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잡지‘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은 지난해 과학기술 10개 분야의 최고 이슈 50가지를 선정했다. 이 중 물리학에서 6가지가 선정됐는데, 그 첫머리를 장식한 세부분야가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였다.
생소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중요하게 받아들 여지는 스핀트로닉스는 과연 어떤 분야일까. 국내 최고의 스핀트로닉스 연구실을 찾아가 직접 알아보았다. KAIST 물리학과 신성철 교수가 이끄는 스핀정보물질연구단이 바로 그곳.
신교수는“스핀트로닉스는 전자의 자기적 방향을 뜻하는 스핀(spin)과 전자기술(electronics)을 합성한 신조어로 1996년에 등장했다”고 설명하면서 얼마나 신생 첨단 분야인지를 소개했다. 하지만 이 말로는 스핀트로닉스 분야에 대한 감을 잡기 어렵다. 그만큼 쉽지 않은 연구분야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드디스크 저장용량 20배 높인다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현재의 각종 전자 장치는 전하량을 가진(전기를 띤) 전자의 움직임에 의존한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전자가 가진 또다른 고유 성질인 스핀을 이용하려고 연구중이다.
스핀은 기본 입자가 가지는 고유 성질 중 하나로, 일종의 입자 회전으로 간주하면 된다. 그런데 특별히 전자의 스핀이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자기성질을 나타내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전자의 스핀은 업(up), 다운(down) 2방향이 있다. 팽이를 위에서 봤을 때 팽이가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 등 2방향으로 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질을 구성하는 내부 전자들의 스핀이 모두 한방향으로 정렬될 때 그 물질은 자기 성질을 갖는다. 전자는 가장 작은 자석인 셈이다. 따라서 스핀트로닉스는 초미세 영역의 자기성질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실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이미 컴퓨터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 장치에서 이용돼 왔다. 철이나 산화크롬으로 된 작은 자기영역에 자기방향으로 표현되는 0과1의 디지털 정보가 기록·저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저장장치에서 정보를 읽기 위해서는 그 위로 헤드가 지나가면서 자기장의 방향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한다. 이 변화는 헤드의 전기저항 값에 영향을 준다. 이 변화값으로 0과 1을 읽어낸다. 이같은방식을자기저항(magnetoresistan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988년 프랑스와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수nm(나노미터=${10}^{-9}$m)의 얇은 막으로 된 다층 자기물질에서 일반저장장치보다 2백배강력한 자기저항(GMR,giant magnetoresistance)의 변화를 발견한다. 이현상은 미세한 전자의 스핀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스핀트로닉스의 시작이다.
과학자들은 GMR을 이용하면 지금보다 저장용량이 20배 이상인 하드디스크를 만들 수 있다고 우선 생각했다. 1920년대 전자가 스핀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최초로 과학자들은 스핀의 응용을 꿈꾸게 된 것이다. 1997년 IBM은 GMR 헤드 개발에 나섰다.이 분야는 연간 약 10억달러(약 1조원)의 시장규모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의 스핀 성질은 메모리 분야에서 좀더 관심을 받고 있으며, 대다수 반도체기업이 이에 대해 연구중이다. 전자의 스핀 성질을 이용한 메모리를 MRAM(magnetic random access memory)이라고 하는데, 이 메모리는 현재 개발된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격이다. DRAM의 고집적,플래시메모리의 비휘발성(전원이 나가도 정보가 그대로 남아있는 성질), SRAM의 빠른 처리속도를 말이다. MRAM에 대한 잠재적인 시장가치는 매년 1천억달러 (1백조원)일 것이라고 한다.
해외 평가자로부터 월드 클래스 인정받아
미래의 거대 시장을 장악할 스핀트로닉스는 현재 높은 인기를 얻고있는 나노과학에 속한다. 나노영역에서 나타내는 자기성질이 연구되기 때문이다. 수nm로 얇은 막을 만드는 초미세 박막기술이 동원되고,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나노크기의 새로운 자성체를 개발중이다. 또한 나노자성체의 자기적 특성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초고감도 장비가 개발되고 있다.
실제로 신교수 연구단은 지난해 나노미터급 자성측 정장치인‘광자기현미경자력계’(MOMM)를세계최초로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나노수준의 새로운 자기 성질을 발견해서 그 결과를 물리학 최고 학술지 중 하나인‘피지컬 리뷰 레터’에 게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교수는 지금까지 1백90여편 논문을 국내외 유명학술지에 게재했고 17개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60여회 국내외 초청강연을 했다. 특히 나노자성 박막의 실시간 자구 관찰 및 동력학 연구분야의 세계적 선도연구로 인해 자성분야 여러 국제학술회의에서 6회 초청강연을 했다. 이같은 자성체 분야의 국제적 수준의 연구활동으로 그는‘이달의 과학기술자상’(1999.11)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교수가 이끄는 스핀정보물질연구단은 과학기술부가 1998년부터 기초과학의 진흥을 위해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의 하나다. 지난 9월 3년 간 이뤄낸 연구성과를 평가받는 자리에서 국내외 전문가로 이뤄진 평가단으로부터 물리분야의 가장 우수한 연구단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또한 연구단은 외국평가자 들로부터 연구업적이‘월드 클래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응당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2단계 과제로 선정됐다.
현재 세계최고 수준의 이 연구실에는 3명의 박사급 연구원과 10명의 석박사과정학생 등 14명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