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기술부 장관은 이공계 기피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청소년 과학교육 문제부터 과학기술인들의 처우 개선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공계 기피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의 오해와 자의적인 해석이 지나치게 난무한 것 같더군요.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제대로 알아야 이공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과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채영복 과학기술부 장관(65)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이공계의 현실을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 이공계 기피를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라고 개탄하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1월 과학기술부 장관에 임명된 채장관은 독일 뮌헨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5년부터 국내외 화학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에 젊음을 바친 그야말로 ‘과학기술계의 원로’다. 그 역시 과학기술인의 한자리를 차지했었기에 이번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말투에서 절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진짜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한국의 과학기술이 주저앉게 된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 없는 국가의 미래는 상상할 수 없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학교에서부터 과학교육을 부흥시키고 과학기술인이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연구실 문호 개방
이공계 기피가 사회적인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과학기술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이목까지 끌고 있지만, 뚜렷한 원인 분석이나 해결책은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채 장관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먼저 교차지원 문제를 꺼냈다. 교차지원이 이공계 기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것은 아니지만, 자연계열 학생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 점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최근 내려진 교차지원의 제한 소식이 다행스럽다는 것.
다음으로 그가 강조한 부분은 과학교육 문제다. 그는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면서 “실험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연구소나 대학교의 연구실을 청소년들에게 개방해 이공계에서 어떤 연구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알리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와 대학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수학은 중요한 과목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과학은 등한시하려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하며,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바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실 있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지적한 부분은 현재 가장 민감하게 여겨지는 과학기술자의 처우 개선 문제다. 그는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높이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차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 들린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학기술인의 처우 개선 등 불만에 대해선 어떻게 해결할 계획이냐는 질문엔 “출연 연구소의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과학기술 유공자에 대해 공로연금제를 도입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다각도의 제도적 지원을 계획하고 있으며, 연구원들이 최상의 사기를 갖고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2부터 진일보한 교육 받아야
이번 이공계 문제와 관련돼 주목받고 있는 또하나의 이슈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등학생이 이공계를 지망할 때 내년부터는 문·이과 선택이 아니라 대학교에서 원하는 특정 과학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 고1생부터 적용되는 이 제도에선 문·이과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학생이 지원하는 학교의 자연대나 공대에서 요구하는 수업을 선택해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전보다 진로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발생한다. 채장관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방향은 문·이과 구분을 폐지함으로써 선택 중심의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고1까지 공통과목을 이수하고 고2부터 전문 분야로 나가는 준비를 할 경우 현재보다 진일보한 교육을 받게 된다”면서 “이를 위해 선생님들과 연계해 학생들의 적성과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진로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선생님과 학생들이 2박3일의 일정으로 캠프를 떠나 실험과 탐구활동 등 다양한 과정을 함께 겪음으로써 학생은 스스로의 적성을 발견하고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개방적이고도 적극적인 평가를 할 수 있으며, 이동 실험실나 공개 실험실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열린 과학교육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 때문에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학생들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물었다.
“위기는 바로 기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회로 삼고 자신의 적성을 살려 이공계에 진학한다면 사회에 발을 딛을 10년 후쯤엔 꿈을 실현하고 명예를 얻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이공계 기피라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듯 조만간 탄탄하고 더욱 굳어진 과학기술 기반을 조성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