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머리성운은 누구나 한번쯤 책이나 인터넷에서 봤을 만큼 유명하다. 또 발사 10주년이 되던 2000년에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했으면 하는 대상을 정해달라는 인터넷 투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손꼽은 대상이기도 하다. 우연히 성운의 모양이 말머리를 닮은 것이겠지만, 정말 말머리를 닮은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 특이한 모습은 1800년대 후반 사진 건판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말머리성운은 오리온자리의 어디에 있을까. 오리온자리는 허리띠에 보석처럼 박힌 세개의 별 때문에 겨울밤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머리성운은 세별 중 왼쪽 별(제타별)의 남쪽에 위치한다. 아쉽지만 말머리성운은 맨눈으로 볼 수 없다. 또 아마추어 수준의 망원경으로도 찾기 쉽지 않다. 망원경을 다룰 줄 아는 아마추어 천문가들 사이에서도 말머리성운은 자신의 관측기술을 시험하는 대상으로 사용될 정도다.
말머리가 까만 이유
말머리성운은 언뜻 보면 마치 햇빛으로 붉게 물든 노을 위로 검은 말인 흑마가 늠름하게 머리를 들고 솟구치는 모습 같다. 2002년이 흑마의 해라니 어울리는 얘기가 아닌가. 다시 보면 붉은 날개를 쫙 펴고 이제 하늘을 날 준비를 하는 천마의 모습도 연상된다. 천마는 가을철 별자리로 유명한 페가수스자리에도 있는데, 말머리성운의 주인공도 페가수스가 어울리지 않을까.
페가수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천마다. 신화에 따르면 페가수스는 영웅 페르세우스의 모험담 끝자락에 등장한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메두사의 목을 벤 후 한손에 들고 다시 바다 괴물과 싸운다. 이때 메두사의 목에서 피가 흘러 바다에 떨어진다. 메두사는 괴물이 되기 전 아름다운 처녀였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이 피를 보자 안타까워 피와 바닷물거품으로 천마 페가수스를 만든다. 눈처럼 하얀 페가수스도 괴물이 되기 전 메두사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말머리성운 뒤로는 붉은빛이 인상적이다. 마치 메두사가 흘린 피로 벌겋게 물든 바닷물에서 페가수스가 이제 막 탄생해 머리를 내민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아름다운 처녀였을 때인 메두사의 긴 목처럼 목을 길게 드러내면서 말이다.
말머리성운의 주인공은 왜 검은색일까. 우주의 먼지와 가스가 모인 성운으로 주위빛을 가려 어둡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성운은 암흑성운이라 불린다. 말머리성운은 암흑성운의 대표적인 예다. 주위의 밝은 빛을 배경으로 윤곽이 뚜렷한 검은 성운인 것이다.
그런데 말머리의 왼쪽 끝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곳보다 약간은 흐릿하다. 왜 그럴까. 성운 안에서 별빛이 새나오는 탓이다. 먼지와 가스가 모인 말머리성운 같은 암흑성운은 아기별이 태어나고 자라는 요람 역할을 한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별이 강보에 쌓인 채 세상 빛을 보려고 작은 눈을 살짝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파란 샘은 어떻게 생겼을까
말머리성운 주위는 왜 붉은빛을 띠고 있을까. 물론 메두사가 흘린 붉은 피 때문은 아니겠지만. 단서는 사진에 나타나지 않지만 바로 위쪽에 위치한 별(오리온자리 시그마별)이다. 시그마별에서는 강한 자외선이 방출되고 있는데, 이 자외선이 말머리성운 주위에 있는 군데군데 먼지 낀 가스 성운의 표면을 때린다. 가스 성운의 대부분은 수소 기체다. 강한 자외선을 쪼인 수소는 하나뿐인 전자를 잃어버린다. 즉 이온화되는 것이다. 이때 전자가 다시 수소핵과 결합할 때 빛을 낸다. 이 빛이 바로 붉은빛이다. 붉은빛의 바다 같은 성운은 다름아닌 발광성운인 것이다. 말머리성운에서 말머리가 그토록 실감나게 보이는데는 주위에 붉은빛을 내뿜는 수소기체가 한몫했던 것이다.
신화 속의 페가수스는 예술의 여신 뮤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페가수스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뮤즈들에게 샘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뮤즈들이 헬리콘산에서 노래 시합을 벌일 때 페가수스가 땅을 걷어차자 샘이 솟아나왔던 것이다. 이 샘이 바로 히포크레네다. 이름의 뜻도 ‘말의 샘’이다.
말머리성운 왼쪽 아래 부분을 보면 페가수스가 만든 히포크레네처럼 생긴 ‘파란 샘’이 눈에 들어온다. 파란 샘은 어떻게 생긴 걸까. 파란 샘 역시 가스와 먼지가 모인 성운인데, 파란빛은 성운의 먼지와 샘 가운데에서 비쳐보이는 별빛의 합작품이다. 미세한 성간 먼지는 별빛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산란시키기도 한다. 이때 미세 입자들은 파장이 긴 붉은빛보다 짧은 파란빛을 좀더 잘 산란시킨다. 그래서 성운의 색깔이 성운을 비추는 별빛보다 더 파랗게 보인다. 이런 성운은 반사성운이라 한다.
친숙한 말머리성운에는 신화 속의 페가수스를 떠올릴만한 대상이 여럿 있었다. 메두사의 피가 뻘겋게 물든 바다처럼 보이는 발광성운, 붉은빛을 배경으로 막 탄생하는 천마 페가수스를 닮은 암흑성운, 그리고 페가수스가 땅을 박차고 만든 파란 샘 같은 반사성운. 한폭의 사진속에 참 다양한 이야기가 묻어난다.