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생명체 논란 끊임없는 붉은 별 화성

최근 표면영상에서 엽록소 징후 발견

최근 영국 BBC방송은 1997년 화성 착륙선 패스파인더가 찍은 착륙지점 부근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엽록소로 보이는 스펙트럼 징후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추후 정밀한 조사가 있어야겠지만 화성은 19세기 이래 생명체의 존재와 관련해 끊임없이 주목받아온 행성이다.

 

마리너 4호가 찍은 최초의 화성 근접사진. 화성은 기대와 는 달리 크레이터로 덮인 달과 같은 죽음의 행성이었다.


화성은 영화와 소설 속의 배경으로 등장할 정도로 지구의 외딴 장소보다 친근하다. 189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와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 영국의 SF소설가 허버트 웰즈, 미국의 영화감독 오손 웰즈 등에 의해 화성은 외계 생명체가 사는 이웃 행성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는가’라는 주제는 늘 태양계 논쟁의 1순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처럼 답하기 어려운 내용도 없었다. 화성에 대한 우주탐사 역사를 살펴보면 어려운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1960년 초까지만 해도 화성 생명체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 우세했다. 자전축의 기울기와 하루의 길이가 지구와 비슷하고 계절에 따른 변화의 리듬을 가진 화성은 지상의 망원경으로 볼 때 명백히 지구의 ‘자매’행성이었기 때문이다. 화성인은 아니더라도 식물 정도는 살만한 행성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1965년 미국의 마리너 4호가 최초로 조우하며 찍은 화성 표면에 대한 근접 사진은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이 흐릿한 영상은 우주탐사의 놀라운 성과인 동시에 화성의 환상을 깨는 것이었다. 화성은 지구의 자매라기보다 온통 크레이터로 가득한 달의 형제였다. 마리너 4호가 전파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대기는 액체상태의 물이 존재하기 어려운 압력을 보였고 해로운 자외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할 만한 오존층 또한 매우 희박했다. 생명체가 살기에 화성은 너무 춥고 가혹한 환경이었다. 1969년 미국의 마리너 6·7호가 근접하는 동안 촬영된 20-30여장의 사진 속에서도 화성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몇장의 사진만으로 화성 전체를 판단한다는 일은 금물. 1971년 옛소련은 최초로 착륙선을, 미국은 최초로 궤도 탐사선을 화성에 급파했다. 옛소련의 마스 3호는 착륙에 성공했지만 20여초만에 통신이 두절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미국의 마리너 9호는 무사히 화성 궤도에 진입해 6천8백여장에 달하는 다양한 모습의 표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이들 사진은 다시 한번 과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더 많은 크레이터나 발견될 것 같았던 화성표면에서 거대한 황사바람이 잠잠해지자 화산들과 3천km에 달하는 협곡, 물이 흘러 파인 듯한 계곡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화성은 죽은 행성이 아니라 다양한 지질변화의 역사를 간직한 행성이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오랜 과거에 원시적인 생명체가 살았으며, 어쩌면 이들 생명체가 지금도 가혹한 환경에 맞게 진화해 생존해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따라서 직접 착륙해 생명체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SF소설의 이야기 같은 화성생명체는 다시 화제의 중심이 됐다. 한편 새롭게 발견된 지형에는 우리의 이름도 붙여졌는데, 크레이터에는 진주, 나주, 장성이, 협곡에는 강 이름인 낙동이 채택됐다.
 

패스파인더가 착륙한 지점인 아 레스 밸리스 지역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상 조사에서 엽록소로 보이는 스펙트럼 징 후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가 더 필요하다.



바이킹의 최초 생명조사는 실패

생명조사 기능을 가진 최초의 탐사선은 미국의 바이킹 1·2호. 지구의 사막에서라도 생명체의 반응을 감지할 만큼 민감한 생명실험장비가 부착됐고 실패에 대비해 2대가 준비됐다. 1호의 착륙예정일은 1976년 7월 4일로 미국 독립 2백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바이킹 궤도선의 고해상도 카메라로 미리 선택됐던 장소를 다시 살펴보니 바이킹 착륙선이 도저히 착륙할 만한 곳이 못됐다. 현지에서 직접 착륙장소를 고른 바이킹 1호는 7월 20일에야 크리스 평원에 착륙할 수 있었다. 모두의 기대 속에 실시된 생명체 조사에서 탐지장비들은 단순한 화학반응만을 포착했을 뿐 생화학 반응은 감지하지 못함으로써 어떤 유기물질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킹 궤도선은 사람얼굴을 한 ‘인면암’, ‘피라미드’ 등 재미난 지형도 찍었다. .이 사진들은 호사가들에 의해 고대 화성인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제기되기도 했다.

바이킹계획을 주도한 칼 세이건 박사는 비교적 고정된 지구의 자전축과 달리 화성의 자전축이 목성과 토성의 인력에 의해 15-35°까지 변화해 왔음을 지적하며, 극부근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울기 변화에 따른 태양빛의 변화는 극부근에 드라이아이스로 덮인 극관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이것이 화성 전체의 기후변화를 좌우했다는 말이다. 추가적인 탐사가 요구됐지만 화성으로 가는 항로는 오랫동안 끊어졌다.

그후 화성의 생명체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지구에서부터 시작됐다. 화성이 고향인 흥미로운 운석들이 지상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12년만인 1988년 옛소련으로부터 다시 재개된 화성탐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칼 세이건이 제안한 바 있는 극지 탐사선인 화성 극지 착륙선(MPL)도 착륙 후 실종됐다. 하지만 1997년에는 이동형 탐사체인 소저너를 실은 패스파인더의 착륙이 일반인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착륙과정이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필자가 해설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우주탐사과정을 실황으로 중계한 일은 아폴로의 달 착륙에 대한 중계 이후 두번째였다.

소저너를 비롯한 화성 전역 서베이어(MGS), 화성 오디세이 등 최근의 탐사선들이 과거 화성생명체의 존재가 능성에 대한 환경적 간접 증거들을 수집하는데 어느 정도의 개가를 이룬 것 같다. 하지만 화석과 같은 직접 증거나 꿈틀거리는 현존 생명체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 직접적인 조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샘플 리턴’계획. 화성으로부터 생생한 샘플을 우리 손에 직접 쥐게 되는 날, 아마도 황사바람을 화성인이 만든 운하로 착각하면서 시작된 붉은 별의 생명체에 대한 논란은 해피엔딩으로 종지부를 찍게 될지 모른다.

200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기획실장

🎓️ 진로 추천

  • 천문학
  • 지구과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