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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생명체의 사령탑─뇌하수체

피드백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추신경계가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뇌하수체는 각종 호르몬의 지휘관이 되었다.

수천년 전부터 중국인들은 갑상선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에게 동물의 갑상선을 먹여서 치료해 왔다. 이렇듯 내분비 기능이상에 대한 문헌상의 보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에는 베르톨드(Arnold Adolph Berthold)가 거세된 수탉에서 수컷의 특성인 볏의 발달이 저하되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수탉의 고환에서 생성돼 분비되는 물질(후에 남성 스테로이드호르몬임이 밝혀졌음)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뒤에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처음으로 가정한 것이다.

그후 19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생리학자 버나르(Claude Bernard), 영국 의학자인 애디슨(Thomas Addison)과 브라운 세콰드(Charles Brown-Sequard)등에 의해서 마침내 '호르몬이란 내분비선에서 생성돼 혈액으로 분비되는 화학적 물질'이라는 개념이 확립됐다. 1920년에 들어와서 호르몬의 성질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캐나다의 생리학자 베이리스(William Maddock Bayliss)와 스탈링(Ernest Henry Starling)이 소화계 호르몬인 세크레틴(secretin)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스탈링은 1905년 호르몬(hormone)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자극제'라는 의미다.

「잊을 수 없는 순간」

베이리스와 스탈링이 세크레틴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참으로 흥미롭다. 그 당시 이미 십이지장 내에 산(酸)이 있으면 이자액의 생성이 활발해진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베이리스와 스탈링은 개의 십이지장의 일부분을 절제하고, 남아 있는 십이지장 조각에 몇 방울의 산을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이자에서 많은 소화액이 분비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다. 그들은 주위의 신경조직을 모두 절단했으나 혈관만은 그대로 두어 혈액의 공급은 계속 유지되도록 했다. 잘려진 십이지장 조각과 다른 신체부분과의 유일한 통로는 혈관 뿐이었다. 스탈링은 십이지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분비돼 혈액을 통해 이자에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십이지장의 일부를 절단한 후, 그것을 분쇄하고 여과시켜 그 여과액을 경정맥에 주사했더니 수초 후에 이자액의 분비가 갑자기 증가했다. 후에 스탈링은 이 날을 회고하며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스탈링의 실험은 내분비학사(史)에 이정표를 세운 가히 위대한 쾌거였다.

그후 인슐린이 발견되었는데 이것 역시 우연한 관찰을 흘려버리지 않은 과학적인 탐구정신의 산물이었다. 독일의학자인 메링과 민코브스키(Oskar minkowski)는 이자를 제거한 개가 배설한 오줌에 파리가 잔뜩모여 있는 사실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오줌에 당 성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이자를 제거하면 혈당의 조절 메커니즘이 깨어져 당뇨병이 발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1900년 오피(Eugene Lindssy Opie)에 의해서 이자의 랑게르한스섬에 당뇨병을 방지하는 물질이 포함돼 있음이 알려졌다.

1958년 미국 코넬대학의 드 빙게우드(de Vingeaud)는 인슐린의 아미노산 서열을 밝힌 생거와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는데,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로써 인간의 손으로 호르몬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수많은 호르몬의 구조와 기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호르몬에 대한 이해가 급증하게 되었다.
 

뇌하수체의 위치


마스터 내분비선으로 통하고

생체의 각종 대사과정 생식 발생 분화의 과정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호르몬을 매개로 하는 내분비계는 신경전달물질을 매개로 하는 신경계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또 호르몬은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각기 고유의 생리조절에 관여하고, 중요한 대사과정에 여러 종류의 호르몬이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선은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어 작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내분비선이 지휘관격인 뇌하수체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뇌하수체는 전엽 중엽 후엽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람의 경우 그 무게가 0.5~1.0g에 불과하다. 또 크기는 새끼손가락 끝부분보다도 작으며 뇌의 끝부분에 붙어 있다.

그러나 뇌하수체를 제거하면 각종 대사기능의 심각한 장애가 유발되고 나아가서 생존이 크게 위협받는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래 내분비계의 통합조절에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는 뜻으로 뇌하수체는 한때 마스터(master) 내분비선이라 불려졌다.

뇌하수체가 붙어 있는 바로 윗 부분을 시상하부라고 하는데 시상하부는 중뇌의 하부구조다.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영국의 해부학자 해리스(Geffery Harris)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를 잇는 작은 문맥계가 있음을 관찰했다. 그는 또 시상하부에서 어떤 화학적 전령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문맥계를 통해 운반된 후 뇌하수체 전엽의 기능을 조절할 것이라는 가설을 제창했다. 그 당시로 보면 중추신경계가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호르몬이 분비되는 장기


25만 마리에서 1mg을 추출해

뇌하수체가 시상하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설이 지지를 받아감에 따라서 시상하부에서 합성·분비돼 뇌하수체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밝히고자 하는 세기의 과학적 경쟁이 20세기 중반에 시작됐다. 이 경쟁의 승리자는 길레민(Guillemin)과 섈리(Schally)였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뇌하수체에서 합성·분비되는 갑상선자극호르몬(TSH)을 조절하는 촉진물질(차후에 이 물질은 TRH, 즉 Thyrotropin Releasing Hormone으로 명명되었다.)의 구조와, 성장호르몬을 억제하는 물질인 소마토스타틴(somatostatin) 그리고 성선호르몬을 촉진하는 물질(GnRH, Gonadotropin Releasing Hormone)의 구조를 밝혔다. 이 공로로 길레민과 섈리는 1978년 노벨상을 공동수상하게 되었다. 신경호르몬의 발견되기까지의 이 길고도 어려웠던 탐구의 과정은 참으로 과학적 연구수행에 있어서 귀감이 될 만하다.

1960~1970년대, 생화학적인 분석기술이 미미했던 당시에 25만마리의 양 돼지에서 얻어낸 TRH는 고작 1mg이었다. 이 극미량으로 그들은 TRH가 글루탐산 히스티딘 프롤린 등 세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알아냈으나 정작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양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인공적으로 합성하기로 마음 먹고 조합가능한 여섯개의 TRH를 만들어 보았지만 TRH의 생물학적 특징을 지니게 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C-말단과 N-말단의 모양을 화학적으로 바꾸어 TRH의 기능을 갖도록 해내고 말았다.

특히 16만 마리의 돼지 시상하부에서 추출물을 얻어내 각고 끝에 GnRH의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그 이후 신경호르몬을 분비하는 이른바 신경분비세포에 대한 수 많은 기초적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 신경호르몬을 이용한 임상적인 치료도 가히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예컨대 성선자극호르몬의 과소분비로 배란이 일어나지 않게 돼 불임이 된 성선기능부전증 환자에게 GnRH를 투여, 배란을 인위적으로 유발시키고 임신이 되게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기초생물학적 연구가 곧바로 임상적으로 이용된 예는 실로 허다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호르몬은 체내의 대사조직을 조절할 수 있도록 특수한 지시를 표적세포에 전달하는 화학적 전령이다. 먼저 호르몬의 조절기능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호르몬이 표적세포내에서 일으키는 특수한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점검해 보자.

내분비선에서 호르몬 분비의 조절은 다른 호르몬(혹은 신경활성물질)의 자극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신경호르몬은 뇌하수체에 작용, 각종 뇌하수체호르몬들을 분비하게 하고 이들은 각각의 표적 내분비선에 작용한다. 예를 들면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진 TRH는 뇌하수체를 자극, 갑상선자극호르몬(TSH)의 분비를 촉진하고, 갑상선자극호르몬은 갑상선을 자극해 갑상선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단계 과정을 거쳐 분비된 갑상선호르몬은 여러 표적세포에 작용해 생리조절에 관여한다. 그리고 피드백 조절(feedback control) 메커니즘에 의해 갑상선호르몬은 거꾸로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에 작용, TRH나 갑상선자극호르몬의 분비를 적절히 조절한다.

포도당대사에 관계하는 인슐린 글루카곤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의 분비도 대사물질에 의해 조절을 받는다. 혈액내의 포도당이 많아지면 인슐린 분비가 증가하고 글루카곤 분비는 억제된다. 아울러 성선호르몬도 생성이 억제된다. 이와 같이 호르몬은 생체의 기능을 일정하게 조절하는데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다.

호르몬이 각 표적기관에 영향을 미치려면 호르몬과 특이하게 결합하는 수용체와 결합해야 한다. 호르몬의 수용체는 세포막에 존재하는데 호르몬이 내는 신호를 받는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수용체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단백질의 입체적인 구조와 기능을 규명코자 하는 연구가 최근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호르몬은 수용체와 결합, 활성화되면 자신의 신호를 세포내로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신호전달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세포내 신호체계로 구성돼 있다. 즉 호르몬은 특정한 효소에 작용해 그 활성을 조절하기도 하고, 세포막에 작용해 여러가지 물질의 막통과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유전자에 직접 작용해 단백질 합성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부신^부신피질 호르몬과 부신수질 호르몬이 분비된다.


유전자의 결함을 치료하기도

이와 같이 복잡하고 미묘한 각종 호르몬의 기능과 작용은 신비한 자연현상의 일부분이다. 지금도 인류의 꿈과 호기심은 이의 해명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인류의 숙원인 각종 질병의 퇴치 및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한 끊임 없는 인간의 도전은 마침내 자연의 이해와 응용을 통해 점차 그 꿈을 실현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한 질병의 치료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호르몬의 발견 및 구조분석 그리고 기능탐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구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켰고 각종 질병에 대한 대증(對症)치료보다 원인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 산업에의 응용도 가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층 고도화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방법(gene therapy)을 적용, 질병을 치료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일단의 연구자들은 선천적으로 성선기능저하증을 보이는 돌연변이성 쥐의 발병원인이 시상하부의 GnRH 유전자의 결함임을 밝혀내었다. 그들은 원인을 알아내는데 만족하지 않고 수정란에 정상적인 GnRH유전자를 미세조작법을 통해 이식함으로써 유전자결함을 치료, 성선기능을 거의 완벽하게 정상으로 되찾게 했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이해되지 않은 많은 생명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보다 선행돼야만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호르몬 연구의 첨단은 각종 호르몬과 그 수용체 유전자 구조의 규명, 그리고 유전자 수준에서의 조절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이다. 이러한 연구는 호르몬 이상에 따른 각종 질병을 유전자 수준에서 해명, 보다 심원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치료의 길을 여는 데도 공헌할 것이다. 나아가 인류의 밝은 내일을 여는 데도 크게 이바지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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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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