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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2000 앞에 선 핸드폰의 운명

진화인가 몰락인가

무선 통신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IMT2000의 상용화가 준비되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핸드폰의 미래를 점치면서 퇴출의 비운을 맞은 시티폰을 떠올린다.핸드폰은 과연 새로운 차원의 이동통신 IMT2000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그 운명의 좌표계를 읽어보자.

휴대폰(이동전화) 가입자 2천3백만의 시대. 이동전화는 삐삐와 시티폰을 제치고 단숨에 현대인들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휴대폰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이동전화는 세상 곳곳에서 이미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IMT2000이라는 21세기 복병이 등장해 그 미래를 매우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미래형 이동통신 IMT2000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누구와도 자유롭게 통화가 가능한 세계 이동전화(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의 특성을 갖추는 것은 물론, 무선인터넷과 데이터통신을 무기로 컴퓨터의 영역에도 도전하고 있다.

2차선 국도와 8차선 고속도로

이동통신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이동전화가 2차선 국도였다면 IMT2000은 8차선 고속도로"라며 "무선통신을 통한 뉴 패러다임의 도래"를 강조한다.인류가 전화를 발명하면서 기존의 공간개념을 무너뜨렸듯이 IMT2000의 등장은 절대거리와 사람들의 가치관에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변화의 키워드는 물론 인터넷이다. 이동전화는 인터넷을 담으며 전혀 다른 발상과 개념의 정보도구로 변화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은행업무를 보는 것은 물론 쇼핑과 휴식과 엔터테인먼트가 모두 이동전화로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듯 이동전화와 데이터통신은 한데 합해지면서 21세기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고 있다.

은행과 쇼핑, 무역, 만남이 모두 사람들의 손바닥에서 이루어진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이 지난해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증권 및 각종 생활정보서비스들은 이동전화를 사이버 객장으로 변신시켰고, 무선 온라인 게임서비스는 전화를 ‘움직이는 오락기’로도 기능하게 했다. 이동전화 속에 사이버 세상이 있고 움직이는 미래가 있는 것이다.

시티폰의 쓸쓸한 말로

이동전화의 이 같은 진화를 바라보며 제기되는 문제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개인휴대통신(PCS)이나 셀룰러 휴대전화(핸드폰)의 생존여부다. 지난 97년 PCS가 등장하면서 시작된 5개 이동전화사업자들의 경쟁구도는 이전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시티폰이나 무선호출의 운명에 일대 획을 그었다. 말 그대로 잘나가던 두 통신서비스는 이동전화의 등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곧 힘을 잃었다.

시티폰은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서비스 퇴출의 비극을 겪었으며, 무선호출사업자들은 기존 사업에 한계를 느끼며 신규 사업 발굴에 여념이 없다. 두 서비스가 이처럼 쓸쓸한 말로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없이 통신환경의 진화가 원인이었다. 정보통신서비스의 양보 없는 진화 앞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은 뚜렷했고, 삐삐와 시티폰은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1등과 강자만이 존재한다는 컴퓨터 정보통신업계의 기본 룰이 여기서도 명백히 적용됐던 것이다.

78명에서 2천3백만으로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역사는 1960년에 시작된다. 1958년 특수목적용 무선통신 시설이 처음 도입된 지 2년만에 국내에는 단방향 수동 교환방식 차량이동전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당시 이동전화는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정부 기관만을 대상으로 한 시도에 불과했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동전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이듬해인 1961년 8월. 그러나 이 또한 통화품질이 불량했고 1965년까지 고작 78명의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이동전화가 그럴듯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 비록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한정됐지만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통화하는 기계식 차량전화가 1973년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1975년에는 울릉도와 육지간 극초단파 무선전화가 개통됐다. 1976년에는 반전자식 차량전화가, 1977년에는 금산 제2위성통신지구국(인도양지구)이 개통돼 상주인구 50인 이상인 섬마을에도 무선전화시설이 들어갔다.

1970년대의 도전을 토대로 이동전화에 대중화의 발판이 마련된 것은 1980년대 무선호출과 북미식 아날로그 이동전화가 상용화되면서부터다. 1984년 4월 한국이동통신이 시작한 차량이동전화는 오늘날 2천3백만 이동전화시대의 시발점이었고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마침내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서비스가 시작됐다.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디지털 이동전화 상용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성기에 진입했다.

1997년 10월 상용서비스에 들어간 개인휴대통신(PCS)은 이동전화 시장의 또다른 견인차였다. 5사 경쟁체제로 돌입하면서 국내 이동전화시장은 황금기를 맞게 됐고, 이동전화가입자수는 순식간에 2천3백만을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40여년 이동전화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서비스의 진화 앞에서 이전 서비스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이동전화를 얘기하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전 서비스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며 전문가들 이외에 그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IMT2000은 지금 PCS와 핸드폰에게 일대 위협인 것은 분명하다. IMT2000이 전성기를 맞으며 다른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동전화도 분명 유명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선통신은 고립지역에서 필수적인 통신수단이다.


최소 10년은 공존?

IMT2000이 등장하면 지금의 이동전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IMT2000이 이동전화의 진화된 형태인가 아닌가를 두고 정보통신사업자간에 아직도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의문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IMT2000이 이동전화의 진화된 형태라면 지금의 휴대폰은 모습은 바뀌어도 당연히 살아남는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라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IMT2000 상용화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과 한정된 시장에 대한 우려이다. 사업자들은 IMT2000 사업권을 획득코자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 성공과 사업성에 의문점을 표시한다. 투자비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그만큼 선진화된 서비스를 대중이 진정 원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굳이 화상전화를 쓰지 않고도, 또한 전화 속에 사이버 세상이 없어도 ‘왕따’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용화 시점은 더욱 예측이 어려운 부분이다. 막대한 시설비와 투자규모를 생각해볼 때 IMT2000이 언제나 사람들의 생활을 지금의 휴대폰처럼 장악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값이 비싼 단말기도 문제다. 광대역 데이터망과 화상을 담아내는 고급 전화가 모든 이들에게 필요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첨단 전화기가 지금 이동전화처럼 값싸게 보급된다면 모를까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단말기를 아주 비싸게 살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은 이런 점에서 IMT2000은 철저히 기존 서비스와 일부 시설을 공유하며 연장선상에서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동전화 없이 IMT2000은 있을 수 없으며, 지금의 휴대폰은 존재 동기이자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지난해말 한국을 방문한 국제통신연맹(ITU) 마이클 캘린더 IMT-2000 표준화협회 의장은 “IMT2000이 보급돼도 최소 10년간은 지금 휴대폰과 공존할 것이며 시장도 이원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IMT2000이 지닌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불특정한 미래 및 시장성으로 지금 휴대폰의 운명도 지극히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IMT2000의 본질적 속성으로 꼽히는 세계 단일 통화의 구현도 결국 주파수 환경이 다른 지역에서도 연결 통화가 가능토록 하는 듀얼모드 단말기의 개발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인 현안이자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전세계 국가들의 표준통일이 현재로서도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여러 표준과 코드를 통합 포용할 수 있는 단말기의 개발이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작고 가볍게'를 외쳐온 단마라기 제조업자들은 1백g이 채 안 되는 핸드폰을 내놓았다.


무선 인터넷의 위력

지금 이동전화의 운명이 낙관적이라고 볼 때 한 가지 남는 의문이 있다. 이동전화업체들이 왜 그토록 부가서비스에 몰입해 있으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IMT2000과 굳이 경쟁할 이유가 없다는 관측과는 너무도 달라 보인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IMT2000이 지금 정보통신서비스의 진화된 형태라고 생각해보면 사업자들의 시도는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꿈의 통신망을 만들기 위해 이동전화를 매개로 다양한 도전과 노력이 이뤄지는 것이며 그 안에 IMT2000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자들의 이 같은 도전 앞에서 한 때 정보통신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컴퓨터는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동전화는 다각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컴퓨터를 위협하고 있다. 길을 가면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짐은 물론 첨단 정보서비스를 덧붙여 양보 없는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이동전화의 강한 도전 앞에서 긴장하는 것은 비단 컴퓨터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세계적 소프트웨어(SW)업체들도 이 시장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세계 컴퓨터로 들어가 안방과 사무실을 점령했던 이들 소프트웨어기업들은 이동전화의 야심찬 도전에 주목하며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이동전화에 장착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국경을 넘어 세계 컴퓨터 정보통신 시장은 ‘손안의 통신시장’을 겨냥해 양보 없는 한판승을 진행 중이다. 무선인터넷은 이제 인터넷시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이 된 것이다.


화상통신이 가능한 미래형 핸드폰들


미래 생활을 읽어야

물론 한가지 과제는 남는다. 전반적인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변화와 대세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순간에 휴대폰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될 수도 있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은 이동전화가 바꿔놓은 생활풍속도의 변화를 보며 미래 무선통신망을 설계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동전화는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었지만 2천3백만 가입자를 확보한 지금 생활 곳곳에 자리잡으며 새로운 생활습관과 풍속도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생활 변화에 맞춰 무선망을 다시 설계해야 하며 단말기의 모습도 달리 디자인해야 한다는 게 사업자들의 기본 전략이다. 무선인터넷과 결합하며 웹비즈니스와 전자상거래 시장까지 위협하는 이동전화의 변신으로 우리 생활은 또 한번 바뀔 것이다. 이동전화의 변화와 가능성도 바로 그 안에 있다. 우리 생활에 얼마나 잘 맞게 설계되느냐가 바로 경쟁의 열쇠일 것이다.

200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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