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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류 절반의 식량 벼 게놈지도 완성

전체 곡물 유전체 해독 성큼 앞당겨

“인간게놈프로젝트에 맞먹는 성과 ”. 4월초 미국과 중국의 공동연구팀 및 다국적 농업기업 신젠타사가 두 종류의 벼 게놈을 해독하자 쏟아진 찬사다. 벼 게놈 해독의 의미와 숨가쁘게 진행된 각국의 게놈 해독 경쟁을 알아보자.


2000년 6월 인간 게놈지도의 초안이 발표되자 전세계는 ‘생물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했다. 올해 또다시 생물학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4월 5일자에 벼의 게놈지도 초안이 발표된 것.

당시 발표된 게놈지도는 두가지로,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BGI)와 미국 워싱턴 게놈센터 공동연구팀이 해독한 인디카형 다수확 품종과 스위스의 신젠타사(社)가 만든 자포니카형 니폰바레(日本淸) 품종의 게놈지도다. 두가지 벼는 모두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 종에 속하는 아종(亞種)들이다.

사이언스의 도널드 케네디 편집장은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인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량으로 사용하는 곡물인 쌀의 유전암호를 알아냄으로써 늘어나는 세계수요에 맞춰 생산량 증대와 지속가능한 농업의 발전을 앞당길 것”이라고 평가했다.


곡물 게놈 연구의 로제타스톤

그러나 과학자들은 벼 게놈의 해독이 단지 쌀 생산량 증대만을 위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쌀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먹는 곡물이라지만 이 말은 반대로 밀, 보리, 옥수수 등 다른 절반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다른 곡물을 제쳐두고 벼 게놈을 먼저 해독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벼 게놈이 모든 곡물의 유전자 구조를 밝혀주는 만능열쇠이자 식물이 진화해온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밝혀낸 유용한 유전자로 벼를 포함한 다양한 신종 유전자변형 작물을 개발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다른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도 있다.

식물은 크게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로 나뉜다. 2000년 말 식물 가운데 최초로 게놈지도가 완성된 애기장대는 쌍떡잎식물인데, 배추와 같은 채소들이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인류의 주곡인 쌀, 밀, 옥수수 등은 모두 외떡잎식물이어서 애기장대 게놈정보가 제한적으로만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곡물이 속한 외떡잎 식물의 게놈을 해독해야 한다. 문제는 게놈 해독의 효율성이다. 당초 미국 등 생명공학 선진국에서는 밀이나 옥수수 등 서구에서 많이 소비되는 곡물의 게놈 해독이 먼저 추진됐다. 그러나 이들 곡물은 게놈 크기가 너무 커서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예를 들어 애기장대의 게놈 크기가 1억2천5백만 염기쌍인데 비해 옥수수는 사람과 같은 30억 염기쌍이며 보리는 50억쌍, 밀은 무려 1백60억 염기쌍에 이른다. 그런데 벼는 현재까지 알려진 외떡잎 곡물 중 게놈 크기가 가장 작은 4억3천만 염기쌍에 불과하다. 벼 게놈 해독이 우선적으로 추진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곡물들이 매우 유사한 유전자 배열 패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1년 과학자들은 곡물의 게놈에서 유전자들의 상대적 위치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왼) 게놈지도 초안이 발표된 자포니카  (오) 인디카 벼 품종


가장 작은 벼의 게놈을 원형으로 안쪽에 두고 그 바깥쪽에 옥수수, 보리 순으로 원을 그린 다음 특정 유전자를 중심으로 염색체를 배열해보자. 이때 여러 유전자를 찾아 선으로 그으면 벼에서 옥수수, 보리로 직선이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이를 ‘신테니’(synteny, 동위성)라 부른다. 그래서 벼 게놈을 해독하면 다른 곡물의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벼 게놈을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단서가 된 로제타스톤에 빗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놈 염기서열 해독 결과 벼가 인간보다 유전자가 더 많으며 각각의 유전자는 하나의 단백질을 합성하는 등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졌다. 우선 벼의 게놈은 인간 게놈이 가진 30억 염기쌍에 비해 약 1/7에 불과하지만 유전자수는 인간이 가진 3만-4만개보다 많아 복잡성에서 인간을 능가했다. 한국과 일본 등 온대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자포니카는 4만2천-6만3천개, 중국과 열대지방에서 재배되는 인디카는 4만5천-5만6천개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벼는 애기장대가 가진 유전자의 80-88%를 갖고 있지만 애기장대는 벼 유전자의 절반만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이 2억년 전 동일한 유전자에서 시작했지만 진화를 거치면서 벼는 더욱 다양한 유전자를 획득했음을 뜻한다.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은 만들어야 할 단백질의 수가 늘어나면 기존의 큰 유전자를 잘라 서로 다르게 조합하는 식으로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낸다. 이에 비해 벼가 택한 방법은 진화과정에서 더 많은 기능이 필요해졌을 때 작은 유전자를 복제해 유전자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게놈 해독 결과 벼 게놈의 70%가 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복제는 4천-5천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디카형을 해독한 중국과 미국 연구팀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단백질의 합성에 참여하는 인간과 달리 벼의 유전자는 1개의 단백질만을 합성한다고 결론내렸다.


엎치락뒤치락 게놈 레이스

벼 게놈을 해독하려는 시도는 미국에서도 20여년 전부터 있었지만 서구의 주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해 흐지부지해졌다. 그래서 벼 게놈 해독의 시작은 일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은 1991년 경마협회의 지원을 받아 ‘벼 게놈 연구프로그램’(RGP)을 발족했다. RGP는 1998년 ‘국제 벼 게놈 해독 프로젝트’(IRGSP)로 확대됐다. 우리나라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 1번 염색체의 일부를 해독해냈다.

IRGSP의 당초 목표는 매년 1백만개의 염기서열을 해독, 2008년에 완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첫 도전은 2000년 4월에 다가왔다. 다국적 농업기업인 몬산토가 미국 워싱턴대와 함께 자포니카형 품종의 게놈 85%에 해당하는 양을 해독해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IRGSP 참여국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몬산토의 발표는 이들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몬산토가 자신들의 게놈 해독 정보를 IRGSP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IRGSP의 게놈 해독 속도가 더 빨라졌다.

벼 게놈 해독에 일단 물꼬가 터지자 곳곳에서 성과들이 발표됐다. 스위스에 기반을 둔 다국적 농업기업인 신젠타는 2001년 1월 미국 미리어드 지네틱스와 함께 자포니카의 게놈을 해독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베이징게놈연구센터도 그해 10월 1년 전부터 시작된 인디카 게놈 해독작업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베이징팀은 올 1월 미국 샌디에고에서 개최된 ‘제10차 국제 식물, 동물 및 미생물 게놈 학술대회’에서 벼 게놈 해독이 완료됐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안팎으로 압력을 받게 된 IRGSP가 게놈 해독 완료 이전에 중간단계로 2002년 말까지 초안을 발표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즈음이다.

출발이 늦은 베이징팀과 신젠타가 이토록 빨리 게놈을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게놈 해독에서 효능이 입증된 빠른 방식(샷건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이다(더 자세한 게놈 해독 방식은 과학동아 2001년 3월호 특별기획 두번째 파트 참고).
 

인류의 절반이 먹는 곡물인 벼의 게놈크기는 옥수수의 1/7배, 보리의 1/11배로 다른 곡물에 비 해 가장 작다.



유전정보 공개 둘러싼 논쟁 발생

중국은 인디카형 LYP9라는 품종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부본(父本) 93-11의 게놈을 주로 해독했는데, 이 벼는 중국 벼 품종 개량의 아버지 유안 롱핑 박사가 20년 전 육성한 것이다. LYP9은 다른 품종에 비해 20-30% 수확량이 많아 지금도 중국 남부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품종이다. 중국은 이번에 만든 게놈지도를 토대로 유전자 차원에서 다수확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계획이다. 다국적 농생명공학기업인 신젠타는 비타민A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나 해충에 대한 내성 유전자, 수질 정화에 이용될 수 있는 유전자 등을 찾아내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새로운 기능성 벼 품종을 만들고, 나아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도 이들 유전자를 이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사이언스에 두 연구팀의 벼 게놈 해독 결과가 발표된 뒤 정보의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유발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 연구팀이 국제적 비영리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진뱅크’(GenBank)에 게놈 해독 결과를 공개한 반면, 신젠타는 “경쟁 기업이 우리의 연구성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게놈 해독 정보에 대한 일반 공개를 거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셀레라 지노믹스도 지난해 자사 웹사이트에만 인간 게놈지도를 볼 수 있게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과학자들은 국제적인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가 지난해 셀레라의 논문을 게재한데 이어 신젠타의 논문도 받아들인 것은 과학 정보 공개의 원칙을 스스로 위배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유전자 정보공개 둘러싼 논쟁 발생


이에 대해 신젠타는 사이언스와 협정을 맺어 41개 개발도상국가 연구소에 무상으로 사이언스에 게재된 게놈 해독 결과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반 과학자들도 상업적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만 하면 CD롬 타이틀 형태로 유전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게다가 12-18개월 뒤에는 진뱅크에 게놈 해독 결과를 공개한다는 것.

그러나 과학자들은 CD롬 타이틀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전체 게놈 정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하루 10만개 이상의 염기서열을 볼 때는 매주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자유로운 연구를 막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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