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빛낼 핵심유망기술로 초전도 응용기술이 손꼽히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초전도 응용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 분야의 프론티어가 되기 위한 국내 연구진의 열정이 차세대 초전도응용기술 개발사업단에서 솟구치고 있다.
“초전도는 20세기 구리 시대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신기술입니다. 우리나라의 전력 분야에 초전도기술이 도입되면 국내전력공급시스템의 효율을 약 3.7% 향상시킬 수 있죠. 2010년경에는 여의도 63빌딩 2백30여개의 1년치에 해당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세대 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단 류강식 단장의 말이다. 초전도 응용기술이 발휘하는 에너지 절감량도 놀랍지만, 단지 에너지 절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절감량에 해당하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상당량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초전도 응용기술은 환경까지 생각한 미래형 기술이다.
15년 후 전력기기 15% 교체
1911년 네델란드의 과학자 온네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시점으로부터 9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저항 제로가 갖는 신비로운 힘, 그리고 활용도 면에서도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초전도 응용기술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발견 당시의 엄청난 기대감에 비하면 상용화와 산업화 속도가 극히 더딘 것도 사실이다. 저온에서만 그 특성을 발휘하는 초전도체의 성질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고온 초전도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초전도체의 산업화를 끌어당기기 위한 노력에 가속을 붙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창원에 있는 전기연구원의 차세대 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단이 그 몫을 담당하고 있다.
차세대 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은 과학기술부가 추진중인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세부사업 중 하나다. 지난 2001년 6월 설립돼 7월 사업협정계약을 체결한 사업단에는 2001년에 1백50억원(정부 1백5억, 민간 45억), 향후 10년 간 총 1천7백10억원(정부 1천2백25억, 민간 4백85억)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될 예정인 거대 프로젝트다.
사업단의 최종 목표는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인 2011년까지 상용화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용량의 전기에너지를 수송하고 이용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케이블, 변압기, 한류기, 전동기 등 4대 초전도 전력기기를 상용화해 2011년 이후 4-5년 이내에 기존 전력기기의 15% 정도를 초전도 전력기기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차세대 정보통신사회 구현을 위한 초고속 초전도디지털소자를 개발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구리선에 비해 수백배 이상의 전류를 손실 없이 흘릴 수 있는 고온초전도선을 사용하면 크기, 중량, 그리고 손실을 5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초전도 전력기기를 개발할 수 있으며, 초전도의 임계전류 특성을 이용하면 반도체에 비해 수십배 이상의 처리속도를 갖는 초전도디지털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류단장의 설명이다.
“전력 분야는 우리만의 강점”
초전도 기술은 전력 에너지는 물론, 교통, 의료, 환경, 정보통신, 그리고 생명공학까지 수많은 분야에 걸쳐 응용되고 있다. 특히 교통 분야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나 의료 분야의 MRI는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초전도의 대표적인 응용 사례다. 사업단에서 이 분야를 제치고 4대 초전도 전력기기와 초전도디지털소자 개발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류강식 단장은 여러가지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기존 연구사업과 중복된 부분이 있는지, 선진국의 시장진입시기와 유사하게 5-10년 사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지, 에너지와 환경 등 국가적 당면 문제 해결에 기여도가 얼마나 클지 등을 고려해 가장 최적의 사업 범위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류단장은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 국내의 한정된 자원으로는 모든 분야를 개발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서 “전력 에너지 분야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이며, 향후 기술개발 노력 여하에 따라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남보다 뒤져있는 기술은 응용 단계에서 그 원천 기술을 가져와 활용하고, 남보다 앞설 수 있는 분야에 처음 단계부터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지난 1988년 한국전기연구원에 몸담은 이래 줄곧 초전도응용분야를 연구해온 류단장은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산학연 협동으로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단장은 이 사업의 또다른 이름을 다파스(DAPAS, Dream of Advanced Power system by Applied Superconductivity technology program)라고 소개했다. 초전도응용기술 프로그램을 통해 한단계 발전한 전력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과 꿈같은 미래 사회를 구현한다는 의미를 포함한 약자다.
일체형 팀워크 위해 오픈 미팅
다파스 프로그램의 세부 과제는 초전도 케이블분야 2개, 변압기분야 2개, 한류기분야 3개, 모터분야 1개, 디지털소자분야 1개, 공통기술분야 5개, 창의분야 3개 등 전체 17개 분야로 나눠져 있으며, 기업화가 가능한 세부과제들에 대해서는 관련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산학연 협동연구체제가 갖춰져 있다. 1차년도에는 15개 참여기업을 포함한 전체 57개 기관, 5백40여명의 인력이 참여하고 있으며 예산의 10% 범위 내에서 국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4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다파스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만의 독자기술 개발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핵심 소재부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산학연에 분산돼 연구가 진행되더라도 기술 간, 과제 간 실시간 정보 교환이 필요하다. 류단장은 이를 위해 연구계획서 수립 단계부터 연구진도, 성과, 그리고 성과의 활용을 위한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에 걸친 연구 활동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연구개발경영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지난해 11월부터 운영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과제 책임자는 자신의 연구 일정과 진도를 스스로 관리함으로써 연구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고, 연구수행과정과 연구비 집행 등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어 대형 국책연구개발사업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면서 자부심을 나타냈다.
기술의 산업화까지 이뤄내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 협동이 반드시 필요한 법. 각기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과의 정보교환과 친화를 위해 전기연구원에서는 어떤 ‘비법’을 쓰고 있는지 물었다.
“57개 기관이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는 것, 그 단합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개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서로의 연구 과제뿐만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일체형 팀워크를 만들어내기 위해 전체가 모여 계획과 정보를 교환하는 오픈 미팅을 자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주어 말하는 류단장의 진지한 표정에 우리나라 초전도 응용기술의 미래가 담겨 있었다
초전도선 만드는 방법
전기연구원의 연구동에는 일반인들이 초전도의 기본적인 개념을 체험할 수 있는 소형 샘플장비부터 사업단이 목표로 삼는 초전도 전력기기를 개발하기 위한 갖가지 대형 장비가 가득 메워져 있다.
초전도체를 전기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초전도선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금속계 저온초전도선의 제조 방법을 살펴보자. 저온초전도선은 금속의 길이를 연속적으로 늘려나가는 소성 가공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처음 지름이 2백mm가 넘는 빌렛(공정을 가하기 전의 둥근 봉 형태)에 압력과 열을 가하는 등 다양한 가공 단계를 거치면 최종적으로는 지름 1mm에 해당하는 초전도선이 만들어진다. 이 선의 길이는 처음 길이의 4만배까지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초전도체 금속 자체만으로는 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압력과 열을 가하면 끊어지기 쉽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구리와 같이 가공이 잘되는 금속으로 외피를 씌운다. 구리캔에 니오브-티탄(Nb-Ti) 합금 봉재를 삽입한 후 마개를 해서 빌렛을 만들고, 이 빌렛에 압력을 가하면서 구리와 니오브-티탄 금속을 화학적으로 견고하게 결합시킨다.
이 후 적당한 지름의 단심 봉재를 연필 모양으로 만들고, 이들을 다시 벌집 모양으로 직경이 2백mm가 넘는 대형 구리캔에 규칙적으로 채워 넣는다. 이런 다심 초전도선은 그 용도에 따라 채워 넣는 연필 모양의 단심선 수가 달라진다. 그 수가 많게는 수천개를 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다시 압력과 열을 가하면서 늘리면 지름은 계속 줄어들고 길이는 계속 늘어난다. 언뜻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가공이나 선재 내부에 결함이 있거나 늘리는 속도, 윤활유 상태, 빌렛 내부의 선재 배치 상태 등 어떤 조건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초전도선은 가공 도중 끊어진다. 선이 끊어질 경우 구리선처럼 쉽게 이을 수 없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
또하나의 문제는 내부의 니오브-티탄심(필라멘트)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 50mm 정도의 지름에서 출발했다면 최종 선재의 필라멘트 지름은 1-1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이하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5천-5만배 이상으로 지름이 줄어드는 엄청난 가공을 받아 필라멘트선이 끊어질 수 있다. 머리카락 굵기가 70μm 정도이므로 머리카락의 1/7-1/70 정도 이하로 극세선 가공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다심 초전도선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구리 금속 안에 수많은 필라멘트가 규칙적으로 촘촘하게 박혀있다. 그리고 그러한 필라멘트들이 최종 가공 단계에서 변동 자장 하에서 초전도선에 유도되는 교류손실을 줄이기 위해 트위스팅 작업을 거치면서 수mm로 서로 꼬이게 된다.
가공이 더욱 어려운 고온초전도선
소성 가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세라믹 고온초전도체는 어떻게 선으로 만들어질까. 세라믹은 잘 깨지고, 기본적으로 잡아당겨도 금속처럼 늘어나는 성질이 없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은 튜브를 사용해 그 내부에 초전도체의 전구체 분말을 채워 넣고 가공과 열처리를 거쳐 비스무트(Bi)계 초전도선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방법 역시 금속계 저온초전도선을 만들 때처럼 압력과 열을 가하면서 늘리는 공정을 통해 지름은 줄이고 길이는 늘리는 방법이다.
은 튜브 내부에 넣는 분말입자는 크기가 수μm 정도로 가늘고 입도 분포가 좁은 것이 가공에 유리하며, 조성이 일정할수록 특성이 균일한 선재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분말에 불순물이 없어야 하고 탄소원자의 농도가 낮아야 한다. 분말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반응하면 탄소원자가 남아 나중에 열처리할 때 결정 조성을 불균일하게 만듦으로써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금속계 초전도선은 10km 이상으로 가공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고온초전도선의 경우 현재 2km 정도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만큼 가공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고온초전도선은 여러 성분의 분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필라멘트 내부에 공극과 불순물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금속계 초전도선에 비해 높은 밀도의 전류를 흘릴 수 없는 약점이 있다. 물론 가격도 니오브-티탄선에 비해 1백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최근 고온 초전도선을 실용화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성능과 가격 면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전기기기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리선은 초전도선으로 대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