 16-7세의 학생들이 수행한다는 점에 놀라고, 이들이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에서 보통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라는 점에 또한번 놀랐다”고 회상했다. 또“21세기의 경제환경 변화에 맞게 교육환경도 변화해야한다”며 핵심적인 문제는“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인식된 과학에 대해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학생들의 과학기피 현상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의 자발성에 기초한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인텔의 부사장겸 교육담당 이사 칼린 엘리스는“미국 에서는 과학을 좋아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들을 괴짜(geek)라며 따돌린다. 과학이 따분하기만 하고 멋진(cool)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이런 이유로 과학자가 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어릴때 부터 과학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과학교육이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텔 ISEF도 학생들에게 즐거운 과학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강조된 또하나는‘여성’이라는 주제. 대회 기간 동안 줄곧 열린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에서도 여성의 문제는 공통적으로 다루어졌다. 브라질 상파울 로대의 로젤리 교수는“브라질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사에서 자유로운 것과는 달리 여성에게는 일과 함께 가사라는 두가지의 짐이 주어진다”며 여성의 과학계 진출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이 변화할 필요에 대해 언급했다.

인텔의 교육담당관 자넷 해리슨은“지난 20년간 미국에서도 여성의 과학계 진출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남녀의 교육기회는 동등하다. 여성이라고 부당한 차별을 받지는 않는다”며“과학계에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과학을 기피하는 현상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국가들도 겪고 있는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어릴 때부터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교육의 문제라는 칼린 엘리스의 말에서, 과학자 우대정책을 우선 떠올리는 우리보다 훨씬 멀리 내다보는 사고의 차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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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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