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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헨리 폴즈의 지문에 대한 첫 보고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27



영국에서 발행되는 저명한 주간과학저널인 ‘네이처’는 1869년 11월 4일 첫 호가 나왔다. 네이처가 출간될 당시 비슷한 과학저널이 여럿 나와 있었는데 다들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간됐다. 결국 네이처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세계 최고 권위의 종합 과학저널로 자리 잡았다.

이번 호에는 132년 전인 1880년 네이처에 실린 짧은 논문을 소개한다. 이 논문 자체는 생명과학 분야에 속한다고 볼 수 없겠지만 결국은 훗날 생명과학 측면의 연구가 뒤따르게 되므로 어찌 됐든 원조인 셈이다. 바로 지문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이다.

손가락에 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오랜 세월 그 많은 과학자 가운데 누구도 지문을 주목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다. 1880년 네이처에 논문을 보낸 사람은 헨리 폴즈(Henry Faulds)라는 일본에서 일하던 영국인 의료 선교사였다. 폴즈는 논문에서 지문이 범죄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낯선 극동의 나라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선견지명을 갖게 됐을까.

다윈도 외면한 지문 연구

폴즈는 1843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 베이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857년 경제불황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몰락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했다. 학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집안 형편이 나아지자 글래스고대에 다녔고 1968년 대학을 졸업한 뒤 앤더슨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사가 된 그는 1871년 스코틀랜드 교회의 의료 선교사가 돼 인도에서 일했고 1873년에는 일본으로 향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던 어느 날 그는 일본을 방문한 에드워드 모스라는 미국 고고학자의 강의를 듣고 친구가 됐다. 동물학자이기도 한 모스는 갑각류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 왔는데 우연히 바닷가에서 조개무지(패총)를 발견하고 고고학자의 본능이 발동해 발굴에 뛰어들었다.

폴즈도 틈틈이 현장을 방문해 발굴을 도왔는데 하루는 조개무지에서 나온 토기 조각을 살펴보다 표면에 미세한 선들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폴즈는 그 선들이 다름 아닌 지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흙이 말랑말랑할 때 새겨졌을 것이다. 그는 문득 그릇에 남은 지문을 보면 그 그릇을 만든 도공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폴즈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지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정말 사람들의 지문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지문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손가락 끝에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렇게 지문에 빠져있을 때 병원에서 사소한 도난사건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소독용 알코올을 조금씩 빼내갔던 것.아마도 물을 타 술로 마셨을 거라고 짐작한 폴즈는 잔으로 쓰인 실험용 비커를 면밀히 조사해 지문을 발견했고 자신이 갖고 있던 주변 사람들의 지문 카드에서 동일한 지문을 찾아냈다. 이 지문의 주인공은 그가 가르치는 학생이었고 폴즈의 추궁에 학생은 ‘범행’을 자백했다.

폴즈는 지문이 범인을 잡는데 유용할 뿐더러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는 지문이 정말 사람마다 다른지, 한 사람의 지문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칼이나 사포로 손가락의 지문을 없앤 뒤 새로 돋아나는 지문의 융선 자리를 확인하자 정말 이전의 융선 자리와 똑같았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확신한 폴즈는 1880년 저명한 과학자 찰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시 71세의 고령에 몸이 아팠던 다윈은 자신이 도움을 주기가 어려워 대신 사촌인 만능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에게 편지를 전했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골턴은 폴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폴즈는 8개월 뒤 직접 네이처에 논문을 보냈다.


한 달 사이 지문 논문 두 편 실려

논문에서는 아직 ‘지문(fingerprint)’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고 ‘손가락 주름(finger-furrows)’이라고 기술돼 있다. 폴즈는 관찰한 지문 패턴의 다양한 모습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런 패턴이 여러 측면에서 쓸모가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 그는 “피 묻은 지문이나 도자기와 유리잔 등에 지문이 있으면, 그것으로 범인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오늘날 범죄수사에서 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선견지명이 있는 코멘트다.

물론 폴즈의 예측이 다 옳았던 건 아니다. 그는 논문에서 “일본 사람들의 지문을 많이 확보했고 현재 다른 나라 사람들 것도 모으고 있는데 인종 분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훗날 지문 패턴은 인종과는 상관이 없다는게 밝혀졌다.

폴즈의 논문이 나가고 한 달 뒤 네이처에는 윌리엄 허셜이라는 사람이 지문을 서명처럼 쓰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다. 인도(당시 영국령)의 치안관인 윌리엄 허셜은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 1858년부터 인도 사람들이 계약을 할 때 지문을 찍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서명 대신 지문을 쓰게 된 건 인도인들이 서명을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발뺌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허셜로서는 ‘지문의 발견’에 대한 우선권을 폴즈에게 뺏긴 셈이라 좀 억울했을 것이다.

지문이 진짜 범인을 찾는데 쓰인 첫 사례는 1892년 아르헨티나의 경찰 후안 부세티치가 문에 묻은 지문을 채취해 두 아들을 살해한 어머니를 검거한 일이다. 런던 경찰국이 지문 체계를 채택한 것은 1901년부터다. 그렇다면 손가락 끝에는 왜 지문이 있을까.

폴즈는 논문에서 “원숭이의 손가락 끝을 보고 사람과 매우 비슷한 걸 바로 알았다”고 썼다. 그는 사람만이 지문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이미 확인했던 것이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인류학자 니나 야블론스키 교수는 지난 2006년 펴낸 책 ‘Skin(피부)’에서 손가락, 발가락 끝의 지문은 영장류가 나무를 잘 타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피부표면의 미세한 굴곡이 나무를 잡을 때 미끄러지는 걸 방지한다는 것. 흥미롭게도 신세계원숭이는 꼬리에서 나무를 감는 쪽의 피부 표면에 지문 같은 패턴이 있다.

한편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 2009년 3월 13일자에 실린 논문은 지문의 기능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지문은 미끄럼 방지 기능 보다는 촉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한 구조라는 것. 연구자들은 말단의 신경 역할을 하는 촉각센서를 만든 뒤 하나는 표면이 매끄러운 재질로 감싸고 하나는 손가락 끝 피부처럼 미세한 요철이 있는 재질로 감쌌다. 그리고 유리 표면을 훑게 했을 때 전달되는 신호를 비교하자 요철이 있는 재질일 때 감도가 최대 100배까지 민감해짐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특히 섬세한 질감을 느낄 때 지문이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손끝이 물체의 표면을 지나갈 때 진피에 있는 신경의 말단인 파시니 소체가 진동의 형태로 감지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문이 신호증폭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문 형성 과정 아직 잘 몰라

지난 2007년 스위스의 한 여성은 미국에 입국하려다 제지당했다. 손가락에 지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무지문증(adermatoglyphia)’이었던 것. 이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스위스 바젤의대의 피부학자 피터 이틴 교수는 이 여성의 가계를 조사해봤다. 그 결과 친척 가운데 무지문증인 사람이 9명이나 됐다. 이들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문이 없었다.

무지문증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틴 교수는 이 증상에 ‘입국지연병(immigration delay disease)’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이런 사람들은 지문 날인을 요구하는 나라에 들어갈 때 애를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의 엘리 스프레셔 교수팀과 함께 ‘지문 유전자’ 사냥에 들어갔다.





마침내 무지문증은 SMARCAD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해 2011년 ‘미국인간유전학저널’(8월호)에 발표했다. SMARCAD1 유전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사된다. 즉, 긴 타입이 있고 짧은 타입이 있다. 흥미롭게도 짧은 타입은 피부에서만 발현된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전사체가 비정상적으로 가공되고 그 양도 적다. 이 유전자의 기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가 피부 세포가 접히는 배열을 결정하는데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지문이 동일한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지문이 확고한 증거로 채택되는 이유다.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은 서로 다르다. 한편 지문 패턴에는 유전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따라서 지문 패턴 형성에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듯하다. 지문은 임신 24주쯤이면 거의 완성돼 그 패턴이 평생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1880년 지문의 존재와 활용 가능성을 처음 발표한 헨리 폴즈는 그러나 평생 허셜과 우선권 논쟁을 벌였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1930년 86세로 사망했다. 1938년 영국의 판사 조지 윌턴은 폴즈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지문의 역사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윌턴을 통해 폴즈를 재발견했고 오랫동안 버려졌던 그의 무덤에는 아래 문구가 새겨진 새 묘비가 세워졌다.

‘지문 인식학의 선구자로서 헨리 폴즈의 업적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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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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