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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 vs 디 아더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막히 반전

살아있을 때 풀지 못한 한을 안고 나타난 말콤 박사.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그레이스 여사. 영화‘식스 센스’와‘디 아더스’는 이런 두 주인공을 통해 엄청난 반전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포작이다.
 

식스 센스vs 디 아더스



경고 : 아래의 글에는 노골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음 중 극장에서 가장 매너가 없는 사람을 고르시오.
1. 영화 상영시간 내내 꼭 껴안고 서로를 더듬으며 영화를 보는 커플.
2. 앉은 키나 머리의 크기가 타인보다 지나치게 큰 사람.
3. 팔걸이를 혼자 독차지하고 가끔씩 팔꿈치로 압박을 가하는 사람.
4. 영화의 다음 장면을 말해주는 친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4번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떠벌려 다른 사람들의 쾌적한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사람을 ‘스포일러’(spoiler)라 부른다. 스포일러에 의한 피해는 후반부에 영화의 진실이 밝혀지는 반전 영화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어떤 대담한 스포일러는 버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유즈얼 서스펙트’의 영화표를 사려고 줄을 서있던 관객들을 향해 “범인은 절름발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아마도 스포일러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일 것이다.

스포일러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공간은 인터넷 게시판이다. 영화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글을 썼다면 스포일러 경고를 해주는 것이 예의다. 그러나 많은 수의 게시물들은 그런 경고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어떤 게시물은 다른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속한 동호회의 게시판에 ‘디 아더스’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극장에서 보기로 마음먹었던 영화라 자연스럽게 제목을 클릭했는데 게시판에 적혀 있던 내용은 ‘모두 유령입니다’라는 단 일곱 글자였다. 그 일곱 글자의 피해는 막심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게시물을 쓴 사람을 원망하게 됐다. 런던에서는 디 아더스가 개봉됐을 때 극장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거지들이 몰려와서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을 협박했다고 한다. 동전을 주지 않으면 영화의 결말 부분을 말해버리겠다고….

얼마 전 ‘디 아더스’를 개봉한 종로의 한 극장에서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영화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러한 캠페인 또는 ‘영화의 결말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는 선전 역시 스포일러 행위다.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관객들은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어떤 관객들은 반전을 눈치챘다고 우쭐대느라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며, 어떤 관객들은 반전이 되는 트릭들을 발견하지 못하면 바보가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필사적으로 감독의 트릭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스포일러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보려고 마음먹은 영화가 있다면 영화의 평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지 않는다. 둘째, 영화를 미리 본 동료나 친구에게 영화가 재미있었냐고 묻지 않는다. 셋째, 남보다 먼저 영화를 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인공
정신과 의사 vs 가톨릭 신자


▶▶▶ ‘식스 센스’의 주인공인 말콤 크로우 박사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다. 만약 여러분이 정신과 의사에게 매일 밤 귀신을 본다고 얘길 한다면? 의사는 당신을 심각한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고 당신의 뇌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처방해줄 것이다.

한편 ‘디 아더스’의 주인공인 그레이스 여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 신자에게 유령에 관한 얘기를 한다면 그들은 악마의 시험으로 일축해버릴 것이다. 이 두 영화는 의학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유령 같은 존재를 믿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두 영화에서 극적 반전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와일드 씽’이나 ‘수어사이드 킹’처럼 감독이 숨겨왔던 트릭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진실은 이거였어. 너희들 다 속았지?’라는 식의 인위적인 반전을 이끌어낸다면 관객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엉터리 반전과 달리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의 반전은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던 진실에 대한 주인공의 자각과 함께 이뤄진다.

식스 센스의 반전을 위한 두번째 장치는 ‘죽은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본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디 아더스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레이스 여사는 자신이 한계를 지은 환경과 자신의 가족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고정 관념이 적은 아이들은 거대한 저택 안에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The others)을 발견한다.
 

식스 센스의 말콤 크로우 박사는 아동 전문 정신과 의사다. 그는 어린 콜 시어가 느끼 는 두려움을 대화로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관객이 느끼는 공포는 연민
고립감 vs 미련


▶▶▶ 기존의 공포 영화와 달리 식스 센스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공포는 결코 다른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어린 꼬마인 콜 시어가 느끼는 공포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는 고립감과 외로움이다.

‘암흑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나이다.’
콜 시어가 성당에서 외우는 라틴어 기도문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는 어린 콜 시어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다.

영화 속에서 뒤통수가 날아간 끔찍한 모습의 유령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 역겨운 모습에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대신 어린 콜 시어의 표정을 살핀다. 그리고 콜 시어가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그 어떤 유령보다 소름끼치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에 신의 가호가 언제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함께 하기를….

디 아더스의 공포는 거대한 저택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시작된다. 저택은 이상하게도 항상 짙은 안개에 쌓여 있고, 다른 집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안은 어두침침한 긴 복도가 이어지며 방 안에는 하얀 천에 가려진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 차있다. 문을 열기 전에 다른 문을 닫아야 한다. 잠겨진 방문 건너편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저택의 곳곳에서 ‘우리’(우리는 관객들과 영화 속의 죽은 자들이다) 외에 ‘다른 존재감’이 느껴진다. 관객들은 이미 죽은 자의 시점에 익숙해졌다.

디 아더스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장르에 속하는 영화다. 기존의 유령 영화들이 산 사람의 시점으로 죽은 자들을 바라보는데 반해, 죽은 자의 시점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본다는 뒤바뀐 시점이 영화의 흥미와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던 디 아더스의 공포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한없는 슬픔으로 바뀐다.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생에 얼마나 큰 미련을 갖고 있기에 허상뿐인 삶에 사로잡혀 가야할 곳으로 떠나지 못한 것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상념에 젖어든다.
 

거대 저택 안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 고 다른 존재감이 느껴진다.


죽은 자들의 세계
원귀 vs 지박령


▶▶▶ 살아있을 때 풀지 못한 한이 남아있는 사람은 귀신이 된다고 하며, 이를 ‘원귀’라고 부른다. 식스 센스의 말콤 박사가 이런 경우다. 말콤 박사는 10년 전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인 빈센트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빈센트는 말콤 박사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다. 말콤 박사가 가지고 있는 한은 자신을 쏜 환자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연민과 자책감이다. 그런 말콤 박사에게 어린 시절의 빈센트를 닮은 콜 시어는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다른 유령들은 어린 아이인 콜의 두려움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얘기를 털어놓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말콤 박사는 노련한 정신과 의사답게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빠져있는 어린 콜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콜은 다짜고짜 덤벼드는 다른 유령과 달리 여우에게 접근하는 어린 왕자처럼 조금씩 다가오는 말콤 박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원기를 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콤 박사가 콜에게 알려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다. 콜은 유령과 대화를 함으로써 공포와 외로움을 물리칠 수 있었고, 동시에 말콤 박사의 한까지 풀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죽여달라고 부탁을 하는 원귀의 청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신의 한을 풀어줄 수 없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귀신의 한을 달래주는 ‘천도제’라는 제사를 지냈다.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사극 ‘태조 왕건’에서 억울하게 죽은 금강 태자의 넋을 달래는 천도제의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디 아더스에 등장하는 유령은 ‘지박령’이라 불리는 것이다. 지박령은 자신의 죽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이유 등으로 특정한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죽기 직전의 행동을 반복하는 붙박이 유령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지박령을 ‘폴터가이스트’(야단법석을 피우는 유령)라 부른다. 유령의 집에서 탁자를 흔들거나 문을 두드리는 행동을 하는 유령이 이에 속한다. 영화에서 죽은 자의 입장으로 바뀐 시점을 다시 한번 뒤집어 대저택으로 이사온 빅터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레이스 여사의 행동이 전형적인 지박령(폴터가이스트)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지박령을 쫓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을 행했다. 이때 무당은 귀신에게 자신이 죽은 자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주고 죽은 자들의 세계로 떠날 것을 명령한다.
 

식스 센스의 말콤 박사는 살아있을 때 풀지 못한 한이 남아있는 귀신인‘원귀’다. 어 린 콜 시어는 원귀인 말콤 박사와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공포를 물리치고 박사의 한 까지 풀 수 있었다.



유령과의 의사소통 방법
직접대화 vs 자동필기


▶▶▶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에는 모든 유령 현상이 반종교적인 악마의 장난으로 여겨졌다. 신비스러운 현상은 성직자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유령에 대해 관심만 보여도 마녀 재판에 회부돼 화형을 당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근대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유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하는 학문이 생겨났는데 이를 심령주의라 한다. 심령주의는 무너진 교회의 권위를 대신해 새로운 정신 세계를 찾으려던 대중들의 욕구에 부응해 붐을 이뤘다. 초감각적 지각(ESP, extrasensory perception)이나 투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도 당시의 심령주의 연구에서 만들어졌다.

심령주의 학자들은 유령과 대화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개발했다. 영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자판이라든가 영매가 유령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 자동필기, 폭넓게는 몇해 전 학생들에게 유행한 분신사바도 심령주의에서 개발한 유령과의 대화 방법에 속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과 산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개인을 ‘영매’라 부르는데, 디 아더스에 등장하는 영매는 자동필기라는 근대 심령주의의 방법으로 유령과 대화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그레이스 여사는 적당한 순간에 테이블을 흔들어 영매의 권위를 세워준다.

반면 식스 센스의 콜 시어는 특별한 준비나 의식 없이 언제나 귀신들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타고난 영매다. 급기야 콜 시어는 자신의 선생님에게 ‘말 더듬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자신의 육체에 유령을 불어넣는 능력도 보여준다. 영매로 따지면 1백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매를 ‘무당’이라 부른다. 무당은 선척적으로 타고나는 ‘강신무’와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세습무’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무당들은 서양의 영매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강신술을 갖고 있다. 서양의 영매는 주변을 떠도는 귀신의 말을 전해주는 정도지만, 우리의 무당은 귀신보다 수준 높은 신령과 계약을 맺어 잡신을 쫓거나 국가의 중대사를 예언하기도 한다.

심령주의는 겉으로는 과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오류들을 갖고 있다. 유령의 사진을 찍거나 목소리를 녹음하는 등의 심령주의 실험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조건에서 실행됐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실험의 결과물과 영매술의 상당수는 실험자와 영매에 의해 조작됐다. 이런 사이비 학문은 시대의 가치관이 바뀌는 과정에서 항상 나타난다. 과거에 유행했던 피라미드 열풍도 과학이라는 용어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사기가 대부분이었다.
 

영매는 자동필기라는 근대 심령주의의 방법으로 대화한다.



사람과 귀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새로 부임한 원님이 여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눈 앞에는 피투성이의 여인이 울고 있었다. 젊은 원님은 여인에게 이전의 원님들을 해친 까닭을 물으며 큰 소리로 호통쳤다. 그러자 여인이 말하길 원님들은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쓰러진 것이라 했다. 여인은 울면서 말했다. 능욕을 당하고 죽은 자신의 억울한 한을 풀어달라고….

우리나라의 전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어째서 원님들은 귀신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일까. 만약에 죽은 자의 영혼인 귀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죽은 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가 죽은 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 두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시점을 바꿔 엉뚱한 질문을 한번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불의의 사고로 귀신이 됐다면 육체의 상태가 변했다는 사실 하나로 인해 우리는 더이상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을 증오하게 될 것인가. 자신이 귀신이 됐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 질문은 엉뚱한 남자에게 성 전환술을 시술한 의사가 자신의 불행한 환자에게 여자의 몸이 됐으니 앞으로 남자를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어린 콜 시어가 느꼈던 외로움과 두려움은 상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말콤 박사의 처방대로 죽은 영혼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는 순간 어린 콜 시어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대화의 부재는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기 전에 트랜스젠더는 성적 변태자이며 경멸하고 피해야 할 불결한 대상에 불과했다.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 역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려는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아닐지….

사람과 동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마음만 먹으면 성질이 고약한 옆집 개와도 친해질 수 있고, 사자나 표범같이 사나운 육식 동물을 길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동물을 두려워하거나 동물이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오랑우탄에게 언어를 가르치거나 돌고래와의 대화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들이 있다. 청각 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가 오랑우탄과의 대화에 사용되며, 휘파람 소리 같은 음향과 그림이 돌고래와의 대화에 사용된다고 한다.

물론 그들과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수준 높은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이 우리에게 전달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동물들을 우리에 가둬둘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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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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