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성운에 있는 ‘창조의 기둥’은 생명의 원천인가. 기둥 속에 별이 잉태돼 자라지만, 자외선에 태아별이 유린된다는데….
봄이다. 날씨가 따뜻해서 초목의 싹이 돋고, 겨울잠 자던 동물이 땅 속에서 깨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밤하늘에도 생명의 느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은 많다. 바로 별이 새로 태어나는 지역이다. 이 가운데 은하수 중심쪽에 파묻힌 뱀자리의 독수리성운이 유명하다.
듬성듬성 모여있는 별무리 중심에 위치한 독수리성운은 비교적 큰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에서 그 모습이 잘 드러난다. 붉은 배경으로 날개를 뒤로 한 채 어디론가 날아가는 검은 독수리가 보인다. 앞으로 뻗은 양쪽 발의 모양도 눈에 띈다. 발톱을 한껏 세우고 무엇을 채러 가는 것일까.
최고의 신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산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스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모습을 본따 최초로 인간을 창조한다. 인간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우스의 태양수레에서 불을 훔친다.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쇠사슬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내린다. 간은 파먹힐 때마다 새로 자라 프로메테우스는 계속 고통당한다. 후에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화살로 죽여 프로메테우스를 고통에서 구해주고, 제우스는 죽은 독수리를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준다. 독수리와 인연이 있는 또다른 밤하늘의 대상인 은하수 건너편 독수리자리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알’
검은 독수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모인 암흑성운이다. 암흑성운은 아기별이 탄생하고 자라는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수소분자가 대부분인 성운의 가스가 바로 새로운 별을 만드는 씨앗이다. 성운 가운데 밀집된 가스지역이 뭉쳐져 별이 태어난다. 반면 탄소, 규소 등으로 이뤄진 미세한 입자인 먼지는 뒤쪽의 별빛(가시광선)을 가리기 때문에 성운 전체가 검게 보인다. 물론 성운 속에 자라고 있을지 모르는 별도 베일 속에 감춘다. 검은 독수리가 품고 있는‘생명’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1995년 허블우주망원경이 가시광선으로 검은 독수리의 앞쪽을 겨누자, 머리와 두 발이 나란히 기둥처럼 뻗은 놀라운 영상이 나타났다. 이 사진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최대걸작품으로 일반인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우뚝 서있는 검은 기둥이 너무 정교하게 깎은 조각품처럼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둥은 누가 조각한 것일까.
‘조각가’는 독수리성운 오른쪽 위에 보이는 밝고 푸른 별무리들이다. 이들은 무겁고 뜨거운 젊은 별들로 강렬한 빛(자외선)을 내뿜으며, 독수리성운의 기둥을 비출 뿐만 아니라 섬세하게 조각하는 것이다. 강렬한 자외선에 기둥이 가열되면 표면의 가스는‘증발’돼 아주 천천히 성운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기둥의가스는 밀도의 차이 때문에 동시에 빠져나가지 않는다. 가장 큰 기둥 꼭대기를 보자. 증발되지 않고 남은 밀집된 가스지역이 독수리 발톱처럼 뻗어 있다. 바로 발톱 끝부분에 성운 곳곳에서 잉태된 별을 품은‘알’들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상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처음 발견한 이 모습은 현대천문학의 상징이라 할 만큼 의미심장하다. 독수리성운의 기둥이‘창조의 기둥’으로 불리는 이유다.
창조의 기둥에서 발견된 알 속에 어머니 자궁 속에 들어앉은 태아처럼 실제로 잉태중인 별이 있을까. 올해 초 유럽남반구천문대의 지름 8.2m인 VLT망원경을 이용한 관측결과가 발표됐다. 먼지를 뚫을 수 있는 적외선으로 독수리성운의‘태아별’을 들여다봤다. 적외선 사진을 보면 검은 기둥은 사라지고 먼지 뒤에 숨어있던 별들이 많이 나타난다. 특히 가장 큰 기둥 안에 있던 붉은 별 가운데 일부가 알 속에 든, 몸집이 작은 태아별로 확인됐다.
독수리성운은 생명이 깃든 비옥한 곳이다. 하지만 성운 근처 별무리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자외선으로 보금자리가 드러났다. 태아별이 성운 속에 계속 있었다면 충분히 성장해 태양계의 지구처럼 진짜 생명을 지닌 행성을 탄생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독수리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 추락하는 신화 속의 이카로스 같은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