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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실이 더 많은 이웃 달

4가지 탄생가설 아직 결론 안나

맨눈으로 표면을 볼 수 있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달은 오랜 전부터 도전의 대상이었다. 1959년 옛소련의 루나 1호부터 1998년 미국의 루나 프로스펙터까지 모두 63회나 탐사선이 달을 향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모르는 점이 더 많다는데….

 

월면 보행자 12명 중 유일한 지질학자인 잭 슈미트. 미국은 과학적 조사보다 어떤 상황에도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 위기극복 능력을 가진 우주비행사를 달로 보 냈다.
 


달에는 우주탐사 역사상 가장 다양한 탐사선들이 방문했다. 루나 1호, 파이어니어 4호 등의 1회 방문형, 레인저 6호, 루나 5호 등의 충돌형, 루나 10호, 루나 오비터 1호 등의 궤도 선회형, 루나 9호, 서베이어 1호 등의 연착륙형, 루나 16호 같은 샘플 귀환형, 존드 6호 같은 생명 실험형, 루나 20호 같은 차량형. 여기에는 과학적 목적을 위한 방문도 있었고 정치적인 선전을 위한 방문도 있었다. 탐사선이 옮긴 것에는 전자장비뿐 아니라 인간도 있었다. 유인비행은 총 9회며 1회(아폴로 13호)가 실패했다.

1960년 초 냉전의 구도 속에서 급속하게 진행된 달탐사는 유인비행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은 달의 지형에 관한 사전정보를 수집하고 적절한 착륙장소를 찾는데 대부분의 로봇 탐사선을 동원했다. 옛소련 또한 미국과 경쟁하기 위한 탐사가 대부분이었다. 옛소련의 경우 유인비행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무인의 달 토양 귀환선(루나 16·20·24호)을 파견해 소량인 3백g의 달 흙을 지구로 가져왔다.
 

유인 달탐사계획이 실패로 끝난 옛소련은 무인의 샘플 귀환선 루나 16호 등을 발사해 달의 흙을 지구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루나 프로스펙터가 달에 부딪친 이유

미국의 유인 달탐험계획인 아폴로계획은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초기에 많은 과학장비들이 우주선에 실리지 못했다. 우주비행사 또한 1965년 지질학적 안목으로 달을 탐사할 수 있는 과학자 그룹의 후보우주비행사를 선발해 훈련시켜왔음에도 NASA는 위기시 좀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측되는, 군조종사 경력을 가진 우주비행사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12명의 달 보행자 중 단 1명만이 지질학자였다. 이 한명 또한 간신히 마지막 아폴로탐사선에 탑승했다. 그리고 착륙지역은 과학적 중요성보다 안전을 위해 적도 부근의 평평한 지역에 국한됐다. 마지막 아폴로계획의 착륙후보지로는 지질학적으로 흥미로운 티코 크레이터 근방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제외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2백50억달러의 예산과 40만명의 인력, 2만여개의 회사가 참여해 이룩한 아폴로계획을 통해 3백82kg의 귀중한 달 암석이 지구로 운반됐고 3만3천여장의 우수한 사진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구인이 떠난 뒤에도 달에는 무인월면탐지계 4대가 남겨져 지속적으로 달의 환경을 모니터했으며 1977년 예산 부족으로 지구에서 신호를 끊기 전까지 작동했다.

하지만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유인 달탐험의 업적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달 음모론자들에 의해 하나의 사기극(Moon Hoax)으로까지 치부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류가 외계로부터 수집한 최초의 표본인 달의 암석들은 지금도 분석되며 달의 많은 비밀을 밝혀준다. 지구의 것과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이들 월석은 무려 33-44억년 전의 것들로 마치 과거로부터 타임머신에 의해 현재로 옮겨진 것 같았다. 이들은 우리가 몰랐던 자신의 탄생 설화를 들려주었다. 달의 생성에는 기존에 3가지 기원설(동반 생성설, 분리설, 포획설)이 있었지만 달 암석의 분석결과 충돌에 의한 달 생성과정이 새롭게 제시됐다. 과거에 화성 크기 만한 천체가 지구와 충돌했으며 이때 퉁겨져 나간 지구 물질과 천체 물질이 합쳐져 달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다수설일 뿐이다. 달의 암석을 분석하면 속 시원히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 달의 기원은 월석을 손아귀에 쥔채 직접 만져보고 부셔본 과학자들도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후 달은 우주탐사의 항목에서 방치된채 내버려져 있었다. 루나 24호의 마지막 방문 이후 18년만인 1994년, 소형탐사선 ‘클레멘타인’이 극궤도에 안착해 지난 시절 거대탐사선이 보지 못했던 극지역에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남극 근처의 크레이터 속 깊은 곳에 만들어진 영구동토지역에서 얼음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 1998년에 발사된 ‘루나 프로스펙터’는 북극쪽에서도 얼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정보를 획득했다. NASA는 좀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루나 프로스펙터를 1999년 7월 31일 달의 남극에 있는 얼음지역에 충돌시켰다. 충돌로부터 우주로 흩어지는 수증기를 지구의 관측장비로 잡아내 물의 존재를 단숨에 밝힌다는 것.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허블우주망원경까지 총동원해 루나 프로스펙터 최후의 순간을 관측했으나, 과학자들은 아무 것도 건질 수 없었다. 목표지점에서 빗나갔거나 충돌에너지가 부족해 얼음 흙에서 물이 분리되지 못했다는 등의 설명이 제기됐지만, 물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편 루나 프로스펙터에는 태양계의 크레이터 연구에 관한 기초를 확립한 ‘유진 슈메이커’ 박사의 유해 일부가 실렸는데, 그는 죽어서 13번째의 방문자가 돼 달의 크레이터 속에서 영면하게 됐다.

숱한 방문에도 아직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은 달은 이제 새로운 방문자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 1990년에 12kg짜리 초소형위성 ‘하고로모’를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사상 세번째로 달 궤도에 진입시켰던 일본은 앞으로 굴착형 탐사선 ‘루나-A’와 착륙형 탐사선 ‘세레네 1호’를 발사할 예정이다. 중국은 무인뿐 아니라 유인 달착륙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 자력으로 위성발사에 성공해 기술발전이 계속 이뤄진다면 언젠가 달을 향해 도전할 것이다. 이때 탐사선의 달 도착일을 팔월 한가위로 하면 어떨까. 모든 국민이 보름달을 쳐다보는 가운데 우리의 탐사선이 달에 도착해 첫신호를 지구로 보내온다면…. 달은 우리에게도 도전할 만한 목표이며 아직도 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미지의 천체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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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아마추어 로켓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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