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국제공항 자리에 1백m높이로 우뚝 솟은 관제탑.총22층의 8각형 구조물로,관제실면적이 1백80㎡(약54평)에 이른다.높이 64m,관제실면적 24평인 김포공항의 관제탐에 비해 훨씬 큰 규모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관제탐에서 근무하다보면 거센 바람이 불 때 흔들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관제탑이 바람에 쓰러질리야 없겠지만 근무요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안감과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수시로 비행기의 이착륙을 통제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좋지 않은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 관제탑에는 초속60m의 강풍에도 관제사들이 전혀 진동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내풍설계가 실현돼 있다.또 웬만한 강진에도 견디는 안전장치가 관제탑의 19층을 중심으로 설치돼 있다.
야구 글러브 살짝 빼는 것과 같은 원리
여기에는 강풍 등에 의한 관제탑의 진동을 컴퓨터 시스템으로 자동 감지해 같은 크기의 힘을 역방향으로 제공함으로써 진동을 감쇄시키는 원리가 활용됐다.
풍속과 관제탑의 진동을 감지하는 센서,진동수준이 기준치보다 커지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진단장치,그리고 이에 대처해 지진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설비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져 근무요원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공항 관제탑처럼 높은 건물을 비롯해 액화천연가스(LNG)저장탱크,원자력발전소 등 지진에 민감한 구조물은 모두 내진설계를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최근에는 어느 한계값을 넘어서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지진에 저항하는 지능형 구조물(smart structure)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바로 한국과학기술원 토목공학과 구조동역학연구실이 몰두하고 있는 연구분야다.
구조구조동역학연구실의 임무는 한마디로 '구조물이 안전하게 버틸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는일'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지진에 대항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일이다.그런데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경우 모든 구조물을 지진에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필수다.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뜸하다.이런 상황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해 구조물마다 튼튼한 내진장치를 구현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낭비스러운 면이 있다.
만일 지진에 정면으로 맞서 버티는 것보다 살짝 '부드럽게' 피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보다 저렴한 비용을 들이면서 위험한 고비를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연구실을 이끄는 윤정방교수는"한국의 경우 5백년에 1회 정도 오는 큰 지진에 대해 구조물이 무사히 버티면 된다"며"인천공항 관제탑처럼 땅의 흔들림과 반대 방향으로 구조물이 움직이면 지진의 피해를 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면진'이란 말이 여기서 등장한다.
구조동역학연구실은 7년 전부터 국내에서 LNG저장구조에 면진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지름73m,높이47m의 거대 구조물 아래에 고무나 금속을 여러층으로 둘러써 충격을 완화시키는 구조다.마치 야구경기에서 글러브를 뒤로 약간 빼며 공을 받으면 공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터넷에서 공동 프로젝트 수행
최근 구조동역학연구실은 단순히 충격을 완화시키는 초창기의 면진장치 수준을 뛰어넘어 지진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이를 피하는 지능형 구조물을 구현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또 국내 여수대,창원대,(주)현대 등의 여러 팀과 공동으로 교량의 기둥에 면진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공동실험을 수행하고 있다.교량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의 종합적인 동적 상태를 파악하려면 각팀이 기둥 하나씩을 맡아 그 움직임을 측정한 후 데이터를 합쳐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동역학연구실은 지난 17년간 박사 16명,석사 49명을 배출했으며,현재 박사과정생 9명,석사과정생 6명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구조동역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도출한다는게 목표다.이를 입증하듯 벌써 10년째 매년 일본 교토대학,대만 국립대학,싱가풀 국립대학과 공동으로 토목공학과 국제세미나를 개최하며 정보를 교류하고 있고,미국토목학회,국제구조신뢰성학회,동아시아구조공학회 등 각종 국제학술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높이 솟은 빌딩이 계속 늘어나는 요즘 구조동역학연구실의 연구성과로 건물의 완벽한 안전성이 보장되는 날이 조만간 다가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