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채식 논쟁과 더불어 또 하나의 고민거리는 그냥 먹을지 조리해 먹을지의 선택 문제다. 수많은 조리법이 등장하고 있는 현대의 식생활. 인간이 식품을 조리해서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형태의 식품을 섭취해야 할까.
인간의 식품은 생물종의 체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흙 속에 있는 미생물은 유기물질을 분해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영양소를 제공하고, 곤충이나 작은 벌레들은 다양한 식물을 먹고 자란다.
또한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어먹고 자라면 그 육질은 다시 인간의 식품이 되고,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인간이나 육식동물이 생명을 다하고 죽으면 미생물들이 이를 분해해 다시 식물이 쓸 수 있는 양분으로 돌아간다. 바다 속 생물의 먹이 사슬도 육지의 생물과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식품 체계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분포와 관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생물종의 생존은 그 생물종의 분포에 따라, 그리고 먹이가 동물성 위주의 식품이냐 식물성 위주의 식품이냐, 또는 어느 쪽으로 치중돼 있느냐에 따라 결정돼 왔다.
식품 수를 제한한 농업
과거 멸종한 동물의 예를 들어보자. 공룡은 1억5천만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된다. 처음 공룡의 숫자가 많지 않았을 때는 넓은 초원에서 주로 초식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룡이 번식해 그 수가 증가하면서 식물성 식품만으로는 식량이 부족해졌다. 공룡들은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곤충과 동물을 잡아먹다가 급기야는 자기가 먹어야 하는 식량의 먹이 사슬이 깨져 멸종당하고 말았다는 보고가 있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한 시기는 약 1만여년 전으로 추정되는 빙하 해빙기 이후다. 이때를 기점으로 불의 사용이 생활화됐다고 보기 때문에 음식을 익혀 먹는 조리도 아마 이 당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발을 내딛고 살아가면서 처음 당면한 고민은 아마 ‘식품의 확보’였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저장 없이 그때그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품을 확보했고, 확보한 즉시 소비하는 생활. 이런 상황에서는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확보된 식품을 저장하려는 가공의 여유가 있었을리 없다.
하지만 농업은 야생의 것을 인간의 영역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재배한다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 한 종류의 식물을 재배해 대량 생산을 꾀한다던가, 동물도 인위적으로 교미시켜 인간이 원하는 수를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암탉은 연간 36-38개의 알을 낳았지만, 최근 산란하는 닭은 연간 3백개 이상의 알을 낳을 수 있다. 인간은 닭이 알을 낳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최대로 증가시켜놓은 것이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한 것은 인구의 수가 증가하면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농업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인간에게는 질병의 종류가 증가했고 영양 부족과 불량이 시작됐다. 또한 사냥과 수렵을 통해 식품을 확보할 때보다는 농업이 시작된 이후 인간이 섭취하는 식품의 종류가 제한됐다. 재배가 가능한 것만 섭취하는 결과가 초래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게 확보한 식품들을 어떻게 먹어왔으며, 식품 형태에 따른 영양학적 차이는 얼마나 존재할까. 앞으로 우리들은 어떤 형태의 식품을 섭취해야 더 좋을까.
가공식의 출현 이유
생식이란 일반적으로 불에 익히지 않은 식품을 그대로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생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에 익히지 않은 식품만을 섭취하기 때문에 섭취하는 식품의 종류가 제한된다. 예를 들어 가공된 식품들, 즉 인스턴트 식품과 캔이나 병에 포장된 식품들은 대개 생식의 범위에 끼워넣을 수 없다.
또한 제한된 범위 중에서도 식물성 식품을 위주로 섭취하며, 동물성 식품의 섭취는 거의 삼가는 편이다. 동물성 식품의 경우 신선한 상태로 일정 기간 보존하기 어렵고, 동물성 식품을 생식하기엔 위생적으로나 관념적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식품의 종류에 따라 누구나 생식을 하는 것이 있다. 흔히 잎, 뿌리, 또는 줄기를 먹거나 열매를 먹는 과실, 그리고 열매 속에 감춰진 배아를 먹는 견과류가 그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공과 가열을 거친 식품이 출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계절에 따라 수확한 식품을 일정 시간 동안 저장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일년 내내 경작 가능한 대기 온도와 강수량을 충분히 갖춘 지역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즉 지구에서 일부 지역을 제외한 온대지방과 한대지방은 농사를 경작할 수 있는 시기와 수확하는 시기, 그리고 경작할 수 없는 기간을 위해 수확한 식품을 저장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식품 가공은 그대로 말리는 것이었고, 소금 생산이 가능한 시기 이후에는 염 저장이 가능했다.
결국 이런 기법들이 발달해 설탕 조리, 초 조리, 다양한 양념에 의한 조림과 발효 식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수확 시간과 소비 시간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문제였으며, 인간의 생존과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생계 수단은 오로지 농업에만 의존하던 형태에서 벗어나게 됐다. 공장의 생필품 생산 산업에 의존하던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공업 단지가 조성됐다. 공업 단지는 농장과 떨어진 곳에 조성됐고, 자연히 공장이 서면 노동자의 가족이 모이게 되기 때문에 소도시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식품의 생산지인 농장에서 탄생한 식품은 소비자가 있는 도시로 이동해야 했으며, 식품의 포장 기술도 날로 새로워졌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시대에는 전쟁시 군인들의 식량 운반을 편리하게, 그리고 상당 기간 부패되지 않게 운반할 아이디어를 찾던 중 진공 상태에서 병조림하는 기술이 탄생하게 됐고, 이 기술은 당시 군사 비밀로까지 취급됐다.
최근에는 식품으로부터 자본 형성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식품의 저장 기간을 연장하고 있으며, 신선도의 유지를 위해 각종 화학 물질의 첨가물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각종 포장 기술과 포장 재료도 다양화되고 있다. 결국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인류를 위한 식품이 다양하게 확보되기 위해서는 식품의 가공이 이뤄져야 하며, 가공하기 위해서는 수분 제거, 가열 처리, 첨가물의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익과 손실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그냥 먹을 경우와 조리해 먹을 경우 영양학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가공이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동식물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식품은 생산 즉시 가열 조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가공이 우선된다. 예를 들어 곡식의 경우 겉껍질을 벗기는 도정을 해서 조리하기 용이하도록 낱알이나 가루로 분쇄한다. 식물이나 과실은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잘라야 하며, 육류는 도살해 먹을 수 있는 부위와 먹지 못하는 부위로 잘라내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생으로 섭취하든지 가열해 섭취하든지 이런 가공의 과정은 필수다.
이후 섭취하기 위한 조리 과정인 가열을 한다. 일반적으로 식품을 가열할 경우 그 식품에 함유된 영양가가 상당히 파괴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일부의 영양 가치에 손실이 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식품에 함유돼 있는 단백질 계통의 독소도 가열로 인해 제거되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조리를 하는 주된 목적 중 하나는 그 식품이 지니고 있는 영양소의 체내 이용율을 최대로 하고, 소화 흡수가 잘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몇가지 식품의 예를 들어보자.
쌀이나 밀가루, 또는 감자가루와 물을 섞어 60℃ 정도로 가열하면 전분 입자가 수분을 흡수해 커지면서 걸쭉하고 끈끈해진다. 이런 상태를 전분이 ‘호화’됐다고 한다. 전분 입자는 마른 상태를 유지할 경우 결정형으로 매우 단단하지만, 물과 섞어 가열하면 단단한 전분 입자가 수분을 흡수하면서 느슨해진다. 이 상태에서 계속 온도를 올리면서 가열하면 전분 입자 일부가 붕괴되기도 한다. 이렇게 호화된 전분 입자는 소화 효소의 침투가 용이해 소화율이 높아진다.
대두(메주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두에 물을 붓고 가열하면 단단하게 뭉쳐있는 단백질의 사슬이 가열로 인해 느슨하게 풀리게 된다. 따라서 소화기 내에서 소화 효소의 침입이 용이하므로 가열한 콩이 날콩에 비해 소화율이 증가한다. 또한 콩 속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인 트립신의 활성을 방해하는 성분이 있는데, 이 역시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가열할 경우 변성되면서 방해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적혈구를 응집시키는 헤마글루티닌 역시 단백질인데, 이도 가열에 의해 변성돼 그 기능을 상실한다.
계란의 경우도 날 계란보다는 삶은 계란의 소화 흡수율이 높다. 같은 원리로, 육류나 계란에 함유된 단백질의 구조가 가열에 의해 결합의 형태가 느슨해져 날 것일 때보다 소화 효소의 침투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소화율 낮은 사람에게 자연식은 문제
조리는 소화 흡수율을 증가시키는 이점을 주는 반면, 영양소를 파괴시키는 손실도 안겨준다. 야채의 잎을 먹는 엽채류(배추, 상추, 깻잎 등)와 뿌리를 먹는 근채류(감자, 당근, 무우 등), 과일 등은 조리에 의해 또는 믹서기에 갈 경우 비타민C가 일정 부분 파괴된다. 또한 조리 중 다른 비타민의 손실량은 비타민A의 경우 30%, B1은 50%, B2는 30% 정도다.
가공이나 가열 조리 후 생기는 영양소의 손실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리함으로써 한 음식에 포함되는 식품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식품 상호 간의 영양소 보충 효과가 생겨서 그 음식의 영양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소화 흡수율을 증진시킨다는 장점까지 고려한다면 가열 조리에 따르는 이익과 손실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리는 다분히 문화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 집안의 생활 문화를 가늠하는데 음식 솜씨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된다. 예를 들어 장맛, 김치맛, 된장찌개맛이 그 집안의 음식 수준을 알아차리게 한다. 이처럼 음식의 조리는 한 집안, 또는 향토의 문화와 직결돼 있고, 이를 매개체로 상호 유대가 이뤄진다. 어머니 맛을 그리워하며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자연식과 가공·가열식의 선택 기준은 자신의 건강 문제와 생활 환경에 따라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소화 흡수율이 낮은 사람이 생식의 붐을 좇아 무턱대고 생식만 고집한다면 어떤결과가 나타날까. 건강이 개선되기 보다는 각종 소화 불량이 발생해 오히려 해를 끼칠 위험이 크다. 또한 식품이 함유한 영양소의 섭취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조리를 하기보다는 영양소의 파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식품을 먹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