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Ⅳ 컴퓨터에서 펼쳐지는 가상 월드컵

한국 16강 진출 확률 40%

2002 한일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월드컵 첫승뿐 아니라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를 온 국민이 염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정말 16강에 진출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축구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사이버 월드컵을 통해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자.


2002년 6월 4일 부산 월드컵경기장. 우리나라 대표팀이 강팀 폴란드를 맞아 고전하고 있다. 덩치 큰 선수들의 힘에 밀리면서도 골키퍼 이운재의 선방으로 아직 0:0 무승부. 종료 5분을 앞두고 폴란드 선수들의 움직임은 현격히 둔화되기 시작한다. 홈팀을 상대로 무승부라도 만족한다는 얘기일까.

붉은 악마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서 대표팀의 뒷심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한국 수비의 든든한 대들보 홍명보가 볼을 빼내면서 중간공격수 유상철로 이어지는 매끈한 패스. 그리고 유상철의 논스톱 센터링이 폴란드 수비수 옆을 가로지르던 공격수 황선홍에게 그림처럼 연결된다.

골키퍼와 1:1로 맞선 상황에서 터지는 황선홍의 날카로운 슈팅…. 폴란드의 골네트가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우리나라에 대망의 월드컵 첫승을 선사한 천금같은 결승골이 터지는 순간이다.

폴란드를 상대로 이변을 일으킨 대표팀은 상승세를 이어 6월 10일 미국전에 나선다. 결과는 최용수와 이동국이 한골씩을 기록하며 미국에 2:0 완승. 반면 폴란드는 포르투갈에 역부족으로 패배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D조 최강팀 포르투갈 경기와 상관없이 16강 진출이 무조건 확정된다. 월드컵 출전 6번째만에 온 국민의 염원이 이뤄진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 국민이 원하는 월드컵 가상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가 정말 16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을까.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머릿속으로 이번 월드컵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 속이 탈 정도다.

그런데 이를 미리 가늠해볼 만한 도구가 있다. 바로 컴퓨터에서 가상의 대결을 시켜보는 축구 시뮬레이션이다. 사실 앞에서 소개한 가상 시나리오도 축구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중 하나다. 컴퓨터 안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상 월드컵을 통해 이번 16강 진출의 향방을 점쳐보자.
 

최근 게임 돌풍이 불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 다. EA사의 FIFA 게임도 이에 한몫했다.



복잡한 결과 알아내는 비법

시뮬레이션이란 실제 사건 또는 과정을 시험적으로 재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모의실험이라고도 하는데, 실제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결과를 알아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작은 모형을 만들어 분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주로 컴퓨터가 이용된다.

시뮬레이션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전투기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전투기를 모두 완성한 후 성능을 검증하면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된다. 치명적인 결함이라도 있다면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컴퓨터로 가상의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면서 가장 적합한 디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뮬레이션은 시간을 압축하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시뮬레이션을 하는 또다른 이유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쟁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진행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국가의 중대사 중 하나다. 그런데 적과의 승부가 궁금하다고 해서 전쟁을 직접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가상의 전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보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아군의 단점을 파악해 승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실용성 때문에 전쟁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워 게임’(War Game)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다.

전쟁처럼 축구의 경우도 이만저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축구는 한팀당 다양한 기량을 가진 11명의 선수가 뛰어 승부를 내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축구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해석할 분석도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축구 결과를 예측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유용한 도구가 된다.


수염난 정도까지 똑같이 재현

‘FIFA 2002’는 스포츠게임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 FIFA 공식게임업체인 EA(Electronic Arts)가 지난해 선보인 축구게임이다. EA는 지난 1997년 FIFA 축구게임을 처음 선보인 후 꾸준히 업그레이드 작을 발표했는데, FIFA 2002는 최신작답게 뛰어난 그래픽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래픽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선수를 살펴보자. 얼굴형은 물론 머리 스타일에서 수염난 정도까지 외양이 3D 그래픽으로 실제 선수와 똑같이 재현돼 있다. 키와 몸무게 같은 신체치수는 기본이다.

컴퓨터 게임 속의 선수는 경기가 시작되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공격과 수비를 위해 축구공을 드리블하고 정교한 패스를 구사한다. 거친 태클 때문에 경기장에 쓰러져 괴로워하고, 반칙을 지적한 심판에 항의하기도 한다.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골을 넣으면 화려한 골 세레모니를 펼친다.

선수 이외의 측면에서도 사실성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은 실제 존재하는 축구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경기가 진행될 때 TV에서 축구를 보는 것처럼 카메라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중계 또한 자연스럽다. 이와 함께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가가 현장감을 더해준다.

이와 같은 사실성은 게임을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실제 경기를 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매력 때문에 FIFA 2002는 꽤 성공한 게임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FIFA 게임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시뮬레이션 기능 때문이다.

FIFA 게임의 시뮬레이션은 이미 지난 월드컵 때부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한 케이블TV에서 ‘FIFA 98’ 게임으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 한국 팀의 경기를 시뮬레이션했는데, 그 결과는 4:0이 나왔다. 실제 경기의 결과는 5:0이었다. 이외에도 프랑스와 브라질이 결승에서 맞붙어 프랑스가 우승할 것을 알아맞추기도 했다.
 

컴퓨터 속의 선수는 실제 선수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하다.



정확한 예측의 기본은 데이터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것일까. 시뮬레이션의 성패는 얼마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느냐에 달려있다. 시뮬레이션으로 구현되는 세계가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뮬레이션에 입력되는 데이터가 정확해야 한다. 축구 시뮬레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경기를 직접 뛸 선수에 대한 정보다.

FIFA 2002에서 모든 선수의 데이터가 수치 자료로 만들어져 있다. EA는 FIFA와 각종 국제대회에서의 성적, 그리고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자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관리되는 축구선수의 데이터만도 3천8백여명이나 될 정도다.

선수 데이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선수는 체력, 속도, 슈팅, 패스, 지구력, 헤딩, 개인기, 태클의 8가지 항목으로 평가된다(골키퍼의 경우에는 헤딩, 개인기, 태클 등의 항목이 기술, 위치선정, 공격성으로 대체돼 있다). 각 항목은 가장 낮은 1에서 가장 높은 7까지 7등급으로 구성된다. 1백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선수는 속도 항목에서 7등급을 받고, 15초를 넘는 선수는 1등급을 받는 식이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간판스타 홍명보는 체력 4, 속도 4, 슈팅 4, 패스 6, 지구력 4, 헤딩 4, 개인기 4, 태클 4 등급으로 평가돼 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총점은 63점이다. 라이벌인 일본의 나카타 히데요시(각각 6, 4, 6, 6, 5, 4, 5, 5에 총점 73점)와 비교하면 속도와 패스를 제외하고는 능력치가 낮다. 한편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는 모든 항목이 최상의 등급인 7로 총점이 97점이나 돼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돼 있다. 지난 월드컵 최고의 스타인 프랑스의 지네디 지단이 속도, 지구력에서 피구에 뒤쳐져 93점을 받은 것이 이채롭다.

데이터가 준비된 후에는 선수들이 컴퓨터에 마련된 가상의 경기장에서 뛰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일은 컴퓨터 모형이 담당한다. 컴퓨터 모형은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 된다.

FIFA 2002는 미국의 컴퓨터공학과와 수학과에서 5년 동안 개발한 모형을 사용한다. 이 모형은 실제 경기를 돌려본 후 얼마나 정확한지, 어떤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지 꾸준히 보완된 것이다.

컴퓨터 모형은 시뮬레이션이 시작되면 팀의 진형 3-5-2인지 4-4-2인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배치한다. 공격할 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힘싸움을 위주로 하는지, 수비를 중심으로 하다가 역습을 노리는지와 같은 전술에 알맞게 선수들의 움직임은 조절된다. 수비 역시 압박인지, 방어 위주인지, 아니면 중간정도인지 각 팀마다의 전술에 따라 움직인다.

경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수들의 부상이나 피로한 정도 또한 컴퓨터 모형에 반영된다. 지쳐서 체력이 떨어진 선수는 다른 선수로 교체된다. 심지어 심판의 판정 강도에 따른 결과까지도 시뮬레이션으로 알 수 있다.

축구 시뮬레이션은 단순히 미리 경기를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걸프 전쟁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팀의 약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전술을 시험하는 무대로 축구 시뮬레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임 속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대표팀 모습이 보인다.



폴란드와 박빙, 미국엔 한수 위

FIFA 2002 시뮬레이션으로 사이버 한일 월드컵을 미리 살펴보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히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함께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D조다.

우선 각 팀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우리 대표팀 선수의 평균점수는 62.45점으로, 62.18점인 미국보다는 약간 높다. 그러나 71.18점인 폴란드나 75.36인 포르투갈에 비해서는 상당히 뒤처지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첫경기인 폴란드의 대결을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아주 흥미로웠다. 우리나라가 폴란드와의 대결에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동아일보에서 시뮬레이션한 결과도 6승8무6패로 대등했다. 최근 축구전문 인터넷사이트인 피파 코리아가 데이터를 보완해 시뮬레이션한 결과도 4승1무5패로 우리나라가 약간 밀리는 정도다.

폴란드는 수비수가 좌우에서 한번에 올려주는 패스가 날카로웠다. 공격진은 올리사데베뿐 아니라 크리찰로비츠가 위력적인 모습으로 득점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공격은 측면에서 활발히 이뤄졌는데, 골키퍼와 맞대결에서 골이 성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등장했다. 한편 초반에 실점하는 경우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가 선취득점을 올리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번째 미국과의 경기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객관적으로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한수 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와 피파 코리아의 결과 역시 각각 8승6무6패, 6승1무3패로 우세를 지켰다.

우리나라 수비수는 미국의 공격을 가볍게 막는 경우가 많았고, 공격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폴란드전과는 달리 골 장악력에서도 우세를 지켰고 패스 또한 매끄러웠다. 그러나 슈팅에 비해서는 골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승부에 상당한 열세를 보였다. 동아일보와 피파 코리아 결과도 각각 5승6무9패, 1승4무5패에 그쳤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됐을 때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수비가 만만치는 않아 골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객관적인 전력의 뚜렷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부는 후반부에 주로 결정됐다. 그리고 폴란드에 패배했을 때에 비해서 오히려 점수차도 크지 않았다. 열광적인 응원 등을 통해 홈경기라는 이점이 작용하고, 포르투갈이 피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기 스타일 때문으로 풀이된다.

FIFA 2002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을 1승의 재물로 삼고, 폴란드와 비기고, 포르투갈에 진다고 해석된다. 우리나라가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두면, 폴란드와 동률이 돼 16강 진출이 골득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피파 코리아에서 시뮬레이션한 10번의 가상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4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확률로 따지면 40%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셈이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에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G조 1위 이탈리아와 만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피파 코리아에서 이탈리아전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는 2승8패로 일방적이었다. 컴퓨터는 우리나라가 8강에 진출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결승에는 프랑스와 함께 이탈리아나 독일 중 한팀이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결승에서 맞붙을 경우 6승4패로 근소하게나마 이탈리아가 우세를 지켰다. 한편 프랑스가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어렵게 제압한 독일과 맞붙을 경우는 5승5패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사이버의 가상 월드컵은 홈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단지 가상의 결과이지, 현실이 그대로 된다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축구의 경우에서도 똑같은 선수가 똑같은 전략으로 똑같은 팀을 상대로 경기를 뛰어도 결과는 똑같지 않다. 그래서 흔히 축구공은 둥글다고 표현한다. 전문가들 역시 축구 시뮬레이션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전해도 70% 이상 적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결과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축구는 더 큰 매력을 갖는다. 더욱이 축구는 야구, 농구와 같은 경기와 달리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스포츠다. 한편의 영화보다도 더 감동적일 이번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200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소프트웨어공학
  • 게임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