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끓는 것을 보고 생명은 스스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벨기에의 의학자 반 헬몬트(1579-1644)는 밀이나 치즈를 더러운 아마포로 덮어두면 생쥐가 태어난다고 주장해 이러한 자연발생설을 뒷받침했다.
17세기에 들어서자 이러한 자연발생설은 부정되기 시작했다. 1668년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레디(1626-1697)는 썩은 고기를 헝겊으로 싸 파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 구더기가 생겨나지 않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는 구더기가 썩은 고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그 위에 낳은 알에서 깨어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로 자연발생설이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생쥐나 구더기는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지만 미생물들은 자연발생한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보여주는 현미경의 등장 때문이었다. 현미경은 효모를 첨가하지 않았는데도 포도주가 발효되고, 삶아놓은 고기가 썩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자연발생설에 대한 길고 지루한 논쟁은 1861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7)에 의해 끝이 났다. 그는 고니의 목을 닮은 주둥이를 가진 플라스크를 만들어 공기는 통하되 박테리아는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플라스크에 영양액을 넣고 열을 가한 후 식혀 놓았다. 그 결과 고니목 플라스크 안에는 어떤 미생물도 자라지 않았다(파스퇴르가 고니목 플라스크 안에 넣어둔 영양액은 1백여년이 넘도록 썩지 않았다고 함). 과학자들은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자연발생설이 더 이상 고개를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분야에서 자연발생설이 부활했다.
지구를 흔히 ‘우주의 오아시스’라고 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기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천체는 지구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대략 38억년 전. 그렇다면 그 생명의 씨앗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파스퇴르의 실험에 따르면 생물은 생물에서 생겨난다. 결국 태초에 지구에 뿌리를 내린 생명의 씨앗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날아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도 한계를 지닌다. 생명의 씨앗이 우주방사선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고 긴 우주여행을 거쳐 지구로 날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씨앗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푼 사람은 러시아의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오파린(1894-1980)이었다.
1922년 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식물학회에서 오파린은 처음으로 원시지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의 생명탄생 시나리오는 이렇다.
지구의 원시대기는 수소, 메탄, 암모니아와 같은 환원성 기체(수소 또는 수소와 결합한 기체분자)로 충만해 있었다. 이 기체들은 지구 내부에서 분출되는 고온의 니켈, 크롬과 같은 금속들의 촉매작용으로 인해 단순한 유기분자들로 변한 다음, 암모니아와 다시 결합해 점차 복잡한 질소화합물로 변해갔다. 이러한 화합물은 바다에 농축되기 시작했고, 콜로이드 형태의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로 변했다. 코아세르베이트는 막을 가진 액상의 유기물 덩어리로 외부환경과 구별되는 독립된 내부를 지녔다. 조잡하나마 세포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이들이 점차 스스로 분열하고, 외부와 물질을 주고 받는 기능을 갖추면서 원시생명체로 진화했다.
오파린의 생명기원설은 화학 진화(che-mical evolution)를 통해 생명의 탄생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탄생의 순간까지 끌어올렸다. 한편 그의 이론은 사회주의국가의 이념이었던 유물론(唯物論)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오파린의 생명기원설은 1929년 영국 런던대학의 생리학교수인 존 홀데인(1892-1964)에 의해 계승됐고, 오파린은 생명기원설을 담은 불후의 명저 ‘생명의 기원’을 1936년에 출판했다.
오파린의 가설이 실험으로 입증되기까지는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952년 시카고대학의 교수인 해럴드 유리(1893-1981, 1934년 중수소 발견으로 노벨화학상 수상)는 지구의 원시대기가 목성이나 토성의 대기처럼 환원성 대기(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로 이뤄졌다고 가정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로 했다. 그 실험은 대학원생인 스탠리 밀러(1930-)가 맡았다.
밀러는 플라스크 안에 원시바다와 같은 상태를 만들어놓고 이를 끓인 다음, 여기서 발생한 수증기가 수소, 메탄, 암모니아와 같은 환원성 대기와 섞이도록 했다. 그리고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곳에 전기방전을 일으켰다. 그랬더니 오파린의 예언처럼 그곳에서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 밀러의 실험 이후 오파린의 생명기원설은 지구 역사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때 교과서처럼 인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파린의 생명기원설은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오파린이 가정했던 지구의 원시대기가 환원성대기가 아니었다는 반론이다. 지구와 가까운 금성과 화성에 산화성대기인 이산화탄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밀러의 실험장치에 이산화탄소를 넣고 실험해 봤다. 그 결과는 환원성대기만으로 실험했을 때보다 아미노산의 생성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러한 생명기원설의 약점은 진화론을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에게는 좋은 무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